플라톤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제자이다. 그의 철학은 너무도 방대해서 평생을 말해도, 말 못 한다. 하지만 이것은 쓰레기 강의이므로, 주요 개념만 설명한다. 시험에는 이데아와 정의에 대해서만 나온다.
먼저 이데아. 이데아는 예를 들어서 설명하는 것이 좋겠다. 우리는 어떤 것을 보고 아름답다 라고 말한다. 저 여자는 아름답다. 저 물건은 아름답다. 저 폭포는 아름답다. 우리는 아름다운 것을 어찌 아는가? 누가 알려줬는가? 우리는 아름다움 자체를 본 적이 있는가? 아름다움 자체를 본 적도 없으면서 아름다운 것들은 어찌 알 수가 있지? 그래서 플라톤의 물음은 항상 이렇다. 정의로운 행동들이 아니라, 정의 그 자체를 묻는다. 아름다운 것들이 아니라 아름다움 그 자체를 묻는다.
플라톤의 상기설. 플라톤은 이미 우리가 아름다움 그 자체를 알고 있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들을 알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가 어찌 그것을 아는가? 플라톤은 이데아의 세계를 설명하기 위하여, 신화적인 것을 끌어들인다. 우리는 사실 이데아의 세계에 있었다. 그곳에서 아름다움 자체를 본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 살고 있는 현실세계로 건너오면서 그것들에 대한 기억을 상실한 것이다. 왜냐면 우리는 망각의 강인 레테 강을 건너왔기 때문이다. 그리스에서 알레테이아라고 한다면, 진리를 뜻하는데 이 말은 레테에 접두사인 a를 붙인 것이다. 그리스어에서 a를 붙이는 것은 영어로 치면 un을 붙이는 것이다. 참고로, 그리스에서 노모이라는 것은 기준이 있는 법률을 뜻한다. 아노미 현상이라고 들어봤을 텐데, 이는 너도나도 이것이 기준이라고 떠들어 대는 탓에 절대적인 기준이 없는 혼돈의 상태를 뜻한다. 아노미도 노모이에 a가 붙은 말이다. 레테는 망각을 뜻하고, 알레테이아는 진리를 뜻하니, 망각의 반대는 곧 상기이고, 상기한다는 것은 곧 진리에 다가가는 것이다. 정리하자면, 우리가 진리를 알게 되는 것은, 사실은 이미 알고 있던 것을 다시 상기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정의. 여기서의 정의는 현대에서 말하는 정의롭다를 떠올리면 안 된다. 그건 상당히 후대의 개념이다. 본질적인 의미에서의 정의란, 하모니, 즉 조화다. 여러 가지의 것들, 가령 힘 같은 것이 한쪽이 너무 강하지 않게 적절히 분배되어 있고, 잘 조화되어 있는 것, 그러한 상태가 정의다. 플라톤은 이성, 용기, 절제 이 세 가지가 잘 조화되어야만 정의로운 인간이라고 말한다. 플라톤의 재미있는 점은 이런 자신의 정의 개념을 국가에 적용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이를 자세히 서술한 책이 플라톤의 '국가(정체)'다. 국가를 이루는 중요한 직업군이, 지도자, 군인, 생산자인데, 각각 차례로, 이성, 용기, 절제를 뜻하고, 이 직업군들이 잘 조화되고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때 정의로운 국가가 된다고 말한 것이다. 여기까지만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