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쉬르
철학자는 아니지만, 모든 학문 분야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 학자들이 많다. 다윈의 진화론 이라든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등이 그 예다. 또 유명한 학자 중에 소쉬르가 있다. 그는 언어학자인데, 소쉬르 역시 철학계뿐만 아니라 많은 영역에 걸쳐서 막대한 영향을 끼쳤기 때문에 꼭 짚고 넘어가야 한다.
그는 구조주의라는 사조의 시조이다. 구조주의는 쉽게 말해서, 표면적인 현상 너머에는 그것을 관장하는 내재적인 구조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건축물을 바라볼 때 그 외형만을 보고 있지만, 사실 그 건축물을 지탱하는 뼈대가 있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래서 구조주의라는 말 자체는 사실 어려운 개념은 아니다. 그리고 누구나 당연히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언어학에서부터 나온 결과물이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그리고 후대에 나올 실존주의 사조와 엄청난 대립을 하면서 영향력이 막대해졌다. 구조주의는 마치 하나의 새로운 패러다임처럼 지식인들이 모든 것을 구조적으로 분석하려고 시도하는 시대를 열었다.
그의 언어체계를 알아보자. 우리는 멍멍! 하고 짖고, 집에서 많이 기르고, 뛰어다니고, 양치기 아저씨도 도와주고, 시골집에 한 마리씩은 꼭 있는, 그리고 이름은 뽀삐, 바둑이 등으로 흔히 불리는 동물을 뭐라고 부르는가? '개'라고 부른다. 자 그런데 이 개라는 명칭은 세계적으로 약속된 명칭은 아니다. 독일에서는 훈트, 영어권은 도그, 일본은 이누. 같은 대상을 다르게 부르고 있다. 그 동물의 이미지(像)를 기의, 즉 시니피에라고 하고, 개, 도그, 이누, 훈트 등 그것을 지칭하는 소리 이미지를 기표, 즉 시니피앙이라고 한다. 소쉬르가 주목한 점은 바로 이 점이다. 이 시니피에와 시니피앙의 관계는 자의적이라는 것이다. 절대 필연적인 것이 아니다. 우리가 탁자를 보고, 마우스라고 불러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이다. 오준영(참고로 내 이름이다)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있는데, 사실은 꼭 그 이름이어야만 하는 이유는 절대로 없는 것이다. 우리는 외국에 나가면 외국에서 사용할 이름을 추가로 짓지 않는가? 그래도 나는 변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이 기호라는 것들은 서로 구분만 되면 되는 것이다. 간단히 기호적으로는, 3가지의 개념이 있으면 단순히 A, B, C로만 구분만 되면 우리가 언어생활을 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쉽게 말해서 이 소리들을 현상적인 것으로 본다면, 언어들이 구분되는 이 A, B, C의 관계들이 내부적인 구조인 것이다.
하나의 예를 더 들어보자. 사람 두 명이 체스를 두고 있다. 그런데 이 체스를 두는 과정에서, 그 체스 판과 체스 말이 플라스틱이건 나무이건, 혹은 어떤 색으로 칠해져 있건, 크건, 작건 아무런 상관이 없다. 중요한 것은 체스를 두는 사람들이 이 게임의 규칙(구조)을 서로 아느냐 모르느냐 인 것이다. 서로 규칙만 알고 있다면 체스를 두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우리의 언어생활은 내부적인 구조만 안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