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선비 Apr 03. 2018

오선비의 쓰레기 철학 강의 13

니체


니체


 니체는 쇼펜하우어의 제자다. 물론 직접적인 수제자는 아니지만, 쇼펜하우어의 저서를 통해서 니체가 자신의 사상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유는 모르겠으나 니체는 사뭇 유명하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름이 간단하고 강렬해서 그런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우선 쇼펜하우어와 니체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쇼펜하우어는 모든 모순의 근거로 인간의 의지를 집어냈고,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의지 자체를 포기해버리는 선택을 했다. 하지만 니체는 의지가 모순을 자아낸다는 것은 가져가면서, 의지를 포기하면서 모순을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자신의 의지를 더욱 거세게 몰고 나가는 선택을 했다. 쉽게 말해서 자기 자신을 이기는 것이다. 이것을 간단히 힘에의 의지라고 하는데, 이는 니체의 초인(위버멘쉬) 사상과 연결된다. 물론 이 초인 사상은 많은 오해를 받고 있으나,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겠다.


* 초인은 독일어로 Übermensch인데, über는 영어의 above, Mensch는 영어의 human의 의미이다. 즉 인간을 넘어선 인간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 단어를 이해한다면 초인의 의미가 더 쉽게 다가올 것이다.

 

 니체가 사상적으로 중요한 이유는 기존의 철학을 깨부숴 버린다는 것에 있다. 니체 본인은 말하지 않았지만, 현대에서는 니체를 포스트모더니즘의 시작이라고 말한다. 쉽게 말해서 근대적인 사유를 넘어서는 사유를 했다는 것이다. 니체는 기존의 철학 체계를 철저하게 부정했다. 그가 좋아하지 않았던 철학자는 최고의 철학자라고 불리는 플라톤이었다. 플라톤을 싫어한 것은, 세계를 이데아의 세계와 현실 세계로 나누어 버리고, 우리가 생생하게 살아가고 있는 이 현실 세계를 마치 하나의 모방품 같은 것으로 취급해버리고, 죽은 뒤의 삶을 갈망하게 했다는 이유였다. 그리고 세계 종교로 거듭난 그리스도교 역시 플라톤의 영향을 크게 받았기 때문에, 니체는 그리스도교도 맘에 들어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현실세계를 제대로 살지 못하고, 그저 내세를 위한 삶만을 추구하는, 마치 노예처럼 살아가는 삶의 방식을 니체는 싫어했다.


 근대는 인간이 자신의 이성을 철저하게 믿던 시기였는데, 즉 이성적인 결과물은 믿을만하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성적인 결과물은 내가 봐도 옳고, 남이 봐도 옳은 결과물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이는 곧 사람들의 사유를 통합시켜버리는 위험성이 있다고 니체는 생각했다. 그리고 니체는 이것을 깨부숴버리고 각자의 특수성과 개별성을 강조한 것이다. 이런 사유가 포스트모던적인 사고의 시작이다.


 여기서 니체의 유명한 말인, '신은 죽었다'를 이야기할 수 있다. 우리는 흔히 이 말을 더 이상 신이라는 것은 없다거나, 종교가 부패해서 제대로 된 종교가 없다거나, 세상이 이렇게 악으로 물들어 있는데 신이란 것은 없는 것이 아닌가 정도로 이해하곤 하는데, 여기서의 신은 우리가 생각하는 신이나 종교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위에서 언급했던 플라톤적인 사고와 기존의 철학 체계, 사상체계를 의미한다고 보아야 한다. 이 '신은 죽었다'를 이해하고 싶다면, 니체의 짧은 글인 '광인'을 읽어보면 굉장히 좋다. 신(이데아의 세계, 내세 등)은 죽었으니 남은 것은 인간(현실 세계)이고 앞으로의 미래는 인간 스스로가 개척을 해야 한다는 의미로 보면 적당하다. 개론이므로 너무 깊게 가지는 않겠다.

 

 니체의 사상에 대한 예를 하나 들어보면, 아주 커다랗고 험준한 산이 있다. 우리는 이 산을 반드시 넘어야 한다. 넘기 싫다 하여 안 넘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꼭 넘어야만 한다.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 한 명은 어찌나 넘기가 싫은지, 죽겠다 죽겠다 하면서 순간을 부정하면서 겨우겨우 넘는다. 반면 어떤 이는 이 험준한 산을 반드시 넘어야 하는 것이라면, 자신의 강인한 힘을 증명해내는 하나의 장으로 여기며, 자기 자신을 극복하면서 에너지 넘치게 넘는다. 니체는 당연히 후자의 인물을 높게 평가한다. 이런 인간이 초인인 것이다.


 니체의 후기 철학에는 중요한 '영원 회귀'라는 사상이 있다. 이는 불교의 사상과도 약간 연관이 되어 있는데, 이 영원 회귀는 쉽게 말해서,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삶을 영원히 반복해야 한다는 가정에서 시작되는 사상이다. 마치 불교의 윤회와 비슷하다. 저 험준한 산을, 사실은 영원히 오르락내리락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 삶은 고통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하여, 영원히 반복되어도 좋을 만큼, 자신이 만족할만한 행동과 선택을 하라는 의미이다. 피할 수 없다면 강인하게 현실을 즐기라는 것이 니체의 사상인 것이다. 자신이 처한 현실을 즐기는 것. 자신의 인생을 사랑하는 것. 정확히 말하면 친구처럼 항상 내 곁에 있는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라. 운명애(love of fate, 運命愛). 이것이 니체가 말하는 아모르파티(Amor Fati)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오선비의 쓰레기 철학 강의 1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