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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선비 Apr 06. 2018

오선비의 쓰레기 철학 강의 16

사르트르


사르트르


* 참고로, 사진이 이상한 것이 아니라 사르트르는 원래 사시다



 중요한 철학자는 엄청나게 많지만 이것은 간단한 시험을 대비하기 위한 쓰레기 강의이므로, 사르트르를 마지막으로 하겠다. 사르트르는 철학자이고, 문학가이기도 하다. 사르트르의 유명한 소설은 '구토'이다. 구토는 그의 사상이 잘 드러난 작품이다. 구토에서 중요한 장면을 하나 말하고 시작해보자. 


 '주인공은 공원을 거닐다가 마로니에 나무의 뿌리를 우연히 보고서는, 참을 수 없는 구토감을 느꼈다.' 


 주인공은 왜 구토감을 느낀 것일까? 그 나무가 이곳에 있어야 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왜 이 나무는 여기에 존재해야만 하는가? 그리고 더 나아가서, 나 역시도, 왜 이곳에 있는가? 여기에 있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더 나아가서, 나는 왜 존재하고 있는가? 소설의 주인공은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존재해야만 하는 이유를 찾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존재의 이유가 없는 존재인 것이다. 이런 공포감과 무기력감에서 참을 수 없는 구토감을 느낀 것이다.

 

 사르트르에 대한 논의에 앞서서 하나 이야기를 하고 가면, 철학은 특정 분야를 연구하는 개별 과학들과는 달리, 세계 자체를 사유하는 학문이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가서, 이 세계가 왜 존재하는지도 묻는다. 그러니까 이 세계라는 것이, 있을 수도 있고, 없었을 수도 있는 것인데, 도대체 왜 있는 것인가? 라이프니츠의 물음처럼, "왜 무(無)가 아니고 존재인가?"를 탐구한다. 그렇다 세상은 우유(偶有)적으로 존재한다. 그리고 인간의 존재 역시 우유적이다. 


* 우유적 - 우유적이라는 것은 필연적의 반대로, 그냥 어쩌다 보니 우연히 그렇게 갖추어진 것이다. 우리의 존재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관계로 필연적으로 생긴 것이다 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여기서 묻는 것은, 생물학적인 인과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존재 자체의 이유를 묻는 것이다. 어머니와 아버지 사이에서 내가 태어났다고 하더라도, 그게 꼭 나였어야 하는 이유는 없다.

 

 인간은 도구를 만든다. 가령 가위를 만든다고 하면, 사람은 생각한다. 자를 수 있는 것이 필요하다. 그럼 이런 모양으로 만들면 되겠다. 이름은 가위라고 해야지. 그리고 가위를 만들고 종이를 자른다. 즉, 가위는 만들어지기 전부터 가위의 본질이 있다. 무언가를 자르기 위해서 만들어진다. 


 자, 그렇다면 인간은? 인간은 왜 만들어진 것이지? 본질이 없는 것이다. 우유적인 존재인 이 인간은 존재의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런 당혹감에서 벗어나기 위한 철학이, 사르트르의 '실존주의 철학'이다. 쉽게 말해 이런 것이다. 인간의 본질은 없다. 그래서 자신의 본질을 만들어 나아가야만 한다. 우리는 우리의 본질을, 그러니까 스스로 생각하는 자신의 본질을 다가올 미래에 세워두고, 끊임없이 그것이 되기 위해서 미래로 기투(자신을, 자신이 생각하는 미래로 던지는 행위)해야만 한다. 자신의 길을 스스로 정하고, 실천적인 삶을 사는 것이 실존철학의 기본인 것이다. 실존철학은 이론 철학이기보다 윤리적인 실천철학에 가깝다. 


 실존철학을 대표하는 명제는, "실존은 본질에 선행한다."이다. 우리는 어느 순간 정신을 차리고 보니 존재하고 있었고, 자신의 본질은 후에 생긴다, 정확히 말하면 만들어진다. 자신이 만들어간다. 


 추가적으로, 어떤 대상의 본질이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인가? 아니면 본질은 만들어지는 것인가? 하는 문제가, 고전적인 철학과 현대적인 철학의 가장 큰 차이라고도 할 수 있다. 가령, 종이컵이 있다. 우리가 이 컵에 물을 담았다. 그렇다면 이것을 고전적인 철학으로 본다면, 컵은 물을 담아서 마시기 위한 용도이고, 그것이 컵의 본질이므로, 컵은 지금 자신의 본질을 다 하고 있다. 그래서 본질을 지키고 있는 이 컵은 참 숭고하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 주변을 둘러보아라, 종이컵을 재떨이로도 쓰고 있고, 화분으로도 사용한다. 컵의 본질은 어떤 용도로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정해지는 것이지, 물을 담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닌 것이다. 이처럼 환경과 용도에 따라서 그 본질이 변하는 것이다. 물론 이것이 약간 거친 예인 것은 사실이나, 이해하는데 약간은 도움이 될 것이다.


 마무리하기 전에, 사르트르에 얽힌 재밌는 일화를 하나 소개한다. 사르트르는 위에서 언급한 '구토'로 노벨 문학상을 받게 되었다. 그런데 사르트르는 노벨 문학상을 거절했다. 막말로, 폭풍간지였다. 그런데 후에 자신의 경제적인 생활이 약간 어려워진 사르트르는 다시 받을 수 없겠냐고 제의했고, 안타깝게도 거절당했다.


 어찌 됐든, 사르트르의 철학에서 중요한 것은, 자신이 생각하는 본질을 미래에 세워두고, 끊임없이 그 본질이 되기 위해 자신을 만들어가는 것, 실천하는 것, 자신의 실존을 드러내는 것이다. 여기까지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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