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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선비 Apr 10. 2018

드로잉 들어보셨나요?

드로잉에 대하여


 드로잉이라는 말 들어보셨죠?

          

 주로 철학 관련 글을 쓰지만, 오늘 갑자기 드로잉에 대해서 글을 쓰고 싶어서 급 쓰게 됩니다. 어제 리움 미술관 다녀와서 그런가... 드로잉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합시다. 우선 드로잉이 무엇인지 바로 개념적인 설명을 하는 것보다는 다른 사람의 드로잉 작업을 직접 보는 것이 드로잉을 더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선 한 번 봅시다.     



 이런 게 바로 드로잉입니다. 얼핏 보면 끄적댄 낙서 같죠? 까놓고 이야기합시다. 쉽게 말해서 드로잉은 낙서입니다. 물론 정확히 말하면, 다음 작업을 위한 약간은 고급스러운 낙서라고나 할까요? 실제로 한 번 낙서를 해보세요.   


 한 번 그려보셨나요? 제가 직접 확인은 안 하겠습니다. 할 수도 없거니와... 숙제를 검사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자 어떤 사람은 사과를 그렸을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사람을, 어떤 사람은 집을 그린 사람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 도대체 왜? 여러분은 왜 그 그림을 그린 거죠? 이유를 모르겠는 사람이 대부분일 겁니다. 그렇습니다. 이 드로잉이라는 것은 자기가 의식하지 못한, 그러니까 무의식의 영향을 받아서 그것이 떠올랐고 그것을 그린 겁니다. 물론 의도해서 그린 것도 있겠지만요. 즉 드로잉의 원동력의 대부분은 우리의 내면, 무의식이라는 겁니다.


 사실 우리는 드로잉이라는 것에 굉장히 익숙합니다. 우리는 꼭 예술가가 아니어도 드로잉 작업을 해본 적이 분명히 있습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우리가 친구들이랑 전화를 할 때 무의식 중에 낙서를 하죠? 혹은 대화 내용을 메모하기도 합니다. 회의를 할 때 메모를 하기도 하고요. 그리고 가끔 일기도 쓰죠? 쓴다고 하세요. 이 것들 모두 드로잉 작업입니다. 꼭 그림의 형태를 가질 필요는 없습니다. 자신의 생각이 가볍게, 즉흥적으로 표현이 되면 드로잉이라고 의미를 확장해도 될 것 같습니다.   



 왜냐고요? 드로잉은 일종의 낙서이니 전화할 때의 낙서는 당연히 드로잉이겠고, 메모하는 것은 순간적으로 지나가버리는 어떤 대화의 잔상을 글씨라는 이미지로 캐치해낸 것이니 드로잉과 흡사합니다. 일기도 비슷합니다. 하루를 돌아보며 느껴진 자신의 감상을 캐치해내는 작업이기 때문입니다. 어찌 됐건! 중요한 건 이 드로잉이 우리와 굉장히 친숙한 활동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야 그렇다 치고, 전문적인 예술가들은 드로잉 작업을 왜 하는 걸까요? 별거 없습니다. 자신의 작업을 위해서 드로잉을 합니다. 예술가들은 자신의 외부환경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작업을 하기도 하지만, 자신의 내면의 소리를 듣고 그것을 표현하기도 합니다. 현대 예술로 올 수록 더욱 그렇겠죠? 그렇기 때문에 예술가들에게 중요한 것은 외부를 관찰하는 날카로운 눈뿐만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마음의 눈 역시 중요하다는 겁니다.    

 

 예전에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는 '2016 올해의 작가상'이라는 전시를 열었었는데요. 총 4명의 작가가 참여해서 올해의 작가상을 두고 경쟁하는 전시였습니다. 그 작가들 중 '김을'이라는 작가가 있었는데(아쉽게도 당선이 되지는 못했습니다만) 이분이 출품한 것이 자신의 드로잉 작업들이었습니다. 전문적인 화가들도 그만큼 드로잉에 대해서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뜻이겠지요. 이 작가의 특이한 점은, 드로잉을 다음 작업을 위한 초석으로 삼았다기보다는, 이 드로잉 자체를 작업으로 삼았다는 점입니다.


김을 작가


 드로잉 작업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김을 작가를 간단히 소개해드리겠습니다. 김을 작가는 늘 자기 자신에 대해서 궁금해했습니다. 자신을 알아가는 것이 자신의 작업세계 전체를 일관하는 거대한 주제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김을 작가는 처음에는 수년간 자화상을 그렸습니다. 여러분, 자신의 모습을 보고 싶을 때 무엇을 바라보죠? 네, 거울이죠? 거울을 보면 자신을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예술가들은? 예술가들도 물론 거울을 보겠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할 겁니다. 그래서 직접 거울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그려나갑니다. 눈 코 입 머리카락 얼굴의 주름 등등 거울로 순식간에 바라볼 때는 볼 수 없었던 자신의 모습을 하나하나 뜯어서 세밀하게 그려나갑니다. 마치 자신이 아닌 것처럼. 이 작업을 계속하다 보면 자기 자신을 더욱더 알아갈 수 있겠죠?     

 

 김을 작가는 오랜 시간의 자화상을 그리기를 마치고, 다른 작업을 하기 시작합니다. 자신의 얼굴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을 더욱더 알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드로잉 작업을 시작합니다. 아침에 작업실에 오면 무작정 하나씩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의 내면을 알기 위해서. 그리고 그 드로잉 작업들을 모아서 보시는 것 같은 작업물을 만들어 냈습니다. 작품의 이름은 갤럭시(우주)입니다. 자신의 내면에는 자신이 의식하지 못하는 무한한 우주 같은 무의식이 존재하고, 그것들이 전부 나의 일부, 혹은 자신을 규정해주는 것임을 보여주는 작업입니다.


김을, <갤럭시>


<갤럭시> 근접 샷


 김을 작가의 작업을 설명했는데, 사실 드로잉의 의미 대부분을 설명했다고 보입니다. 드로잉은 자신의 내면을 알아가기 위한 하나의 방법입니다. 물론 이런 의미만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른 의미는 뒤에서 또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낚시


 자 드로잉 작업이라는 행위를 이해하기 쉽게 비유해서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자 낚시꾼이 한 명 있습니다. 여러분 낚시해보셨나요? 낚싯대를 내부가 보이지 않는 바다나 강에 던지고 고기를 낚죠? 물론 잡힐 수도 있고 안 잡힐 수도 있겠지만요. 여기서 낚시꾼은 자기 자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바다나 강은 우리가 볼 수 없는 우리의 무의식이자 내면입니다. 그리고 물고기들은 자신의 내면 속에 있는 어떤 생각들이라고 할 수 있겠고, 낚싯대를 가지고 강에 던지는 행위가 바로 드로잉작업니다. 드로잉이라는 낚싯대를(정확히 말하면 낚시를 하는 행위겠죠?) 자신의 무의식이라는 바다에 던지고, 생각이라는 물고기를 낚는 작업이라는 겁니다. 이해가 되시나요? 되셨으리라 믿겠습니다.     


 자 여러분 사실 드로잉 작업은 무턱대고 하는 것이 비결이긴 해도, 좀 더 잘 무턱 댈 수 있는 방법들이 있습니다. 그중 한 가지만 알려드리겠습니다. 너무도 당연하지만 그만큼 중요한 방법이지요. 드로잉은 물고기를 낚는 것인데, 갓 잡은 물고기는 아주 싱싱하겠죠? 그렇다면 그 물고기를 가장 싱싱하게 맛볼 수 있는 것은 바로 회를 떠먹는 것이겠지요. 자 우리의 생각을 가장 싱싱하게 맛볼 수 있는 방법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속도입니다. 즉 건져낸 물고기를 빠르게 요리해야 가장 싱싱하다는 겁니다.     



 그래서 드로잉을 하는 도구가 큰 몫을 합니다. 쉽게 말해서 종이와 연필이 가장 좋은 도구입니다. 물론 볼펜이나 목탄 등도 가능하겠죠? 자신의 생각을 빠르게 캐치해야 하는데 지금 파렛트에 물감을 개서 붓으로 찍어 캔버스에 그릴 겁니까? 절대 아닙니다. 바로바로 갈겨내야 합니다. 정말 갈겨대는 게 중요합니다. 그래서 종이와 연필만큼 좋은 드로잉 도구가 없는 겁니다. 즉, 드로잉에 속도감을 주려면 도구의 선별이 그만큼 중요합니다.



 아까 글의 초반에 드로잉을 하는 이유가 자신의 내면을 알기 위해서라고 말했고, 한 가지가 더 있다고 했죠? 그것을 이제 말할까 합니다. 실질적으로 화가들이 드로잉을 하는 이유는 자신의 내면을 캐치해내고 그것을 자신의 실제 작업에 옮겨서 완성품을 만들어내기 위함입니다.   

   

 자 그렇다면, 드로잉은 완성된 작품이라고 볼 수 없는 건가요? 네 일반적으로는 그렇습니다. 드로잉은 실제 작업 활동 이전에 하는 작업입니다. 쉽게 예를 들어드리겠습니다. 여러분 만화책 좋아하시죠? 이건 만화가의 콘티입니다. 


만화가의 콘티


 만화가들은 한 번에 그림을 그려내지 않습니다. 우선은 콘티를 짜죠, 그것이 스토리라인을 구성하는 작업일 수도 있고, 실제 그리기 전의 스케치 작업일 수도 있습니다. 어찌 됐건 중요한 것은 콘티를 짠다는 겁니다. 저 콘티만 그려져 있는 건 우리가 보는 최종 결과물인 만화책은 아닐 겁니다. 저렇게 그려진 만화책을 돈 받고 팔면 난리가 날 겁니다. 가끔 데드라인 때문에 저렇게 출간하는 만화가도 드물게 있긴 한데... 예술가들도 같습니다. 드로잉 작업을 통해 앞으로 하게 될 작업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기도 하고, 혹은 앞으로 하게 될 작업의 밑그림일 수가 있다는 겁니다.    

  

 약간은 어려운 말을 사용해볼까요? 제 생각에 드로잉 작업은 일종의 '가능태'입니다. 가능태라는 말을 처음 들어보셨을 수도 있는데요, 이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용어입니다. 쉽게 말해 이런 겁니다. 자 여기에 씨앗이 있습니다. 이 씨앗을 땅에 심으면 꽃이 되겠죠? 자 씨앗은, 지금 이 순간에는 단순한 씨앗이지만, 앞으로 꽃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죠? 이것이 가능태입니다. 정확히 말해서 씨앗은 꽃의 가능태로서 존재한다는 것이죠. 그러니 화가의 드로잉은 자신의 최종 작업물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가능태인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화가들에게 이 드로잉들은 무수한 가능성을 지닌 중요한 씨앗들인 겁니다. 그래서 화가들에게 이 드로잉은 단순한 드로잉이 아니라, 하나의 중요한 작업인 것이죠.     


 자 제가 여러분에게 드로잉에 관한 대략적인 설명을 다 드린 것 같습니다. 그럼 정리를 해야겠죠? 드로잉이라는 것은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는 작업이다. 자신의 내면을 순간적으로 캐치해야 하기 때문에 드로잉 도구의 선별도 중요하다. 그리고 이 드로잉 작업은 자신의 내면을 알아가는 수단이기도 하고, 앞으로 하게 될 작업들의 가능태라는 의미에서도 중요하다. 이해가 되셨나요?     


 그럼 마지막으로 여러분께 드리고 싶은 말을 하면서 글을 마치겠습니다. 드로잉 하세요. 우리가 예술가가 아니어도 드로잉을 하세요. 그 방법은 많이 있습니다. 그냥 낙서를 해도 되고요, 일기를 써도 됩니다. 왜 해야 하냐고요? 자신을 알아가기 위해서, 자기 자신도 모르는 자신의 조각들을 찾아내기 위해서, 그리고 그 조각들을 모아서, 나 자신과 더 친밀 해지기 위해서요! 그럼 글을 마치겠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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