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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과 양심 Apr 05. 2016

아킬레우스는 왜 죽어야만 했는가?

아킬레우스와 모이라

우리에게 ‘아킬레스건’으로 잘 알려진 그리스의 영웅 아킬레우스는 아가멤논이 이끄는 그리스 연합군에 합류하여 트로이를 침공한다. 오디세우스의 지혜로 성을 함락하고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려는 찰나, 비운의 아킬레우스는 그의 발목에 파리스가 쏜 화살을 맞고 장렬하게 전사한다. 10여 년을 끌어 온 전쟁에서 이제 막 승리하여 고향으로 돌아갈 일만 남았는데 어찌하여 운명의 여신은 이리도 매정하단 말인가? 그러나 사실 아킬레우스의 죽음은 이미 그가 트로이로 떠난 순간부터 정해져 있는, 그리고 결코 피할 수 없는 그의 운명이었다. 아킬레우스는 왜 죽어야만 했을까?


그리스 신화에서는 모이라(Moira)라는 개념이 있다. 모이라는 운명을 뜻하는데 우리가 직관적으로 알고 있는 운명과는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다. 보통 우리는 운명이란 단어를 들으면 체념적인 숙명관을 떠올리기 쉽지만, 그리스 신화에서의 모이라는 “할당된 것”, “배당된 것”, “지정된 바의 것”을 뜻한다. 모이라는 인간 뿐만 아니라 신과 심지어 사물에게까지도 적용되는 강력한 개념으로서 그리스인들의 세계관과 사유를 아주 잘 드러낸다. 이를 테면 제우스가 하늘과 땅을 다스리고, 포세이돈이 바다를 다스리고, 하데스가 하계를 다스리는 것은 그들의 모이라에 따른 것이다. 이 할당된 바를 넘어서는 것은 신 중의 신인 제우스조차도 용납되지 않는 것으로 그리스인들은 그것을 넘어서는 행위를 불의로 생각하였다. 또한 모이라가 신과 인간을 넘어 사물에게까지 적용되었다는 것은, 만물이 생성되고 소멸하는 것이 모두 이 모이라의 ‘법칙’ 아래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뜻한다. 즉, 모이라는 그리스인들에게 정의이자 법칙이었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사고가 그들로 하여금 신화적 세계에서 벗어나 사물의 필연성과 세계의 이치, 즉 로고스로 이어지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바다의 여신 테티스는 인간인 펠레우스와 결혼하여 아킬레우스를 낳는다. 어머니 테티스는 갓난 아기인 아킬레우스를 스튁스 강에 담가 무적의 몸을 만들었지만 그녀가 잡고 있었던 발목만은 강물에 닿지 않았다. 어느 날 테티스는 신탁을 받았는데 그 내용은 아킬레우스가 젊은 나이에 트로이 전쟁에 참전하여 죽거나, 명예로운 업적을 남기지 못하는 대신 오래 살리라는 것이었다. 아킬레우스는 여장을 하여 궁정에 숨어 지냈으나 아킬레우스 없이 트로이 전쟁에서 승리하지 못할 것이라는 신탁을 받은 오디세우스가 찾아와 결국 정체를 들키게 되었다. 결국 아킬레우스는 가늘고 긴 삶보다는 명예로운 죽음을 택했고 트로이로 향하는 배에 오르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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