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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과 양심 May 07. 2016

갈매기에 대한 사랑

바위 위의 갈매기


2016년 5월 6일, 아침부터 푸슬푸슬 내리던 비가 갠 늦은 오후, 나와 내 친구는 인천 용유도의 한 해변을 걷고 있었다. 갑자기 하늘을 날던 갈매기 하나가 땅에 떨어져서 날지도 못 하고 파도에 이리저리 휩쓸렸다. 자세히 보니까 바로 옆에 있던 사람들이 연을 날렸는데 갈매기가 그 연줄에 그만 걸려버린 것이다. 불쌍한 갈매기는 파도를 따라 뭍으로 왔다갔다했고, 날려고 발버둥을 쳤지만 그럴수록 연줄은 더욱 갈매기를 옥죄었다. 연줄을 풀려고 갈매기에게 접근하면 갈매기가 도망가니 연을 날리던 사람들이 급한대로 연줄을 위에서 끊어버렸다.


그렇게 갈매기는 떠났고 우리는 해변을 한 시간 즈음 걷다가 사람들의 발걸음이 닿지 않는 해변의 구석진 곳까지 가게되었다. 조수간만의 차가 심한 인천 앞바다여서 그곳은 '고립사고위험지역' 이라는 팻말이 붙어있는 곳이었으나 모험심이 강한 우리는 물이 차서 건너지 못 하는 길을 놔두고 바위를 타서 돌아들어갔다. 길의 막다른 곳까지 갔을 때 우리는 놀라운 발견을 하였다. 물로 가로막혀 있는 어떤 바위 위에 갈매기 한 마리가 몸에 줄을 칭칭 감고 가만히 앉아있는 것이었다. 자세히 보니까 갈매기는 연줄이 완전히 엉켜서 날지도 못 하고 연줄이 바위에 걸려 그 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못 움직이고 꼼짝없이 앉아있었다.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기 위해 친구가 찍은 갈매기 사진. 갈매기의 몸을 완전히 감싼 연줄이 바위에 걸려 꼼짝도 못 하고 있었다.


나와 내 친구는 연줄을 풀어주고 싶었으나 거리가 조금 멀었다. 수심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니 잘못 들어갔다가는 위험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정상적인 길로 온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는 나와 내 친구밖에 없었다. 안타까운 마음에 계속 고민을 하며 지켜보다가 친구가 사람을 불러 도움을 청하자고 했다. 나는 내가 해결할 생각만 했지 사람을 부를 생각은 못 했었는데 덕분에 근처에 있던 젊은 남자 셋을 불러왔다.


이후의 상황이지만 갈매기는 저만큼이나 멀리 있었다. 바닥이 보이지 않아 위험하게 물에 들어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갈매기가 있는 자리로 오니 갈매기는 여전히 바위 위에서 날개를 펴지 못 하고 힘없이 앉아있었지만 쉽게 갈 수 있는 길이 아니라 젊은 남자들도 상황을 보고 고민을 했다. 제법 오래 고민을 하다가 한 남자가 행동에 나섰다. 갈매기에게 도달하는 길은 짧은 길과 먼 길, 두 가지 길이 있었는데 먼 길로 돌아서 가는 것이었다. 험한 바위 지형이라 자칫하면 크게 다칠 수도 있는 길이라 나는 처음부터 배제를 한 길인데 남자는 그 길을 선택했다. 정말 다행이었던 것은 이 지역이 서해안이라 밀물썰물의 차가 심하다는 것이었다. 어느 새 갈매기를 처음 발견했을 때보다 물이 꽤나 빠진 상태였다. 그래서 갈매기에게 갈 수 있는 길이 점점 드러났던 것이다.


처음에 우리가 이곳으로 넘어왔던 길. 차오른 물에 길이 드러나지 않아 저 많은 바위 위를 지나 올 수 밖에 없었다.


마침내 그 젊은 남자가 갈매기에게 도달해서 줄을 풀기 시작했다. 그런데 줄이 실로 된 것도 아니고 매우 굵은 연줄이라 끊어지지도 않고 워낙에 많이 엉켜있어 줄을 풀기가 쉽지 않았다. 가위나 칼 같은 도구도 없었고 줄을 끊으려면 라이터로 끊는 수밖에 없었는데 불을 붙여도 줄이 쉽게 끊어지진 않았다. 게다가 갈매기가 가만히 있는 것도 아니고 부리로 손을 쪼고 발버둥치며 난리를 피웠다. 그렇게 한참을 줄을 풀고 있으니 멀리서 사람들이 점점 구석진 이곳까지 들어와 구경을 하기 시작했다. 물이 빠져서 이곳까지 오는 길이 드러났던 것이다.


물이 빠지면서 보이지 않던 길이 드러났다. 덕분에 사람들이 올 수 있었다.


그리고 또 한 번 놀라운 일이 벌어졌는데, 젊은 남성의 갈매기 구출작전을 구경하고 있던 많은 사람들 중 한 아저씨가 남자를 도와주기로 마음을 먹고 갈매기와 남자가 있는 좁은 바위 위로 건너갔다. 이때쯤엔 아까보다 물이 더 빠져서 물을 건너가기가 더욱 수월했지만 바위 위의 공간이 좁아 섣불리 갈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그러나 아저씨는 짧은 길을 택해 단숨에 바위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는 젊은 남자를 도와 연줄을 풀기 시작했다. 아저씨가 갈매기 몸통을 잡고 남자가 줄을 푸는 식이었다. 그러다 갈매기가 부리로 아저씨를 쪼아 아저씨의 입주위에서 피까지 났다.


나중에는 고등학생쯤 돼보이는 청소년 한 명도 그 좁은 데에 올라가서 사람들을 도와주려했다. 오랜 사투 끝에 아저씨와 남자가 결국 줄을 다 풀었다. 남자가 갈매기를 놓아주자 갈매기는 퍼덕이며 바위 위로 살짝 움직였지만 지쳤는지 날아가지는 않고 가만히 앉아있었다. 구경을 하고 있던 사람들과 우리는 모두 한마음이 돼서 다같이 박수를 쳤다. 정말 다행이었다. 갈매기를 그대로 놔뒀으면 거기서 죽었을 것이 뻔했지만 그 곳이 조수간만의 차가 심한 서해안이었던 것, 그리고 물이 더 차지 않고 빠졌던 것이 천운이었다.


사람들에게 가까스로 구조된 갈매기. 줄을 풀려는 오랜 발버둥으로 지쳤는지 바위에 앉아 쉬고 있다.


당일날 즉흥적으로 결정한 여행이었지만 큰 깨달음을 얻게 된 소중한 경험이었다. 세 가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첫 째는 집단 지성의 힘이다. 나는 처음 바위 위에 앉아있는 갈매기를 발견하고는 너무나도 안타까웠지만 방법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갈매기를 구하다가 자칫 사람이 위험할 수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내 친구가 도움을 요청할 생각을 하지 않았더라면 갈매기를 구할 수 없었을 것이다. 또한 젊은 남자가 물이 차있는 짧은 길을 놔두고 험한 바위길을 택할 생각을 하지 않았더라도 결과는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아저씨가 좁은 바위 위에 올라가서 남자를 도와야겠다고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것 또한 혼자가 아니라 함께였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둘 째, 도전은 변화를 수반한다. 도전을 하지 않으면 변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우리는 바위를 건너 사람들이 가지 않는 곳에 가려는 도전을 했고 내 친구는 포기하지 않고 사람들을 불러모으는 도전을 했으며 젊은 남자는 험한 바위를 타고 갈매기에게 도달하려는 도전을 했 아저씨와 청소년은 젋은 남자를 도우려는 도전을 했다. 무모해 보일 수 있는 도전이 결국 변화를 만들고 마침내 한 생명을 살린 것이다.


셋 째, 사랑의 힘은 위대하다. 예전에 언급했던 적이 있지만 나에게 사랑은 무언가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다. 그 대상은 사람이 될 수도, 동물이 될 수도, 심지어 사물이나 지혜가 될 수도 있다. 이 모든 것을 가능케 했던 것은 갈매기에 대한 내 친구의 사랑이었다. 갈매기에 대한 따뜻한 관심이 있었기에 연줄에 감겨 오도가도 못 하는 갈매기를 외면하지 않고 도울 수 있었다. 내 친구와 사람들이 갈매기를 사랑하지 않았더라면 갈매기는 그 자리에서 굶어 죽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랑의 힘은 위대했고 마침내 하나의 생명을 살리기까지 했다.


과거에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렇게 말했다.


"Dilige, et quod vis fac(사랑하라, 그리고 네가 원하는 것을 하라)"


사랑하는 것은, 그리고 원하는 것을 행하는 것은 행복에 다다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닐까 싶다. 마지막으로 내 친구는 정말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다. 그 사람과 함께여서 행복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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