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느리 리포트

시가에서의 첫 생일

by 바비줌마


누군가 태어난다는 것은 축복 그 자체이다.
어디서 어떤 집안에 어떤 모습으로 태어나던 세상에 나오는 순간만큼은 모두에게 감동을 준다. 비록 그 삶이 앞으로 어떻게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던 처음 세상에 나오는 순간은 모두에게 기쁨이 되고, 감동을 주게 된다.
이전의 남아선호 사상이 아직도 조금은 남아있지만 최근에 들어서서는 도리어 여아를 더 선호한다는 말까지 나도는 걸 보면 남아선호 사상도 옛말이지 싶다. 최근에는 여자아이든, 남자아이든 그나마도 낳지 않으려는 젊은 사람들로 인해 출산율이 현저히 낮아지고 있다고 한다.

결혼을 하기 전에는 그저 부모에게 사랑받고, 주는 것보다는 받는 것에 더 익숙해져서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해 준 것에 대해 감사하기는 쉽지 않다. 도리어 모든 사람이 마치 자신 한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위해 주고, 사랑해 주기만을 바라게 된다.
그런데 막상 결혼을 하고 나면 자신이 태어난 걸 알아주고 축복해 달라고 해야 하는지, 아니면 그냥 그대로 있다가 지나쳐도 아무 말을 말아야 하는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물론 남편이 기억하고 축하해 주겠지만 남편 한 사람만으로 만족을 해야 하는지, 시가에서 내 생일을 알고는 있는지 생일이 임박해서야 그것도 궁금해지게 된다. 결혼하기 전까지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아도 가족 모두가 기억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집안이 바뀌고, 사람들이 바뀐 상태에서 자신의 생일까지 기억하며 챙기기는 쉽지 않아 많은 며느리들이 첫 생일에 상처를 많이 받는다고 한다.
시간이 지나면 반복을 하기 때문에, 혹은 각자 집안의 분위기상 잘 기억하는 집이 있고, 뭐 대단한 생일이냐고 가볍게 여기는 경우도 있겠지만 결혼하기 전 친정에서 어떤 모습으로 생일을 보냈느냐가 문제의 핵심이 되는 것 같다.

나 역시 모든 식구가 생일을 기억해주고 선물이며, 생일상이며 요란스럽게 생일을 보냈기 때문에 내 생일을 스스로 챙겨서 보내야겠다는 생각은 아예 한 적이 없다. 더구나 모든 시가의 사람들이 양력으로 생일을 보내는데 혼자서 음력 생일을 보냈기에 기억하기는 더욱 쉽지 않기 때문이다.
결혼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맞이하게 된 생일이니 더욱 그럴 것이 전혀 새로운 식사와 생활을 익히기에도 힘에 벅차 자신의 일을 기억한다거나 뭔가 새로운 일을 도모하기는 정말 어려웠다.
더구나 더운 한여름의 생일은 미리 무언가를 만들어 놓을 수도 없고, 당일 아침에 음식을 만들어야 하는데 복잡한 식단을 가지고 있는 시가에서의 아침 생일상이란 한편으로 생각하면 호사스러운 일이라고도 할 수 있다.

내 생일인 그날도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남편은 서울에서 직장에 다니고 있으니 혼자 일어나 방문을 열었는데 아래층에서 다른 날과 다르게 기름진 맛있는 음식 냄새가 나고 있었다.
순간 늦잠을 잔 건가 싶어서 시계를 들여다보니 다른 날과 다름없는 시간인데 이상하다 싶어서 부리나케 부엌에 들어가니 이미 커다란 상에 이런저런 음식들이 가득 자리를 잡고 놓여있었다.
모든 음식들이 김을 모락모락 내 가며 방금 만들어서 상에 놓였다고 서로 말하듯이 따뜻함이 물씬 느껴지는 모습이었다.
그럼에도 시어머니는 바쁘다는 듯이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며 가스레인지에서 무언가를 열심히 뒤적거리다 다시 싱크대로 가서 칼질을 하고, 냉장고를 열었다 닫았다 해 가며 엄청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내가 뭘 해야 할지 몰라 우두커니 서 있는 것도 모르는지 전혀 신경도 쓰지 않았다.
'오늘이 시가에 무슨 행사가 있는 날인데 내가 잊어버린 건가, 아님 미처 내게 알리지 않았나?'
아무리 생각해도 머릿속엔 물음표만 날아다닐 뿐 답이 나오지 않아 겨우 용기를 내어 무슨 날이냐고 물었더니 보는 둥 마는 둥 하는가 싶다가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와 함께 시큰둥하게 따로 할 것 없으니 어서 밥 먹을 준비나 하란다.
이런 불편함이 또 있나? 눈 비비고 일어나 허겁지겁 나왔더니 시어머니는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데 밥 먹을 준비나 하라니...... 그것도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새 며느리에게.....
시어머니는 무슨 생각에서 그리 말했는지 모르지만 며느리 입장에서는 당황스럽고 황당함 그 자체였다. 주춤거리며 망설이다 어쩌랴 싶어 저 상을 놓을 자리는 방이 아닌 거실이다 싶어 거실에 방석만 가져다 놓았다.
평소에는 방에서 각자의 상을 따로 놓고 먹었는데 오늘 아침상은 모두가 함께 먹는 밥상인 것이 예사로운 날이 아닌 것만은 사실인 것 같아 알아서 처신하기로 마음먹고 멀거니 서서 말 그대로 밥 먹을 준비만 하였다.
그리고 차려낸 밥상에는 미역국이 놓여 있었고, 불고기에, 잡채, 샐러드, 생선구이 등등 평소에는 혈압이나 당뇨로 밥상 근처에도 오르지 않았던 고 열량의 반찬들이 수두룩하였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밥상을 내려다보는 내게 어서 먹자더니 시아버지가 기도를 시작하였다.
그런데 그 기도 내용에 '우리 며느리를 보내준 것에 감사한다는 말과 이 세상에 보내줘서 한 식구가 되게 해 준 것에 감사하다는 말을 하는 게 아닌가.' 세상에 이런 생일상은 처음이었다.
그동안 수 없이 친정엄마가 생일상을 차려주고 모든 친정식구들이 축하를 해 줄 때는 그저 신나기만 했는데 시아버지의 기도에 왜 그리 눈물이 나던지 지금도 그때 생각을 하면 눈물이 난다.
그런데 왜 그렇게 눈물이 났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시집살이에서 받은 생일상이라서도 아니고, 시어머니가 만들어준 생일상이라는 이유만도 아니고, 첫 생일을 남편 없이 보내는 것도 아니고, 남편이 없는 가운데 혼자 생일상을 받아서도 아닌 것 같은데 말로 뭐라 표현할 수 없는 감동과 서글픔, 기쁨이 뒤섞여 알 수 없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우러난 눈물이었다.

전날까지 아니 당일 아침까지도 아무 말 없이 이 생일상을 마련하기 위해 이른 새벽부터 일어나 소리가 나지 않게 하려고 얼마나 조심조심하며 만들었을까를 생각하니 그 자체가 감동이었다.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가 아니라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위해서 그런 수고를 아끼지 않은 것에 어느 며느리가 감동하지 않겠는가.
생일상도 생일상이지만 시부모는 먹을 수 없는 음식들을 오직 한 사람 며느리를 위해 장만한 것도 대단했다. 입에 맞느냐, 간이 맞느냐, 먹어볼 수가 없어서 눈짐작으로 했으니 정성으로 먹으라며 네 남편도 함께 해야 하는데 떨어져 있어서 함께 하지 못하게 되어 미안하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그 날의 생일상은 눈물과 콧물을 섞어 함께 먹어 사실 맛도 잘 몰랐다. 그러나 평소 싫어하던 미역국도 너무 맛있게 먹었고, 간이 너무 강해 짭짤했던 잡채도 세상에 둘도 없는 맛이라며 열심히 먹는 내 모습을 무척이나 즐거운 모습으로 바라보았다.
당신들은 먹을 수 없음에도 말이다.
다음부터는 안 차려준다며 첫 생일이라 차려준 거라는데 이 한 번의 생일상으로 난 평생 받을 생일상을 다 받은 듯이 감사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여러 부류의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데 입으로만 생색을 내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실천을 하지 못할 것도 쉽게 그때의 기분에 따라서 말을 하는데 어느 사람은 그 말을 지나는 말로 그냥 가볍게 듣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느 사람은 그 말을 꼭 기억하고 실천하기를 바라기도 한다. 나 역시 한 번 뱉은 말은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편인데 말보다 앞서 먼저 실천하고 몸소 보여준 시부모의 사랑은 그 이후 내 삶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시부모가 살아있을 때 결혼을 한 나와 시어머니만 있을 때 결혼한 둘째 동서, 그리고 시부모가 다 돌아가셔서 아무도 없을 대 결혼한 막내동서를 맞이하면서 난 시어머니가 보여준 사랑을 내가 받은 만큼 그들에게도 전해주려 어린 나이임에도 부단히 노력했었다. 아마도 시부모의 몸소 보여준 그 사랑이 내게 스며들어 어느 순간 몸에 밴 것이 아닌가 싶다.

비록 생일상은 한 번만 차려주었지만 그 이후에도 잊지 않고 생일 당일에는 늘 내 곁에 함께 있어준 시어머니의 말 없는 사랑을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첫 생일만 보고 그 이후로는 함께 하지 못한 시아버지의 앞치마 사랑도 난 여전히 기억한다.
남편을 서울로 보내고 혼자서 시부모와 살고 있는 며느리가 안쓰러워서인지 시아버지는 매일 아침 출근할 때마다 한복 위에 입은 앞치마에 꼬박꼬박 5,000원씩을 넣어주고 출근했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당신들 때문에 먹는 것에 제약이 많아 먹고 싶은 것을 혹여라도 못 먹을까 봐서인지 늘 맛있는 거, 먹고 싶은 거 사 먹으라며 넣어주었었다.
하루는 두르고 있던 앞치마에 주머니가 없어 용돈을 주려던 시아버지의 손이 헤매는 것을 보고 얼른 주방에 가서 뜨거운 것을 집을 때 쓰는 장갑을 들고 와서 앞치마 위에 턱 하니 올려놓은 적도 있다. 그 모습에 모두가 한바탕 신나게 웃었는데 지금도 앞치마를 보면 그 속에 넣어주던 시아버지의 손과 사랑이 보인다. 그리고 그 추억으로 30년 가까이 시부모를 기억하며 살고 있다.

생일이 별 거라면 별 거고, 또 아니라면 별 게 아닐 수 있다.
어쩜 머리가 크고 부모가 되면서 태어나게 해 준 부모에게 감사해야 한다는 걸 알아갈 때쯤이면 부모들은 이미 우리 곁을 떠났을 수도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부모 대신 우리의 자식들에게 부모가 보여준 그 모습을 보여주지만 내 부모가 내게서 서운했을 서운함을 내 자식들에게서 느끼며 살아갈지도 모른다.

오늘도 누군가의 생일일 것이다.
이 세상에 태어나고 한 가정의 축복을 받고, 주변의 사람들에게 기쁨을 준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받는 것보다 주는 것에 더 큰 기쁨이 있다는 것도 함께 기억했으면 한다.
자신의 생일에 기대하기보다 자신의 생일을 기억해주는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먼저 베푸는 것도 오래 추억할 만한 멋진 생일이 될 것 같기 때문이다.
내 시부모가 그랬듯이 말이다.

그래도 오늘이 누군가의 생일이라면 가장 아름다운 말로 축복해 주고 싶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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