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느리 리포트

변하지 않는 기질

by 바비줌마



사람의 기질은 평생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오죽하면 평소에 안 하던 행동을 하면 ' 저 사람이 곧 죽으려나 보다'라는 우스개 소리도 있는 걸 보면 우리네 기질은 타고나는 것도 있고, 살아가면서 환경이나 형편에 따라 새로 생기는 것도 있을 것이나 그 기본 바탕은 대부분 크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만 기질이나 사람이 바뀌었다고 느낀다면 그건 어느 환경에서 어떤 사람들과 새롭게 섞이면서 기질이 좀 다듬어지거나 아니면 드러내지 못하는 상황일 것이다.
그렇게 변하지 않는 기질로 인해 우리의 삶이 더 고단해질 수도 있고, 어떤 면에서는 더 쉽게 생각하면서 편해질 수도 있다고 본다.

나 역시 특별하게 타고난 기질이 많이 바뀌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결혼을 하고, 신앙생활을 하면서 또는 맏며느리라는 자리에서 스스로 다듬어지고, 내려놓으려고 노력하면서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맞추다 보니 조금은 다르게 보인다는 말이 맞을 것 같다.
기질은 아니나 성격상 게으르다는 표현이 맞는지는 모르겠으나 귀찮아하는 것 중에 하나가 어디를 가던 무엇을 들고 다니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최소한의 것만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들고 다니는데 작은 핸드백도 귀찮아할 정도로 손에 뭘 드는 걸 싫어해서 아무리 멀리 여행을 가더라도 가장 기본만 들고 가기에 만약 우리 4 식구가 20여 일간의 여행 일정에도 가장 작은 기내용 트렁크 두 개면 해결이 될 정도다. 그것도 방을 두 개로 나누어 쓰기 때문에 그렇지 아마도 하나의 방에서 4명이 다 묵는다고 한다면 하나로도 가능하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게 들고 갔더라도 가져오지 않아서 다소 아쉬울 때는 있으나 엄청 불편하지는 않다. 아쉬우면 아쉬운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불편하더라도 나름대로 적응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게으름이나 귀찮아하는 습관이 결코 좋다고 할 수만은 없으나 결혼생활에서는 그 덕을 톡톡히 보았다.

시아버지가 죽고 서울로 분가해 살면서 혼자 시가에 남아 있는 시어머니를 생각해서 매주 금요일이면 어김없이 돌도 안 된 첫 아이를 등에 업고 기차를 타고 시가에 갔다가 월요일 새벽에 남편이 먼저 올라가고 남편의 퇴근시간에 맞추어 오후에 돌아왔다.
남편이 금요일 출근길에 기차 안까지 입장권을 끊어서 태워주면 시어머니가 역시 입장권을 끊어서 도착한 기차 안까지 들어와서 우리를 데려갔기에 시가로 가는 거나 서울로 다시 돌아오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지금은 기차를 탈 때 아무 확인 없이도 각자의 정해진 자리에 앉으면 되는 시스템으로 겉만 보면 저 사람이 표를 가졌는지 안 가졌는지도 알 수가 없으나 그 당시만 해도 탑승자에게는 좌석권이 있었고, 잠시 기차 안까지 짐이라도 들어다 주기 위해 들어가려면 입장권이라는 별도의 표를 끊어야 했다.
원래 들고 다니는 걸 싫어하기도 하지만 아이가 있으니 들고 다닐 수도 없어서 주말마다 이렇게 움직인다고 해도 달리 더 들고 다니는 것은 없었다. 이동할 때 쓰는 아이의 기저귀 한, 두 장 외에는 들고 다니지 않았다.
아이 옷이며 여분의 기저귀도 시가에 다 있었고, 모유를 먹였기에 젖병도 필요가 없었고, 아이만 잘 데리고 다니면 그만이었기에 그리 불편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거기다 아이가 생기기 전부터 시가에 갈 때도 내 물건은 하나도 들고 다니지 않고 시가에 가서 시어머니의 고무줄 치마와 스웨터를 꺼내 입고 화장품도 시어머니 걸 쓰고 하물며 속옷까지 미처 준비가 안 되었으면 그것도 슬쩍해서 입었기에 짐이 필요하지 않았다.
왜 그렇게 했는지는 모르지만 시어머니 것이라고 해서 어렵다거나 사용하면 안 된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고, 단지 들고 다니는 것이 싫었기 때문에 편하게 생각한 것 같다. 그러나 그런 내 모습을 보며 시어머니는 '젊은 애가 참 희한하다'는 말을 자주 하였다.
“생긴 건 깍쟁이 같이 생겨가지고 와 저러노?” 하면서도 싫어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나중에 알았지만 자기 것, 남의 것 하고 딱딱 구분하는 젊은 사람이 아니라 허물없이 구는 모습이 도리어 예뻤다고 한다. 분명 들고 다니기 귀찮은 성격 탓인데도 후한 점수를 따는데 도움이 되었던 것이다.

이런 일도 있었다.
시어머니는 어느 정도의 체격이 있었고, 난 45킬로의 마른 몸이었기에 고무줄 치마라고 해도 커서 둘둘 말아 입었는데 어느 날인가 화사한 꽃무늬의 스커트가 밖에 걸려있어서 새로 산 것이겠거니 하고 안 입으려고 다른 걸 찾느라 옷장을 뒤적거렸는 데 있던 거라면서 입으라고 해서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입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사이즈도 작고, 또 새 옷 같은데 하면서도 그러려니 하고 시가에 갈 때마다 그걸 찾아 입었고, 또 하얀 커버 양말에 레이스가 달리고 수가 놓아 있는데 여간 여성스러운 것이 아니라서 새로 샀냐고 했더니 양말이 없어서 샀는데 두 개니 그중 하나를 신으라는 말에 그도 그런가 보다 하고 신었다. 그런데 그냥 산 것이 아니라 젊은 며느리가 입기에, 신기에 예쁜 젊은 사람의 취향에 맞는 걸 준비해 둔 거였는데 그땐 몰랐다.

시어머니 화장품도 아무거나 눈에 띄는 대로 발랐는데 대학 졸업 때까지 화장을 안 하던 얼굴이라 그런지 내 것을 썼을 땐 괜찮았는데 시어머니 화장품을 바르고 잔 첫날은 얼굴에 열꽃이 피어서 음식을 잘못 먹은 줄 알았는데 화장품이 맞지 않아서 생긴 일이었다.
분명 내 탓인데도 시어머니는 마치 당신이 잘못하여서 그렇게 된 것처럼 하루 종일 내 얼굴을 볼 때마다 "어쩌누 저걸 어쩌누" 하면서 안타까워했다.
그리고 그다음 주에 시가에 갔을 때 내가 쓰고 있는 것과 같은 브랜드의 화장품이 화장대에 나란히 세워져 있는 걸 보았다.
“어? 어머님 새로 화장품 사셨어요?”
“그래. 나도 전에 걸 다 써서......”
"그래요? 잘 됐네요. 제 거랑 똑같은 거라서 이제 얼굴에 마구 발라도 되겠어요."
정말 다 써서 새로 산 것인 줄 알았는데 일요일에 교회에 가려고 스타킹을 찾다가 화장대 밑 서랍 구석에 전에 시어머니가 쓰던 화장품이 쓰다만 채로 그대로 있는 걸 보고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새로 바꾸고 싶어서 샀나 보다 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매주 동일하게 들락거리던 시가에 주중에 갈 일이 생겨 미처 연락하지 못하고 시가엘 갔는데 화장대 위에 시어머니가 전에 쓰던 화장대 깊숙한 곳에 넣어두었던 화장품들이 나와있는 게 아닌가. 그제야 뒤늦게 며느리를 위해 지방분이 전혀 없는 순한 화장품을 일부러 샀다는 걸 알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어머니에게 고맙다거나 미안해하지 않았고, 그런 말도 할 줄 몰랐다.
분명 맘은 있는데 어리고 철없는 며느리는 그 큰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다. 도리어 들고 다니는 것을 귀찮아하는 며느리가 미안해하거나 불편해할까 봐 전혀 생색도 내지 않았다.
가끔 화장을 할 때 그때의 일을 생각해 본다.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매일 쓰는 것도 아니고 주말에나 한, 두 번 쓰는 것이니 작은 샘플이라도 가지고 다니라'고 말했을 것 같다.

나는 서울에 있기에 지방에 있는 시어머니가 무얼 사는지, 무얼 먹는지 사실 알 수가 없다. 또 뭘 하던 내가 관여할 일이 아니었는데 작은 것 하나를 사도 꼭 두 개를 사서 시가에 가면 그걸 내게 보여 주며
“이것 샀는데 맘에 드냐? 내 것 사는 길에 네 것도 하나 샀다. 어느 게 맘에 드냐?” 하며 늘 먼저 고르라 하였고,
“먹었더니 맛나더라 니도 먹어보라고 내 들고 왔다.”며 우리 집에 올 때마다 들고 오던 음식들을 보면 한 주간 동안 뭘 먹고 뭘 했는지 굳이 같이 보지 않았어도 알 수가 있었다,
유난히 손이 많이 가는 나물이나 반찬을 좋아하던 며느리를 위해 갖은 나물들을 다듬고 데쳐 꼭 짜서 비닐봉지, 봉지마다 들고 와서 이건 뭐고 저건 뭐라며 열심히 설명하던 모습들, 그 어느 것도 쉽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그러면서 할 줄도 모르고, 덜덜거리는 며느리에게 늘 성격이 좋다며 예뻐하였다.

안 들고 다니는 며느리 덕에 시어머니도 좀 더 화려해지고 밝은 계열의 옷을 입게 되었는데 그건 자기 물건을 하나도 들고 오지 않는 며느리가 골라 입기에 너무 우중충할까 봐 미리 사 두었던 시어머니의 옷들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시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늘 검은 옷이나 어두운 옷만 입었던 시어머니가 새로 태어나 자라는 손주들에겐 밝고 환한 옷을 보여주어야 아이의 성격이 밝아진다면서 며느리를 위하고 손주를 위하다 보니 당신의 옷차림이 바뀌게 되었다고 말했었다.

가족이나 친구들과 여행을 가면서도 왜 숙소에서 해 먹을 재료들을 바리바리 들고 가서 밥해 먹느라 애를 쓰는지 사실 그건 지금도 이해가 안 된다.
놀러 가서는 밥해 먹느라 숙소에서 나오지도 못하고, 아침부터 집이 아닌 또 다른 곳의 주방에서 왔다 갔다 하며 분주하게 밥해 먹는 데에 에너지를 다 소비하는지 물론 가족에게, 혹은 친구들에게 맛있는 걸 해 먹이고 싶은 마음은 알겠지만 굳이 그럴 거면 모든 것이 갖추어진 집에서 편하게 해 먹지 하는 마음이 더 크다.
그래서 우리 가족은 콘도나 리조트보다 호텔을 더 선호한다.
이왕 생색내고 간 휴가인데 시설 좋은 호텔에서 편히 자고, 그 지역의 맛있는 음식들을 먹으며 하루라도 편히 쉬면서 놀다 와야지 멀리 놀러 까지 가서 밥해 먹느라 힘들게 낸 시간을 다 허비하고 싶지는 않다.
더구나 주부인 엄마에게도 휴가는 필요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밥은 해 먹지 않아도 대신에 물이나 이런저런 간식을 준비하기는 하지만 그것도 되도록이면 현지의 특산물들을 사서 먹는 걸 더 좋아한다. 그래서 이동할 때마다 아이들에게 여기 '맛 집이 어디인지, 특산품이 무엇인지 검색해 보라'고 하는데 이런 내 모습을 지켜보던 아이들은 늘 '우리 엄마가 제일 지혜롭다'고 한다.
대부분 자기 친구들은 놀러 가면 엄마가 밥해 먹으며 불편한 환경 때문에 돕지 않는다고 다투기도 하고, 뭘 사 와야 한다고도 하고, 그러면서 모처럼 낸 시간을 거의 다 숙소에서 보내고, 또 치우려면 가족 모두가 움직여 정리를 같이 해야 하기 때문에 짜증이 난다고 했다는데 이럴 때는 나 자신도 들고 다니기 싫어하는 내 스타일이 무척이나 맘에 든다.

더불어 별개의 이야기일 수도 있겠으나 다 같이 가족이 휴가를 가면 '엄마도 쉬러 온 거'라는 것을 보여줄 필요도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 아이들은 부모를 많이 챙기기도 하지만 이기적인 면도 많고, 혹은 잘 몰라서 미처 챙기지 못하는 부분도 있겠지만 다소 무관심한 부분도 많은 것 같다.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늘 바쁜 아이들로 '다 같이 밥 한 번 먹기가 어렵다'는 말을 자주 듣게 된다.

오래전에 같은 아파트 옆집에 살던 아기 엄마가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나보다 나이가 조금 많았는데 쌍둥이까지 아들 셋을 두고 있었다.
어느 날 남편이 바나나를 사 와서 아이들이 그걸 나누는데 아빠 하나, 나 하나 하며 각자 자기들 것까지 다 챙기면서 정작 엄마의 몫은 없는 모습을 보고
"왜 엄마는 안 주는데?"라고 물었더니 "엄마는 늘 안 먹는다고 했잖아"라는 말에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아직 어려서 그러겠거니 생각하면서도 그 모습이 그대로 각인되면 자기는 나중에 밥도 못 얻어먹을 것 같아서 그다음부터는 "엄마도 먹을 거야 그러니 엄마 것도 챙겨줘."라고 이른 후 먹기 싫어도 꼬박꼬박 자기 분량을 받으니 어느새 아이들도 늘 무언가를 나눌 때는 엄마 것을 챙기더라는 말을 하였다.

이 말이 우스운 듯하나 큰 시동생이 어린 나이임에도 시할아버지가 농사지어 보내오는 쌀을 보면서 "엄마도 나중에 시골에 가서 쌀 보내주어야 우리가 먹지"라고 대답했던 말과 연상이 되면서 가족이 휴가를 가면 주부인 엄마도 똑같이 편히 즐기다 오기를 바란다. 그리고 시부모와 함께 가더라도 같은 방법으로 쉬면서 며느리이지만 휴가를 온 이상 며느리도 쉬러 왔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지금 내게 시가는 없지만 작은 시가나 시할아버지 집에 가서도 난 여전히 스스럼이 없다.
때가 되면 묻지도 않고 냉장고를 열어 식사 준비를 하고, 필요한 것은 달라하고, 무얼 준다고 하는데 필요 없으면 필요 없다고도 편히 말한다.
시어머니 무서워 주는 대로 받아다가 버리거나 남을 주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건 옳지 않다고 본다. 며느리가 가져가면 시가에서는 며느리가 좋아하는 줄 알고 다음번에도 또 준비해서 주려 하기 때문이다.
차라리 필요한 것을 달라하면 주는 시어머니도, 받는 며느리도 서로 좋을 것이기에 서로 말하면서 또 서로를 알아가는 것이 지혜롭지 않을까 생각한다.
준비해 준 물건을 맘에 들던 안 들던 안 가져가면 서운해할까 봐 상대방의 진심도 모른 체 가져와서 버리거나 남을 주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나중에 버렸거나 남을 준 사실을 안다면 더 얼마나 서운하겠는가.

며느리가 나 하나였을 때는 무엇이든 준다고 한 것은 언제 가져가더라도 다 내 것이었기에 굳이 당장 가져가지 않아도 되어서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늘 "다음에 가져갈게요."라는 말로 뒤로 미루었다. 귀찮기도 하고 그걸 들고 갈 엄두도 나지 않아서였다. 그러면 아쉬운 표정으로 그러라고 하면서도 늘 미련이 남는지 들었다가 내려놓는 물건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시어머니였다.
그런데 아래로 동서가 들어오고 아무래도 맏며느리인 내게 하나라도 더 주고 싶었던 마음에서인지 앞 접시로 쓰라고 그릇을 10개 샀다며 동일한 사이즈의 그릇을 또 가져가라기에 역시 늘 하던 대로 다음에 가져가겠다고 하자 "야는 다음이 어딨노? 동생이 보면 가져갈 텐데" 하길래 "그럼 필요하다고 하면 동서 주세요"라고 하였더니 불끈 화를 내었다.
"어찌 그리 욕심이 없노? 인자 안 가져가면 갸가 다 가져가고 니 것은 없다."
내가 가져가나 동서가 가져가나 며느리들이 가져가는 것은 마찬가지일 텐데 이게 언성을 높일 일인가 싶다가도 너무 서운해하여 반만 들고 가겠다고 하고, 반으로 나누어 들고 온 적이 있다.
시어머니는 늘 뭔가를 주고 싶어 하고, 난 그것을 기쁘게 받아 와야 한다고 여기면서도 들고 다니기 싫어서 시어머니의 서운한 마음은 모른 체 늘 거절을 했었다.

사람마다 기질이나 성향이 달라 나름대로의 지혜로 서로 잘 지내겠지만 어른으로서 베풀고 아랫사람으로서 섬긴다면 고부간의 갈등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껏 생각해 보면 내 지혜나 섬김보다 늘 먼저 베풀고 품었던 시어머니와 시아버지가 있었기에 기질은 변하지 않았지만 지금의 내가 만들어진 것 같다.

결혼 초에 시부모가 다 돌아가시면서 시동생 둘만 남겨놓고 살아계실 때 호되게 시집살이라도 시켰다면 결코 제대로 살지 못했을 것이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늘 베풀어준 그 사랑이 있었기에 그걸 추억하며 그 사랑을 동일하게 받지 못하는 동서들을 안타깝게 여기며 시부모 대신 그 사랑을 나누어주려 노력했기에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 같다.
화장품을 쓸 때나 스웨터를 입을 때, 양말을 신을 때, 시장엘 가도 어디서 무얼 하던 시어머니와의 추억이 있다. 어느덧 30년이 훌쩍 넘어버렸지만 그때의 모습들은 여전히 어제 본 듯이 선명하다. 숨바꼭질하듯 물건을 숨기며 찾으며 시어머니 것을 늘 즐겨 쓰던 며느리에게 꾸중이나 구박은 없었다. 오직 먼저 가질 수 있는 선택권만이 있었다.

그래서 시어머니가 그립다. 가끔은 큰소리에 놀라고 화를 낼 때는 무섭기도 했지만 여전히 내게 선택권을 주고 먼저 가지라 하고, 무조건 내 편을 들어주던 든든한 백그라운드가 없어져서 더 그리운 것 같다.
내 것, 네 것 구분하며 너무 까칠하게 구는 며느리!
당신 짐 싸가지고 다니며 철저하게 자기 것만 쓰는 시어머니!
서로 간에 피해를 주지 않으려는 배려에서 나온 모습일 것이다. 그러나 너무 배려하는 모습에서 서운함이 생길 수도 있다고 본다. 우리의 모습대로 가족이라면 좀 더 편하게 지낼 수 있는 나눔도 좋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래도 자신이 남의 물건을 쓰는 것도, 남이 자신의 것을 마음대로 사용하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친정어머니처럼, 친구처럼 고부간에도 허물없이 서로 나누며 같이 쓰는 모습 좋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그렇게 조금씩 변해가는 것을 내가 들고 다니는 가방을 통해 알게 되었다.
20대 시절에는 짐을 들고 다니기 싫어해서 정말 이전에 비해 커진 핸드폰 하나만 넣어도 가방 안이 꽉 차는 핸드백들이 가지고 있던 것의 대부분이었다. 나름 명품이기도 하고, 대부분 비싸게 주고 산 것들인데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쓸모가 없어졌다.
시간이 지나는 만큼, 나이가 드는 만큼 그 안에 들어가는 물건들이 많아지고 가방도 자연 커졌기 때문인데 나이가 들면서 꼭 있어야 하는 약들과 누굴 만나느냐에 따라 채워지는 물건들이 많아져서 이전에 비해 엄청 커진 가방인데도 가방은 늘 배불뚝이가 된다.
봉사를 하러 다니면서는 함께 나눌 간식을 채워 넣고, 친구를 만나는 자리에는 이것저것 나누고 싶은 물건들과 직접 만든 간식거리들을 챙기다 보니 늘 가방은 비좁다.
이전 같으면 어림도 없는 일인데 그렇게 나누는 것이 즐겁고 또, 기질은 변하지 않았지만 그 기질을 지혜롭게 쓸 줄 아는 지혜를 대신 갖게 된 것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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