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어렸을 때의 친정은 병원과 집이 함께 있던 구조였다.
친정아버지가 산부인과 의사였는데 큰길에 있는 쪽은 병원이었고, 반대편의 안쪽은 우리 가족이 살던 집이었다. 그래서 늘 뒤쪽으로 돌아서 다녔고, 주로 내가 그랬지만 가끔 급하거나 돌아가려면 멀기에 바로 질러가기 위해 병원을 통과해서 갈 때는 조용하게 다녀야 해서 뒤꿈치를 들고 다녔다.
산부인과여서 늘 산모와 아기가 집에 있었고, 병원과 안채 사이에 있는 방에 여러 명의 산모와 아기들이 자고 있어서 큰소리로 다니면 혼났기에 늘 병원을 가로질러갈 때는 도둑고양이처럼 살금살금 걸어 다녔다.
그런 구조를 갖고 있다 보니 친정아버지를 도와 엄마는 간호사가 아님에도 늘 병원일로 바빴다. 집안일은 다른 사람이 하고, 아무래도 병원일은 조심스러워서 그런지 간호사가 있음에도 엄마의 역할은 정말 많아서 어린 눈에도 엄마가 편히 쉬는 것을 잘 보지 못했다.
하루 24시간 미역국이 끓고 있고, 지금처럼 일회용 기저귀가 없던 시기라 병원에 있는 동안은 그것까지 엄마가 삶아서 대주어야 하고, 병원의 기구들도 늘 소독을 해야 해서 다른 집보다 우리 집은 유난히 더 더웠고, 미역국 냄새로 음식 냄새가 멈춘 적이 없었다.
그런 이유로 유난히 미역국을 싫어했는데 식성도 다시 돌아가는지 지금은 또 미역국을 좋아한다.
오빠들과 나이 차이가 있어서 아직 엄마의 손길이 많이 필요한 시기였을 때도 난 일하는 할머니나 친할머니의 손에서 컸고, 간혹 칭얼거리면 소독약 냄새가 가득한 하얀 가운을 입은 아버지의 등에 업혀있는 것이 그나마 부모에게서 받는 호강이라면 호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