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믿음을 시험하는 것들
우리의 믿음을 시험하는 것들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성경, 불경, 코란 등 종교생활의 가장 기본적인 말씀들이 담긴 것이 기초가 되어 그것을 기반으로 단순하게는 무조건 순종하고, 조금 더 나아가서는 폭넓게 활용하여 생활에 적용하면서 조금은 구별된 삶을 살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러나 최근 근 1년 만에 코로나로 바뀐 우리들의 일상은 이제껏 살아온 삶의 전체를 뒤흔들고, 바꾸어 놓았다.
특히 자신만의 신앙을 가지고 사는 종교인들에게는 그 삶의 기준, 가치들이 흔들리고 있는 듯하다. 분명히 하나님이 주신 말씀이 삶의 기준이 되고, 버팀목이 되어 주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현실이 되었기 때문이다.
코로나가 아무리 위험해도 평생에 한 번 약속한 결혼도 해야 하고, 삶을 마감하면서 유족들은 고인의 장례를 치러야 하는 상황에 자신들이 속한 종교단체의 도움을 요구하는 것이 지금의 상황에서는 무리일 수 있으나 그래도 고인의 종교를 생각하며 예식을 갖추고 싶어 하는 것 또한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거기에 반응해야 하는 교회는 어떨까?
나라에서 요구하는 정책으로, 모이지 말라니까 따라야지 하는 마음으로 너무 잘 지키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순간순간 든다.
물론 전염병이니 정부의 정책에 잘 따라야 하고, 조심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가끔은 이렇게 해야 하는 현실이 답답하고, 어쩔 수 없다는 말로 자기 위안을 삼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불편하다.
같은 교구의 담당자인 목회자는 어떤 이유로든 요구에 거절할 수가 없어 장례식을 집례해야 한다. 그리고 기도를 담당해야 하는 장로들과 같은 교구의 성도들, 그리고 평소 알고 지내던 교인들은 어떻게 대응할까.
교회에서 받은 직임인 장로, 권사로서 상황과 무관하게 충실하게 기도로 섬기고, 함께 동참하여 고인과 유족들을 위로하고, 함께 동참한 성도들을 권면하는지!
대예배 시 담당해야 하는 기도나 찬양, 봉헌, 안내 등은 어쩔 수 없이 순종하지만 장례식이나 결혼식은 굳이 참석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그러나 본인만 참석하지 않을 뿐 결국 누군가는 그 자리를 지켜야 하고, 위험하던, 무리가 되던 담당해야 할 몫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시간이 길어지면서 정작 기본으로 삼아야 하는 성경의 말씀이나 예수님의 모범은 아랑곳없이 어느 목사, 어느 장로, 어느 권사가 기준이 되어 그 목사도, 그 장로도, 그 권사도 하지 않더라는 말로 변명과 핑계를 삼게 된다. 그리고 스스로도 조금은 마음에 불편함이 있기에 도리어 자신의 행동에 대해 당연시해야 함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커지기도 한다.
분명히 임직을 받을 때는 그 임직에 대한 책임과 의무가 분명히 있을 텐데 말이다.
결국 임직은 성도로서 감당해야 할 십자가가 아니라 명예와 감투가 되어버리는 것이 아닐까 싶다.
교회의 직분 중에 장로, 권사, 안수집사와 달리 서리집사는 매년 직임을 받는 직분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교회는 한 번 서리집사로 정해지면 다음으로 장로나 안수집사, 권사로 임직을 받기 전까지는 계속적으로 서리집사로서 직분을 가지게 되는데 그와 달리 매년 서리집사로서도 임명을 하는 교회들도 있다.
장로, 권사, 안수집사는 안수를 받는 것이기에 한 번 임직을 받으면 임직을 받은 이후는 봉사를 하던, 안 하던, 임직자로서 본이 되던 안 되던 상관없이 살아생전 평생, 그리고 죽어서도 그 직분을 달게 되는데 서리집사를 매년 임명하는 교회는 봉사를 하고, 안 하고에 따라 서리집사로 임명을 하던지, 아니면 서리집사로 임명받기 전의 성도로 불리게 되는 교회들도 있다.
어찌 보면 서리집사는 임직을 받은 사람들보다 더 열심히 교회에서 봉사를 해야 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만큼 자유로울 수도 있다는 말일 것이다.
임직자들은 임직을 받는 순간부터 어딘가로 배정이 되어 봉사를 하게 하고, 그만큼의 책임을 주기 때문이지만 반면 임직자들을 그 자리까지는 보낼 수 있어도 그 자리에서 사역을 하는지, 안 하는지 까지는 교회에서는 알 수도 없고, 설사 안다 해도 어쩔 수 없다. 다만 서로 신뢰하고, 잘하리라 생각하는 것이다.
또 하나 어디서든지 열심도 좋고, 충성도 좋으나 가장 기본은 인격을 갖춘 성도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주위에서 보면 기본도 안 된 사람이 임직을 받는 경우를 아주 쉽게 보게 되고, 경험하게 된다.
사람들이 보이는 곳에서만 일하는 사람, 알아주는 곳에서만 사역하려는 사람, 사람 좋아 보이게 늘 칭찬을 하지만 그것이 진심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사람들은 교회의 어느 곳에나 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그룹 안에서 더 오래 살아남으면서 서로를 시험 들게 하지만 그것 또한 경험할 수 있는 사람들만의 경험이기에 증명할 수도 없고, 직접 경험해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더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알아도 아는 체를 누구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를 시험하는 것이 세상의 잘못된 죄악이어야 하는데 우리는 같은 공동체 안에서 성경이 아닌 목사 때문에, 장로 때문에, 권사 때문이 되기 쉽다.
목사도, 장로도, 권사도 하지 않는데 내가 왜? 그들도 안 하더라, 그들도 그러더라가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한다.
성도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단연 목회자들이다.
담임목사를 비롯해서 교구 목사, 사역에서 만나는 각 담당 목회자들, 장로들, 권사들은 가장 가까이서 좋던, 싫던 바라보게 되고, 그들을 따라 하게 된다. 그리고 평가하게 된다.
그리고 그 기준에 따라 자기 합리화를 하고, 핑계를 대고, 변명을 한다.
그러나 우리는 특히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의 보혈로 구원받은 것이지, 목사로, 장로로, 권사로부터 구원받은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교인들에게 임직자들은 어떤 식으로든 드러나고, 보이는 대상이기에 그만큼의 임직에 대한 부담도 가져야 할 것이다.
교회에서 봉사지로 임명받은 곳에 코로나로 위험하다고 1년 동안 한 번도 나타나지 않은 임직자들, 당연히 순번대로 돌아야 하는 기도 담당자로서 드러나는 곳에는 가지만 드러나지 않는 곳에는 안 가도 된다고 생각하는 임직자들, 우리가 국회의원들을 뽑아 놓고, 매번 해야 하는 후회와 실망이 교회 안에서도 너무나 당연하게 만연되는 현실은 성도들을 시험 들게 한다.
성도들은 믹스커피 먹고 있는데 브랜드가 새겨진 커피만 들고 다니는 목회자, 봉사하면서 남은 간식이나 교회물품을 마치 자신의 것처럼 쉽게 생각하고 마음대로 가져가는 권사들, 교회의 가장 큰 어른으로서 본을 보여야 하는 장로들이 권위만 내세우고, 자기주장만 한다면 뒤늦게 성도들은 자신의 선택에 실망을 하고, 시험에 들게 한다.
그리고 성도니까, 서리집사니까 아무것도 안 해도 된다며 뺀질뺀질 섬김만 받으려 하고, 투정과 불평만 일삼는다면 그 성도를 섬겨야 하는 모든 평신도 리더들을 시험 들게 한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성도일까?
코로나가 점점 심해져 교회에서 예배를 드릴 수도 없고, 성도들 간의 교제도 없어져 소통이 안 되다 보니 이런저런 불편함이나 보면 안 되는 현실들을 바라보면서 점점 교회로부터,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자신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구원은 예수님으로부터 온 것이고, 우리의 기준, 모범 역시 예수님의 가르침이었고, 우리를 주관하고 인도하는 분 역시 내 안에 상주하는 성령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런 실망스러운 부분들이 보인다면 그것에 반응하며 그렇지 않은 성도로서 살아가기 위해 더 깨어있어야 한다.
또 다른 성도가 자신으로부터 시험 들지 않도록!
아침에 머니투데이에서 발행한 메시지 하나를 읽었다.
‘똑똑하고 일 잘해도 반드시 팽 당한다.’는 타이틀로 전해진 메시지에는 세계 최대 규모의 금융회사 JP모간을 이끌고 있는 제이미 다이먼(64)이 42세 때 정상 직전까지 올랐다가 하루아침에 굴러 떨어지는 경험을 했다고 한다.
그는 그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에게 반드시 4가지가 있어야 성공할 수 있는데 그것은 ‘겸손, 개방성, 공정성, 진실성’이라고 하였다.
그의 말에 의하면
‘겸손’은 자신을 낮추는 것이 아니라 ‘내가 대우받기를 원하는 대로 다른 사람을 대우하는 것이다.’라고 말하며 무조건 나를 낮추고 남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나라면 어떨까를 생각해 보고 나에게 하듯 다른 사람에게 하는 것이 겸손이라는 것이다.
‘개방성’이란 열린 마음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구체적으로 ‘모든 사람을 똑같이 대하는 것’이라고 한다.
편견이나 선입견을 갖지 않고 누구도 차별하지 않고 누구에게나 똑같은 기회를 부여하는 것이 개방성이라는 것이다.
‘공정성’은 사람들을 똑같이, 차별 없이 대우하는 것이라기보다 정당하게 보상하는 것이다.
‘진실성’은 단순히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말한 대로 행동하는 것이다. 사람의 진실성은 말에서 시작해 행동으로 완성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이 4가지가 있어야 공동체를 이끌 수 있는 리더십을 인정받을 수 있고, 공동체가 뒷받침되어야 자신의 성공을 우리의 성공으로 키울 수 있다고 하였다.
제이미 다이먼이 말한 것이 꼭 성공을 위한 것이고, 어느 리더만이 갖추어야 할 조건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속한 가정, 회사, 교회 등등의 공동체 안에서 자신의 역할을 통해 공동체가 하나 되게 하는 역할로도 갖추어야 할 덕목인 것 같아서 인용해 보았다.
앞으로도 코로나는 변이 된 바이러스까지 더해져 우리를 더 힘들게 할지도 모른다. 백신을 전 국민이 맞기까지는 또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모르는데 지금처럼 막연하게, 무책임하게 남 탓이나 핑계를 대면서 외면하고, 자신의 안위만 위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안전을 위한 조심 하면서 건강이 허락하는 한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또 서로를 위하는 것이고, 알게 모르게 서로에게 힘이 되고, 이 어려운 순간들을 같이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