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씨의 식사를 향한 길은 멀고도 험하다
아가씨가 되고 싶다.
처음 이런 생각을 한 것은 언제였을까. 1+1 행사를 하는 요거트와 2+1 팩우유 사이를 맴돌던 때? 쓸 수 있는 쿠폰을 이중, 삼중으로 먹여 티셔츠 한 장을 샀을 때? 아니, 아니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이렇다. 연희동의 카레집, 히메지 카레 2호점에 처음 마주 앉은 날이었다.
히메지는 카레와, 튀김 토핑과, 몇 가지 우동을 파는 가게다. 아담하지만 깔끔하고, 그러면서도 너무 깔끔하지 않아 귀여운 테이블에 앉아 나는 카레라이스를, 와니는 카레우동을 시켰고, 나눠먹을 게살 크림 고로케도 하나 주문했다. 아직 어색하지 않게 코트를 입을 수 있는 날씨였고 저녁식사를 하기엔 좀 이른 시간이라 가게는 크게 붐비지 않았다. 보리차를 따르고 옆에 있는 무절임을 접시에 담으며 기다리다 보면 얼마 안 있어 메뉴가 나온다. 히메지의 카레는 색이 진하고 노란끼가 도는 갈색이다. 큼지막한 채소 중 단연 눈에 띄는 것은 감자. 숭덩 썰어져 들어가 끓으면서 뭉개지고 둥글어진 감자는, 입에 넣으면 파근파근 부드럽게 부서진다. 입에 넣으면 톡 쏘는 후추의 매콤함이 돋보이고, 그 덕인지 먹다 보면 몸이 따끈하게 데워진다. 진한 카레에는 고슬고슬한 강황밥도, 쫄깃한 우동도 어울린다. 식사를 마치고 나와서는 뜨거운 캔 핫초코를 사서 연희동을 걸었다. 머릿속엔 한 가지 생각밖에 없었다. 매일 이런 저녁을 보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만큼 근사한 저녁이었다.
그러나 매일의 식사는 얼마나 초라하고 볼품없는가? 생각해 보면 대개 좀 부실하고 불균형하다. 게다가 멋진 계획은 늘 실패하기 마련이다. 이건, 매주 2회 수영을 배우는 둘의 어느 아침 이야기다. 7시 수영 강습이 끝난 어느 아침, 와니와 나는 학교 근처에서 함께 밥을 먹을 생각이었다. 아침 8시에 여는 카페에 가서 아침식사를 하고, 식사와 함께 주문하면 할인이 되는 커피를 마시자. 수업이 이르지 않으니 남은 커피를 마시고 흩어지면 적당한 시간이 되리라.
아침 수영을 하는 이들에게 아침 식사, 특히 함께하는 식사가 얼마나 중요한 일정인지 아는가? 6시에 일어나 눈을 반쯤 뜨고 밖에 나서니 아침에 약속을 잡으려면 늦는다. 적어도 전날 저녁에는 이야길 나눠야 한다. 아침식사로 적절한 메뉴를 팔고 여는 시간이 이른 식당을, 생활 반경 가까이서 찾아야 하는 것이다. 수영을 하고 씻고 나오면 아무리 개운해도 얼굴에선 땀이 삐질 난다. 마침 날은 습도가 높아 후덥지근했고, 각자가 다니는 수영장에서 결전지(!)까지 오는 도중 콧등엔 이미 땀이 송골송골 맺힌 상태. 머리는 이미 아이스커피와 나폴리탄 생각으로 가득했다. 이 계획이 얼마나 멋지고 중요한지를 이렇게 길게 늘어놓은 이유는 한 가지다. 실패했으니까.
여덟 시 반쯤 만난 우리는 카페 오픈시간이 아홉 시로 늦어진 것을 확인했다. 카페에서 운영하는 인스타그램 고정 게시물에서였다. 삼십 분을 떠돌다 가게 앞에 도착했지만 여전히 불이 꺼져 있었고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문 앞에 붙은 부재 시 전화 주세요. 010-... 하는 팻말은 어쩐지 사람을 더 황망하게 해서, 결국 전화해 볼 생각도 못하고 돌아섰다. 아홉 시 지났잖아요! 오픈 시간 전인 빵집과 샐러드 한 접시에 9천 원쯤 하는 샐러드&샌드위치 가게를 거쳐, 결국 들어가 앉은 것은 한 김밥 체인점이었다. 그리고 아침부터 쫄면과 치즈라면, 김치 김밥을 시켜 먹고 헤어졌다. 10시였다. 한 시간 뒤인 오전 11시, 카페 인스타그램에 “오늘 매장 취식은 쉬어갑니다”라는 공지가 올라왔다.
특별한 경험인 마냥 길고 장황하게 늘어놓았지만 매일의 식사는 대체로 이런 편이었다. 편의점에서 파는 삼각김밥이나 컵라면과 구운 계란, 때로는 자가비 케쳡맛 30g 한 봉지까지! 하루 한 끼는 편의점에서 5천 원을 써야 했고, 저녁엔 꼭 제대로 된 식사를 하자고 나가 만 삼천 원을 쓰는, 평균 만 팔천 원의 나날이었다. 그러니 균형 잡힌 식사와 젓가락질 보챌 것 없는 여유, 그런 태도를 고수할 수 있는 고상함은 얼마나 아득한가.
시간에, 돈에, 불안에 쫓기다 못한 둘은 이러한 삶의 자세를 ‘아가씨답다’고 명명하였다. 가만히 앉아있으면 손톱을 다듬어주고, 아침엔 레몬을 띄운 세숫물을 방으로 날라주는 그런 삶을 꿈꾸는 것이 아니다. 엠블럼이 번쩍이는 차에서 매일 내리는 삶과도 다르다. 남이 벌어다 준 재산과 지위를 물려받고 놀고먹고 싶은 게 아니라는 이야기다. 우리는 꿈꾼다. 도시의 시커먼 매연과 소음을 뚫고 장바구니에 식재료를 가득 채워 돌아오기를. 시간을 들여 요리를 하고 남김없이 먹어치우고선, 접시가 말라붙는 일 없이 설거지를 해치울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말하자면 우리는 신분이나 지위가 아닌, '태도로서의 아가씨 되기'를 지향하는 데 이르렀다. 멋진 식사를 한 날과 그렇지 못한 날. 적당히 먹었어도 속이 든든한 날과 배는 부른데 더부룩한 날이 교차하는 일상 속에서 고상한 식사가 이어지기를 소망한다. 그런 태도가 모든 식사를 '아가씨의 식사'로 만들어줄 수 있기를 바란다. 그래, 여전히 멀고 험한 길이지만.
본 시리즈는 마음이 빈곤한 두 대학생의 식사 일기입니다. 앞으로의 식사에는 성공과 실패 중 어느 것이 더 자주 찾아올까요? 매주 수요일에 돌아와 알려드리겠습니다. 다음 주부터는 두 주에 걸쳐 두 사람이 각자 하나의 주제에 관해 느낀 것을 씁니다. 첫 번째는 <삼각김밥>입니다. 그럼 다음 식사에서 만나요… 피스아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