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옥수 수 Dec 17. 2019

빛드는 방에서 살아감

우리가 머문 식탁


내 사촌 진향이는 오랜 시간 자취를 하면서 다양한 형태의 집에 살았다. 고시원인가 싶을만큼 코딱지 만한 원룸을 시작으로 신사동 빌라에 전세로 살기도 했다. 그 집은 정말로 커서 침대와 식탁을 구석에 붙이지 않고 가운데 놓고도 공간이 남아 돌았다. 나도 거기서 6개월 정도를 살았는데 좋았던 기억은 ‘가로수길과 한강이 코 앞’인 것 밖에 없었다.

가까운 마트라곤 편의점과 압구정 현대백화점 식품관 뿐이었고 방엔 빛이 들지 않아 화장실 창문을 내다 봐야만 오늘의 날씨를 알 수 있었다. (자라 세일 때 피팅룸 줄이 너무 길면 일단 모두 사서 집에서 피팅 후 다시 가서 계산을 했던 건 나름 쏠쏠했다.)

어느 날은 ‘벌레 잡는 책’이라며 10센치 두께의 양장 원서를 가리켜서 그냥 웃어 넘겼는데 며칠 뒤 나는 그 책으로 바퀴벌레를 하루에 두 마리씩 잡았다. 돈 벌레가 사는 곳엔 바퀴가 없다던데 집이 너무 안락해서 서로 짬짜미를 했는지 그야말로 곤충들의 아지트에 내가 얹혀 사는 느낌이었다.

벌레 많고 볕 안 드는 집에 더 이상 못 살겠다던 진향이는 다시 이직을 했고 이제 하노이 시내 한 복판의 레지던스 29층에 산다. 위생 개념이 한국과 너무 다른 차원이라 침대에서 왕날개가 달린 벌레가 몇 번이나 나왔는데도 웃으며 ‘우리의 친구’라고 말했다던 베트남의 첫번째 집주인을 거쳐 저만큼 높은 곳에 올라갔다.

하늘이 다 보이는 집에서 매일 아침 햇빛을 정통으로 맞이하는 기분이 어떤지 물었더니 ‘언니야, 나 성공했지? 어두운 일층 집에서 바퀴벌레, 돈벌레 잡고 박스테이프로 일렬로 지나가는 불개미 떼 잡아 죽이던 때가 있었는데.. 나 진짜 성공했네.’라는 대답. 내가 되려 울컥해서 눈물이 날 뻔 했다. 그 과정들을 다 알기 때문에.

‘햇살 들어오는 집이면 성공한거야. 망할 월세로 우리가 그 빛을 샀자녀’. 우리가 우스갯소리로 한 말이 얼마나 와닿는지 모른다. 침대를 한가득 덮은 차고 따뜻한 겨울 햇빛에 머리를 말리며 많은 것들을 느낀다.



#추워서BYC내복세트
#신사동어느아침식사
#우리가머문식탁



작가의 이전글 나이가 든다는 것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