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둘이 10시간 떠드는 거 어떤데?
새벽 다섯 시. 오랜만에 작업실에 놀러 온 언니랑 새벽 네 시까지 떠들다 좀 전에 집에 보낸 후 설거지를 하고 집에 와 누웠다. 서로 그간의 연애와 여러 이야기를 했다. 고지식한, 좋게 말해 클래식한 나의 고정관념과 아집이 앞으로 어떻게 바뀌어 나갈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랩, 디자인, 피카소, 박서보, 담배 피우는 남자, 이상적인 취향과 취미, 진짜 온갖 얘기로 끊임없이 떠들었다.
어떤 자리든 관계든 나를 많이 드러내는 게 두렵다고 했다. 늘 별 관심 없는 척 아웃사이더를 자처하며 거리 두지만 사실 다 방어기제라는 걸 이제는 인정하게 됐다.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이나 이전에 몰랐던 것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하면 다행이다 싶다가도 고통이 점점 커지기도 한다. 아는 게 많아질수록 해야 할 것들이 늘어나면서 내 능력 밖의 순간들도 많아지기 때문에.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껑충 뛰어 올라가고 싶은 요행을 바라는 마음이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과거의 망한 연애는 연애리스트에서 삭제하고 싶지만 사실 그 실패가 나중에 눈을 똑바로 뜨게 해 준다. 그런데 그렇게 잘 고르고 제대로 봤다고 생각한 사람과의 연애도 무조건 잘 된다는 보장이 없다. 또 망할 수 있는 거다. 약간의 음담패설과 통찰, 조언, 헛소리가 섞인 말들이 오가는 오랜만의 시간이 너무 좋았다. 좋은 말을 들을 땐 이마를 치며 핸드폰 메모장에 급하게 남겼다.
날씨 좋은 가을밤에 이런 가볍고도 진득한 대화를 남자랑 해야 하는데 여자끼리 토요일 초저녁부터 만나서 일요일 동트기 전까지 이러고 있는 게 아쉽다고 했다. 섹후땡 전곡이 셔플로 밤새 흐르는데 이런 분위기에 이런 대화면 내가 먼저 뒷덜미 잡고 키갈도 가능하다 했더니 해보고 후기 알려달래.
술 한 잔도 안 먹었는데 기분이 좋다. 커피 말고 독한 술을 되게 잘 마시고 싶다. 니트로 마시는 멋짐 플러스, 마지막 한 모금은 탁 털어 넣고 깊이 자면 좋겠네.
새벽 여섯 시다. 언제 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