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입구역 9번 출구엔 언제나 사람이 바글바글하다.
교복 카디건이나 재킷을 입으면 딱 맞을 선선한 날씨, 저기 우리 학교 교복을 입은 아이들이 보인다.
“선생님, 다이소로 가봐요!”
각자 하교와 퇴근 후 홍대입구역에서 만났다.
우리 반 아이들 중 대표 3명이 학급비를 사용해서 물품을 구입하기로 한 날이다.
다음 주 화요일이면 핼러윈데이이다. 우리 반의 남은 학급비는 핼러윈데이를 즐기는 데 사용하기로 했다. 홍대입구는 이미 핼러윈 분위기로 잔뜩 물들어 있었고, 학생들과 나는 그 분위기에 취해 쇼핑에 몰입했다. 우리가 간 가게 한 켠에는 핼러윈 물품들이 즐비해있었다. 거미줄부터 호박, 거미 장난감, 요상한 마녀 모자까지 종류가 다양했다. 교실을 꾸밀 소품들과 아이들이 입을 복장을 장바구니에 넣었다. 계산을 하려는데 학생 한 명이 갑작스러운 제안을 했다. 사탕을 사서 교무실 선생님, 친구들에게 나눠주고 싶다는 것이었다. 친구들과 미리 이야기한 내용이 아니라서 본인 돈을 쓰겠다고 나섰다. 그것 또한 재미있겠다는 의견이 모아져서 인생 최초로 학생들과 더치페이를 해 보았다.
핼러윈 전날, 방과 후에 몇몇 학생들이 교실에 남아 핼러윈 장식을 하기 시작했다. 교실 앞면, 뒷면에 거미줄을 잔뜩 치고 창문까지 어둡게 가려놓았다. 교탁 위에 있는 거미와 호박을 보고 교과 선생님이 많이 놀라시진 않을까 걱정도 됐다.
핼러윈데이 당일, 일찍 출근을 해서 교실에 들렀는데 이미 많은 아이들이 교실에 있었다. 얼마나 다들 들떴는지 평소에 그리 일찍 등교하지 않는 아이들도 같이 있었다. 망토를 두르고 얼굴에는 피가 난 것 같은 스티커를 붙이고 앉아있는데 얼마나 귀여웠나 모른다. 마녀 복장을 한 세 학생은 조회 전에 교무실을 돌아야겠다며 나섰다. 사탕이 잔뜩 담긴 호박모양 바구니를 들고 선생님들께 'trick or treat! 즐거운 핼러윈데이입니다’를 외치며 사탕을 나눠드리느라 바빴다.
칠판은 꽤나 많은 부분이 거미줄로 가려져 있었다. 교과 선생님들은 아이들의 환상을 깨고 싶지 않았는지 거미줄을 최대한 건드리지 않고 그 사이사이에 판서를 하셨다. 혹시 아이들이 살짝 그것을 바란 것인지도 모른다.
종례 끝나고 교무실 자리에 내려와 보니 메시지가 몇 개 와 있었다. 덕분에 핼러윈데이인 줄 알게 돼서 즐거웠다는 내용, 기분 좋게 아침을 시작할 수 있었다는 내용, 주로 고맙다는 내용이었다. 오롯이 아이들끼리 상의해서 결정한 이벤트였는데 고맙다는 인사를 대신 받는 것 같아 민망했다. 또 한편으로는 ’그 예쁜 마음을 가진 아이들이 우리 반 아이들이 맞아요!‘하고 외치고 싶을 정도로 어깨가 으쓱했다.
사실 이 아이들을 만나기 전까진 핼러윈 파티에 큰 흥미가 없었다. 그 때문에 학급비를 핼러윈데이에 사용하겠다는 것도 놀라웠다. 분장도 서로 해주고 도끼 장난감도 흔들어가며 소소한 일탈을 즐기는데, 그 순수하고 맑은 마음이 교탁 앞까지 전해졌다. 교실 안에서 우리 반 아이들끼리 하루를 특별하게 즐기는 것만 해도 가치 있는 일인데, 교실 너머에 있는 선생님들과도 같이 즐거움을 나누고 싶어 한 게 가슴을 울렸다. 그 마음이 전해졌는지 꽤 많은 사람들이 훈훈하게 하루를 보냈다.
날이 선선해지고 핼러윈데이가 가까워올 때마다 그날의 핼러윈데이가 떠오른다. 잊히지 않는 추억을 선물해준 고마운 아이들, 찬바람이 불어 카디건을 걸칠 즈음이면 그 아이들이 사무치게 그립다. 너희들의 사랑스러운 미소, 정을 주는 따뜻한 마음은 평생 기억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