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이번 축제 무대에 서주실 수 있어요?
축제 담당 선생님이 옆에 계신 선생님께 질문한다. 분명히 대답은 ‘No’ 일 것이다. 다음은 내게 질문할 차례이다. 지금 난 무심한 듯 묵묵하게 컴퓨터만 바라보고 있다. 사실은 어떻게 대답해야 못 이기는 척 참가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중이다.
초, 중, 고 합쳐 12년간 학교에서 본 선생님들은 모두 리얼 ‘어른’이었다. 어른이라 느낀 건 그들이 정말 한결같기 때문이다. 매사에 차분하고 침착했다. 시간표대로 교실에 들어가 수업을 하고, 쉬는 시간에는 교무실 자리에 앉았다. 등교 시간에는 조회를 하고 하교 시간에는 종례를 했으며, 1년의 반복되는 틀에 맞춰 학생들을 인도했다. 평범한 일과뿐 아니라 행사가 있는 날에도 대수롭지 않은 듯 어른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임용고시(정식 명칭은 중등교사 임용시험이지만 임용고시라고 이야기하겠다.)를 최종 합격하고 한 달도 되지 않아 학교에 투입됐다. 대학생 티도 벗지 못하고 맞이한 3월은 대혼란 그 자체였다. 선생님이 되는 순간에는 ‘어른’인 상태일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다. 아직 준비가 안 됐는데 교무실엔 이미 내 자리가 있었고, 복도에 나가면 학생들이 나에게 인사를 했다. 정말 선생님이 된 것이다. 독하게 시험 준비해서 얻은 어려운 자리라 포기할 수는 없고, 그저 적응을 해야만 했다. 주변 선생님들은 상상 속 ‘어른’의 덕목을 잘 갖추고 있었다. 어른들 사이에서 나 혼자 어린 티를 내는 것 같아 민망할 정도였다. 결국 학교에서 어른이 된 연기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어른 연기는 간단하다.
우선, 원래 준비된 사람인 것처럼 생활하는 것이다. 처음 맡은 업무, 과목, 담임이지만 문제없는 듯이 행동하면 된다. 학생이 갑작스럽게 나도 모르는 내용을 질문하더라도 태연하게 다음 시간에 알려줄 내용이라고 하면 된다. 태풍이 심하게 불어서 휴교를 하게 되는 날에는 (나도 이렇게 될 줄 몰랐지만) 학생들에게 침착하게 안내해주면 된다.
둘째, 학생을 무조건적으로 사랑하는 사람처럼 생활하는 것이다. 사제 관계라고 멋있게 표현하지만 실제로 모든 학생은 나도 태어나서 처음 보는 사람들이다. 각자의 인생을 살다가 갑자기 학교에서 마주한 것이다. 그래도 선생님이니까 사랑하는 마음을 전제로 학생들을 바라보려고 애써본다.
셋째, 학생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사람인 것처럼 생활하는 것이다. 이건 앞의 내용과 비슷하긴 하지만 미묘하게 다르다. 예를 들면 체험활동을 할 때 혹여나 뒤처지는 아이는 없는지 앞뒤로 여러 번 체크를 한다. 음식이 있으면 아이들이 먹을 수량이 먼저 되는지 확인하고 여분이 있을 때만 먹는다. (이건 먹성 강한 나에게 엄청난 일이다.)
마지막으로, 관심을 받지 않아도 괜찮은 사람인 척 생활하는 것이다. 학생들이 스승의 날을 지나치더라도 괜찮다고 생각해본다. 수업 시간에 고심해서 던진 조크에 반응이 없더라도 그냥 그러려니 해본다. 큰 교무실에서 교무부장 선생님이 안내 방송을 하실 때면 사실은 내가 방송을 해보고 싶지만 참아보기도 한다.
어른 연기 중 가장 쉬운 건 학생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것이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것인지, 연기를 잘하는 것인지, 어느 정도는 실제의 내 모습이 되었다. 어쩌면 내 주변 선생님들도 이렇게 생활하다가 어른이 된 것일지도 모른다.
문제는 '관심을 받지 않아도 괜찮은 사람인 척 생활하는 것'이었다. 선생님이 되고 내적인 흥을 표출하고 싶은데 절제해야 하는 게 정말 어려웠다. 노래를 잘하거나 화려한 춤을 출 줄 아는 것도 아니지만 축제 무대에는 서고 싶었다. 다른 선생님들은 완곡히 싫다고 하기도 하고 부끄러워하는데 나 혼자 해보고 싶다고 말하기가 민망했다. 괜히 나서서 ‘선생님 연기’의 흐름을 깨고 싶지는 않았다.
2학기가 되자마자 축제 담당 선생님이 날 찾았다. 사실 나만 찾은 건 아니고 신규로 들어온 선생님 모두를 찾았다. 학생들이 신규 선생님들에게 관심이 많으니까 축제 무대를 꾸며줄 수 있겠느냐는 거였다. 다들 난처해하셨지만 나는 달랐다. 표정엔 드러나지 않았지만(이건 확실하지 않다.) 속으로는 굉장히 흥분 중이었다.
축제 프로그램 중 가장 흥미로운 건 TV 프로그램 ‘복면가왕’ 패러디 무대였다. 학생회 아이들은 학교 벽면 여기저기에 복면가왕 포스터를 붙이며 신청자 명단을 받기 시작했다. 그리 길지 않은 고민을 한 끝에 내 이름을 적은 참가 신청서를 제출했다.
축제 일주일 전, 복면가왕 참가자가 모두 모였다. 거의 학생들이었고 선생님도 몇 분 계셨다. 학생회 아이들이 프로그램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이 프로그램은 가면을 쓰고 노래를 부르기 때문에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누군지 알 수 없다고 했다. 축제 당일까지 보안 유지를 해야 하는 짜릿한 프로젝트였다. 이 프로그램은 1차전과 2차전으로 구분됐다. 1차전에서는 두 명씩 짝을 지어 듀엣곡을 부르고 전교생들이 SNS 투표로 승자를 선택한다. 1차전의 승자들끼리 모여 2차전을 치르고 최종 1, 2, 3위를 가리는 것이다.
드디어 축제 당일이 되었다.
오전에는 각 학급, 동아리에서 만든 부스에서 행사를 진행했다. 그간 보지 못했던 학생들의 끼에 감탄했다. 축제에도 한결같은 표정과 태도를 보이고 싶었는데 실패한 듯했다. 오후에는 전교생이 강당에 모여 공연을 감상했다. 무대가 어느 정도 진행되고 열기가 뜨거워질 때쯤 ‘복면가왕’을 시작했다. 참가자들은 무대 뒤편에 모여서 자기 가면을 썼다. 내 가면은 개구리 모양이었는데, 학생회 아이들이 한 땀 한 땀 열심히 만들었다고 생각하니 더 애정이 갔다.
1차전엔 3학년 남학생과 배정이 됐다. 둘이서 '아이유, 임슬옹 - 잔소리’라는 노래를 불렀다. 각자 따로 연습하고 본무대에서 처음 맞춰보는 거였다. 막상 무대에 서보니 상대 학생이 노래를 정말 잘했다. 처음엔 삑사리만 내지 않는 게 목표였는데 1절이 끝나니까 승부욕이 생겼다. 학생을 상대로 승부욕이라니 스스로도 웃겼다. 현재 본분이 선생님이라는 생각은 잊은 채 젖 먹던 힘을 다해 2절을 불렀다. 조미료를 살짝 보태자면, 태어나서 제일 열심히 부른 것 같다. 결과는 두 표 차이로 ‘승’이었다. 막상 이기고 나니 상대 학생을 보는 게 민망했다. 그 학생은 나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고 박수도 쳐줬다. 정말 어른스러운 아이였다.
2차전은 솔로 무대였다. 2차전에서 무엇을 부를지 정말 많이 고민했다.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은 ‘서태지와 아이들-교실이데아’라는 곡이었다. 내 어린 시절보다 더 이전의 노래지만 우연히 듣고부터는 자주 흥얼거린 노래였다.
전교에 록 음악이 울려 퍼졌다. 개구리 가면을 쓴 사람이 갑자기 목소리를 찢으니까 전교생이 놀랐다.
됐어(됐어) 이제 그런 가르침은 됐어
막힌 꽉 막힌 사방이 막힌
널 그리고 우릴 덥썩 모두를 먹어삼킨
이 시꺼먼 교실에서만 내 젊음을 보내기는 너무 아까워
(서태지와 아이들 '교실이데아' 中)
최종 3위의 성적을 얻었다. 가면을 벗을 때 그 호응은 정말 최고였다. 학생들은 놀라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며 강당이 떠나갈 듯 소리를 질렀다. 뿌듯한 것도 잠시, 강당 무대에서 내려오자마자 교무실에 돌아가는 게 두려웠다. 축제 무대는 교장, 교감 선생님뿐 아니라 많은 선생님이 보셨는데, 혹여나 파격적인 가사 때문에 눈초리를 주지 않을까 걱정이 됐다.
예상과는 달리, 교무실에 들어가자마자 선생님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았다. 서태지와 아이들을 보며 학창 시절을 보낸 선생님들이 특히나 좋아하셨다. 어떻게 그 노래를 아냐며 신나서 물어보시는데 그들의 눈빛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그 눈빛은 교실에서 학생들의 눈을 통해 본 호기심 어린 눈빛이었다. 어른 선생님들도 학창 시절의 추억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들 역시 감정이란 게 있고 좋아하는 것도 분명히 있었다. 그들의 사람다운 면모를 보게 된 것도, 환호를 받는 것도 모두 좋았다.
축제 이후 한동안은 복도를 지날 때마다 환호를 하는 학생을 심심치 않게 만났다. 아이들은 무대에서 락커가 된 선생님이 신기했던 것이다. 개구리 가면을 쓴 덕분에 개구리 선생님이라는 별명이 생겼고, 무대를 본 1학년 학생들이 3학년이 될 때까지 그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무대에서 가면을 벗은 순간 알았다. 어른이 되기 위해 나 자신을 기존의 틀에 구겨 넣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관심받고 싶다는 것도 당당하게 표현하는 '나' 다운 선생님이 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