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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버 선배님께 오늘도 배웁니다.

by 유경옥


“졸업하면 뭐가 하고 싶니?”

“준비하고 있는 게 있니?”

“좋아하는 게 뭐야?”


고3 담임을 맡았다. 학기 초에는 아이들을 파악하기 위해 상담을 진행한다. 가장 기초적으로 묻는 건 이 세 가지 질문이다. 질문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는 학생이 나타나면 이름 앞에 별표를 그려놓는다.


그나마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는 학생들은 수월하게 상담할 수 있다. 그냥 공부만 열심히 하고 그 성적에 맞춰, 혹은 희망 전공에 맞춰 대학 원서만 넣으면 된다. 그런데 이름 앞에 별표가 있는 아이들은 1년간 수없이 상담하고 지켜보며 무엇을 하고 살아갈지 같이 고민해야 한다.

아이들도 막막하고 나도 막막하다.



저는 유튜버가 될 거예요.

이름 앞에 별표를 그리려고 하는 순간 윤석이가 대답했다. 진지한 얼굴로 답을 기다리는 선생님이 민망할 정도로 당당한 태도였다.


“그래.(웃음)”


무심코 답했다.


윤석이는 웃을 때면 전체 이가 다 보이는 매력을 가진 학생이다. 교무실에 자주 왔는데, 올 때마다 선생님 일을 잔뜩 도와주고는 뭐가 좋은지 싱글벙글 웃으며 교실로 돌아갔다. 같이 이야기를 나눌 때면 별 내용도 아닌데 내 기분이 좋아지곤 했다. 사실 윤석이의 성적은 그리 좋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아이의 장래가 걱정되진 않았다. 왠지 뭘 해도 잘 먹고살 것 같은 믿음이 있었다. 그런데 이 아이가 갑자기 유튜버가 되겠다고 한다.


유튜브를 하는 게 유행인 건 알았다. 얼마 전엔 유튜브를 해서 수억을 벌었다는 사람 이야기로 온 나라가 들썩했다. 어떤 누구를 만나도 유튜브 이야기는 꼭 화두가 됐다. 너도 나도 유튜브를 시작해보겠다고 이야기했지만, 진짜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사람을 찾기는 어려웠다.


윤석이가 유튜브를 한다는 것도 그저 스치는 이야기일 수 있는 것이다.




겨울방학이 1주 남짓 남았다. 교실은 취업과 진학을 확정 지은 아이들과 그렇지 않은 아이들로 뒤섞여 있다. 아이들은 서로의 희비를 보며 마음이 뒤숭숭하면서도 20살이 되었다는 것에 설레 한다. 나이 앞자리가 바뀌었는데도 졸업식은 하기 전이라 교복은 입어야 한다. 아이들이 아직도 고등학생 같은데 학교 밖에서 잘 살아갈 수 있을까 걱정하는 건 담임 몫이다.


학생들은 여유로워서 심심할 지경이지만 선생님은 제일 바쁜 시기이다. 생활기록부 마감 전에 아이들의 행동발달 특기사항 란에 문장 한 줄이라도 더 넣어보려고 머리가 지끈할 지경이다. 교무실 중앙제어 난방으로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라 있을 때 윤석이가 찾아왔다.


“선생님, 저 유튜브 영상 촬영할 건데 출연해주실 수 있어요?”


겨울방학을 앞두고 유튜브를 시작한 윤석이는 카메라를 들고 학교를 종횡무진했다. 삼각대 같은 것에 핸드폰을 끼고 들고 다니는데, 세상 밝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1월 1일 처음 올린 영상이 대박이 났다고 한다. 긴 겨울방학을 앞두고 무력해진 아이들은 윤석이의 유튜브 이야기로 다시 활기를 찾고 있었다.


“당연하지!”


윤석이의 질문에 긍정적인 대답을 건넸다. 그 이후 영상에 세 번 정도 등장한 것 같다.


윤석이는 유튜버 활동에 열정이 가득했다. 진심으로 촬영을 즐겼다. 무엇보다 채널 운영에 있어 체계적이었다. 영상을 시청할 타깃을 정확히 선정했고, 그 타깃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고 있었다. 윤석이의 열정은 구독자들 마음에도 닿았고, 채널 구독자 수도 승승장구했다.

유튜버 '욜로' 채널 영상 캡처




아이들이 졸업하고 시간이 많이 흘렀다. 오랜만에 켜본 유튜브가 윤석이 영상으로 나를 안내했다. 영상을 촬영한 지 고작 5개월 정도 지났는데 그 시절이 사무치게 그리웠다. 다신 만나지 못할 수도 있는 아이들을 보니까 기분이 묘했다. 영상 기록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 알게 되는 순간이었다. 지금부터라도 유튜버가 돼서 학교 생활을 기록해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이미 유튜버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윤석이에게 연락을 했다. 평소에도 SNS를 통해 안부를 확인하는 편이어서 연락이 어렵진 않았다. 다만, 유튜브에 대한 질문을 하는 건 조금 망설여졌다. 구독자 3만 명을 훨씬 넘긴 윤석이의 채널을 보고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 질문을 던졌을까, 아마 상상 이상일 것이다.



“선생님이 유튜브를 해보려고 하는데 몇 가지 물어봐도 될까?”


꽤 친한 아이였지만 이 질문을 하는데 몇 번을 지웠다 썼는지 모르겠다. 이런 나의 마음을 알기라도 하는 듯 윤석이는 정말 칼답을 해왔다. 주로 기술적인 부분에서 도움을 받았고, 그 피드백에 따라 편집 프로그램과 카메라를 선택했다.




윤석이는 가장 어리지만 훌륭한 유튜브 선배님이다. 운이 좋게도, 시대의 흐름을 빨리 읽고 앞서 나간 제자 선배님 덕분에 유튜브 시작이 크게 두렵지 않았다. 요즘도 가끔 연락이 오는 걸 보면 후배 양성에 아주 적극적인 친구다.


“선생님, 영상은 이 시간대에 올리는 건 어때요?”

“선생님, 그 영상들은 주제랑 어울리지 않으니까 과감히 비공개로 돌리는 건 어때요?”


유튜브라는 대세의 흐름에 함께 할 수 있어 즐거운 요즘이다. 유튜브가 아닌 다른 것이 대세가 되는 시대가 오더라도 그에 맞춰 새로운 능력을 탑재할 각오가 되어 있다.



세상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다양한 열정을 가진 사람들은 그 변화의 흐름에 금방 적응한다. 열정을 가지고 본인의 능력에 집중하면 정말 학교 공부는 1도 필요 없는 것이다. (학교 공부도 열정을 쏟을 수 있는 분야임은 분명하다.) 이제는 학기 초 상담이 마냥 두렵지 않다. 이름 앞에 별표를 그릴 아이들은 정말 무한한 발전 가능성이 있다는 거니까 그 믿음을 보여주기만 하면 된다. 예상치 못한 분야에서 ‘스타’가 될 수 있는 아이들이다.


선생님이라서 정말 좋은 것은 10대 아이들과 무한히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것이다. 누구보다 빠르게 세상의 흐름에 발맞추는 아이들 덕분에 내가 더 젊게 살 수 있다. 또 다른 제자가 나보다 먼저 새로운 흐름을 따르고 있다면, 그 아이에게도 부탁해봐야겠다.


“나의 선배가 되어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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