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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로 시작한 소통, 유튜브로 이어가다

by 유경옥


알람음이 울려서 휴대폰을 들었다.

인스타그램에 장문의 메시지가 와 있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기억하실지 모르겠는데 2017년에 메일로 퇴사관련 질문드렸던 ○○입니다. 불편하셨을텐데 정성담아 현실적인 답변해주셔서 정말 감사했고 정말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아 그 이후로 유튜브도 구독하고 잘 보고 있습니다. 요즘 자신감을 잃었는데 어제 올라온 유튜브 영상을 보며 저는 또 다시 용기를 얻었습니다.


유튜브를 시작한 건 2019년 하반기인데, 이분은 2017년에 메일을 주고받았다고 한다.

왜, 어떻게 연락을 주고받았을까.


불현듯 떠올랐다.


블로그에서 만난 사람이었다.




MBTI(성격유형검사)를 검사하면 E(외향) 성향이 독보적으로 높다. 실제로 왼손이 한 일은 오른손, 오른발까지 알아야 직성이 풀린다. 나를 표출하면서 에너지를 얻는 성향을 타고났기에 아주 어린 시절부터 SNS를 즐겼다.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대학교 입학 때까지는 싸이월드 미니홈피를 꾸미려고 도토리를 모으느라 열을 올렸다. 대학 시절 내내 페이스북을 했으며, 현재는 인스타그램 계정을 2개나 관리 중이다.

2012년, 페이스북이 대세가 되던 해에 네이버 블로그의 매력에 빠졌다. 페이스북은 아는 사람끼리 이야기하는 포맷이었지만, 블로그는 나를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이 유입되었다. 블로그는 지인이 아닌 사람들도 글을 본다는 것이 큰 매력이었다. 거의 매일 포스팅을 할 정도로 열정을 다해 운영했다.


블로그 메뉴

메뉴명 내용

·맛집 투어 직접 방문한 맛집 소개

·쑥쑥 자라옥 고졸 취업과 퇴사, 대학생 대외활동

·토플토익 뽀개기 토익 200점→토플 80점에 도전!

·여행은 즐거워 방학 때마다 다녀온 여행일지


하루 방문자 수가 느는 것이 눈으로 보일 때쯤 블로그의 유입 경로를 분석하기 시작했다. 네이버의 체계적인 통계 프로그램은 클릭 몇 번만으로 검색 순위를 알 수 있게 해 줬다. 주로 ‘○○역 근처 맛집’, ‘○○여행 정보’ 등 맛집과 여행 정보를 검색해서 방문하고 있었다.


정말 재밌는 부분은 정보 검색을 하다가 유입된 방문자들이 생각보다 오랜 시간 블로그에 머물다 갔다는 통계였다. 방문자 중 일부는 블로그의 주인이 20대 대학생인 것에 집중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당시에 대학생 신분이었던 나는 ‘대학생이 갈만한’ 맛집과 여행지를 포스팅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이대가 비슷한 사람들이 블로그에 유입된 것이다. 그들은 또래인 블로그 주인이 무엇을 하며 사는지 궁금했고, 자연스럽게 다른 메뉴인 [쑥쑥 자라옥], [토플토익 뽀개기]를 클릭했다. 블로그 주인의 삶을 지속적으로 지켜보기 위해 이웃 신청을 하는 사람이 많았다. 이웃자 수와 함께 조회 수, 댓글 수도 함께 늘었다.




블로그를 운영하며 가장 마음이 갔던 메뉴는 ‘나’의 성장을 기록한 [쑥쑥 자라옥]과 [토플토익 뽀개기]였다.


목표를 달성하는 그 성취감을 너무 좋아했고, 그것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다. 그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만든 메뉴가 [쑥쑥 자라옥]이었다. 쑥쑥 성장한다는 의미와 이름의 '옥'을 합해서 정한 이름이었다. 조회 수가 가장 높은 글은 20살 때 삼성증권에 입사한 이야기였다. 다음으로 자격증 취득과 관련된 실용적인 정보 게시물이 호응도가 높았고, 대학교 성적장학금 게시물이 그 뒤를 이었다.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취업, 진학과 관련된 글에 관심이 많았다.


블로그 [쑥쑥자라옥] 게시판 캡처


그저 나의 성취감을 기록하려고 했던 메뉴였다. 그런데 게시물의 반응은 그 목적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사람들의 댓글이 진지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오와 언니 저도 본받고 싶어요~ 전액 장학금 받으려고 열심히 노력해봐야겠어요~ㅎㅎ 전액 장학금 받게 되면 여기 다시 와서 언니한테 고맙다고 인사드릴게요.
면접에 대해서 알고 싶은데요. 개별면접, 토론 면접, 발표 면접에서 무엇을 하셨는지 궁금하고, 특히 발표 면접에서 무엇을 어떻게 하셨는지 궁금해요. 제가 발표를 잘 못해서 일단 겁이 나네요. 부탁드려요.
만약 학생 때로 돌아가셔서 삼성증권과 은행, 이 두 기업의 입사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떤 곳을 선택하실지 여쭤봐도 될까요?:)



내 글이 다른 사람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줄 수 있구나.
간절한 사람들에게 희망이 될 수도 있구나.



머리가 띵했다.

새로운 차원이었다. 진심으로 그들에게 힘이 되는 글이 쓰고 싶어 졌다.


블로그를 소통의 통로로 삼기로 했다.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에서 겪은 다양한 시행착오를 공유했고, 정말 필요한 사람들한테 그 글은 말 그대로 ‘꿀팁’이 됐다. 댓글이 달리면 대댓글로 피드백을 했고, 경우에 따라 새로운 글을 올리기도 했다. 정말 절실한 사람들은 장문의 메일로 고민 상담을 청했고, 모든 이에게 답을 하진 못했지만 가끔은 성의껏 글을 써서 보내기도 했다. 끝내 목표를 이룬 사람들이 감사하다고 연락을 할 때면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았다.


무엇인가 완벽하게 해내는 것을 보여주는 것도 좋지만, 모든 과정을 처음부터 함께 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았다. 새로운 메뉴 [토플토익 뽀개기]에서는 영어가 어려워 학교 수업을 따라가기 힘들었던 대학생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같은 상황인 사람들과 동지애를 느껴가며 공부해서 결국 목표한 점수를 얻어냈다.


글로써 도움을 주고 소통하며, 때로는 위로를 선사하기도 하는 이 일이 진정으로 즐거웠다.



시간이 흘러 선생님이 되었다. 첫 수업을 어떻게 진행할지 고민하다가 문득 블로그 글이 떠올랐다. 교실에서 학생들과 처음 마주한 날, 선생님이 된 ‘나’의 성장 과정을 이야기해주었다. 블로그에서 글로만 나눈 것을 목소리로 직접 전달하는 순간이었다. 글로 정리해본 적이 있기에 구조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었고, 표정과 목소리를 더해 진심을 표현할 수 있었다.


선생님 4년 차가 되었을 때 유튜브를 하기로 결심했다. 유튜브는 블로그와 교실 상황의 장점을 모두 가지고 있다. 블로그처럼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고, 교실에서처럼 표정과 목소리를 보여줄 수 있다. 블로그로 시작된 소통을 이어가기에 충분한 매체다.


블로그를 운영한 경험은 현재 유튜브 운영에도 도움이 된다. 유튜브 채널 역시 유입 분석을 통해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다. 옥티 채널의 주요 시청 층은 10대 후반부터 30대 초반까지이며, 주 검색어는 ‘선생님’, ‘교사 브이로그’이다. 선생님이 되고 싶은 사람들, 선생님의 일상이 궁금한 사람들이 주로 방문하는 것이다. 검색을 통해 찾아온 방문자들이 채널에 오래 머무를 수 있도록 그와 관련된 매력 있는 콘텐츠를 많이 제작하려고 한다.


오늘도 유튜브를 통해 진정성이 가득한 소통을 시작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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