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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다한 능력도 쓰임새가 있다

by 유경옥


'취미는 무엇인가요?'



아주 어릴 때부터 나를 골치 아프게 한 질문이다. 초등학생 시절에 처음 작성해본 호구조사 질문지부터 취업 준비할 때 써낸 이력서까지 취미가 무엇인지 고민해야 했다. 영어 수업에서도 거의 처음에 배우는 게 ‘What is your hobby?(너의 취미가 무엇이니?)’였다. 그놈의 취미는 왜 이렇게 궁금한지, 대체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건 무엇인지, 대답을 망설일 때마다 다른 사람들은 정말 취미와 특기가 분명히 있는지 궁금했다.



취미는 '좋아하는 것'이고 특기는 '잘하는 것'이다. 이십 대 중반이 가까워 오던 어느 날 문득 취미와 특기를 모르고 사는 것이 씁쓸했다. ‘잘하는 것’은 모를 수 있다. 그래도 ‘좋아하는 것’은 찾아야겠다는 생각에 피아노 학원을 등록했다.



과거에는 꽤 오랜 기간 피아노를 배웠다. 초등학교 때 피아노 학원 한번 안 다녀본 친구가 없을 정도로 유행이었던 탓이다. 작은 방 책장에는 아직도 체르니 40, 모차르트, 베토벤, 바흐까지 갖가지의 피아노 교본이 꽂혀 있다. 손이 많이 굳었고 악보를 보는 눈도 쇠퇴한 상태지만, 교재를 소장하는 것만으로도 ‘피아노 좀 쳤다’는 자부심이 성립되는 기분이다. 언제든 피아노를 다시 시작하면 예전의 실력을 금방 되찾을 것 같았고, 피아노 연주 자체가 취미가 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성인 피아노 학원에 다닌 지 두 달이 좀 지났을까. 학원 다니는 것이 ‘취미’가 아니라 ‘할 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학원을 그만둬야 할 그럴듯한 핑계를 찾아냈고, 실행에 옮겼다.



부러웠다.

무언가를 열렬히 좋아하고, 그와 관련된 새로운 뉴스를 기다리며 설레 하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유난히 한 과목을 잘하는 친구들이 있었다. 수학을 잘해서 모의고사만 보면 1등급을 받는다던지, 한국사를 좋아해서 연도별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꿰고 있다던지, 과학경시대회에 매번 출전한다던지, IT에 강해서 전국대회를 휩쓴다던지, 하여간 독보적으로 눈에 띄는 친구들이 있었다. 그들은 좋아하는 과목 수업 시간엔 초롱초롱한 눈으로 선생님이 하는 말씀을 농담까지 다 받아들이는 모습이었다. 학교 교과목이 ‘취미’이자 ‘특기’인 아이들이었다.


학교 밖을 벗어나서도 취미가 확고한 사람들이 있다.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은 열정적으로 게임을 하고, 게임 영상을 보고, 심지어는 분석글을 쓰기도 한다.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운동하러 가고, 운동복을 사고, SNS에 인증사진을 올린다. 사진 촬영을 좋아하는 사람은 궂은 날씨에도 출사를 나가 완성작을 확인하고 뿌듯해한다.




이것저것 하고 싶은 건 많다.


흥미 있어 보이는 건 당장 도전하고 본다. 각종 광고는 날 타깃으로 하는 건지 이 세상엔 재미있는 게 너무 많다. 시작하는 게 많더라도 금방 질려버리기 때문에 취미라 부르기엔 어색해서 문제다. 당장 집을 둘러봐도 끈질기게 좋아해 본 걸 찾기 어렵다. 그나마 제일 많이 한 건 유화 그리기(사실은 그냥 색칠하기)인데, 총 4개의 작품이 있다. 4개라니 성공적이다. 크리스마스를 맞아 만든 벽걸이 트리가 있으며, 어색하게 배운 꽃꽂이 작품도 1개 있다.


모든 것에 금방 질려버리는 내게 요즘 세상이 선물로 준 것은 ‘원데이 클래스’ 제도이다. 하루 몇 시간 만에 궁금했던 분야를 대략적으로 맛보기 할 수 있는 클래스인 것이다. 가죽 공예, 리스 만들기, 뜨개질하기, 천연비누 만들기 등 온갖 클래스에 참여했고, 지금도 케이크 만들기 클래스에 참여할까 고민 중이다.


대학교에선 경영학을 전공했는데, 경영학은 한 분야에 집중해서 공부하기보단 재무, 회계, 인사 등 다양한 분야를 고루고루 배운다는 특징이 있다. 이것저것 하고 싶은 게 많고, 하나에 집중하는 것은 못하는 성격이 대학교 전공에까지 영향을 미친 것 같기도 하다.

중학생 때는 한 가수를 엄청 좋아해서 그 가수의 영상을 만들어보려고 영상 편집 공부를 했다. 각종 방송 출연 사진도 꾸미고 싶어서 인터넷 검색으로 블로그 글을 보며 포토샵을 익혔다. 영상 편집과 포토샵 모두 고급 스킬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지만, 프로그램 자체를 다루는 데에는 두려움이 없을 정도가 되었다.




잡다한 능력도 쓰임새가 있다.


간단한 포토샵으로 귀여운 이벤트를 할 수 있다. 담임으로 제일 먼저 맞이하는 기념일은 3월 14일 화이트데이이다. 매년 3월 둘째 주가 되면 사탕을 종류별로 잔뜩 사고, 학급 인원수만큼 봉투를 준비한다. 봉투에 사탕을 넣기 전에 쪽지를 만들어 붙여주는데, 이때 포토샵이 아주 요긴하게 쓰인다. 우리 반 아이들은 담임선생님의 포토샵 잔재주를 보며 소소하게 기뻐한다.(포토샵보다는 사탕을 보고 기뻐하는 게 더 맞는 표현이긴 하다.) 포토샵은 사물함 이름표, 책상 위 시간표를 만드는 데에도 유용하게 쓰인다.

천연비누 만들기, 유화 그리기 등 원데이 클래스 활동 경험은 방학 직전에 활용할 수 있다. 학기 중에 학생들이 학교생활을 상당히 지루해할 시기가 있다. 한 학기 기말고사가 모두 끝나고 방학식만을 기다리고 있을 때 그렇다. 원데이 클래스에서 배운 여러 가지 활동은 킬링타임에 아주 효과적이다. 학급비를 모아뒀다가 이 시기에 사용해서 재료를 사는 것이다. 학생들의 몸을 좀 움직이게 하면 시간이 빨리 가는 것처럼 느낄 수 있고, 완성작품이 나오니까 성취감도 얻을 수 있다. 학생들 반응이 좋으면 다음 해에 관련 동아리를 신설해보는 선순환의 기회도 잡을 수 있다.


영상 편집을 할 줄 아니까 유튜버를 할 수 있다. 유튜버가 되고 싶은 사람들은 많지만 ‘영상 편집’이라는 장벽에 가로막히기 일쑤다. 내가 유튜버를 해 보기로 마음먹자마자 시작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어린 시절 좋아하던 가수 영상을 편집하던 경험 덕분이었다. 영상을 현란하게 편집하는 건 아니지만, 유튜브를 운영할 수 있을 정도는 된다. 심지어 썸네일을 제작할 때는 포토샵을 사용하기도 하니, 멋모르고 쌓은 잡다한 능력이 쓰임새가 굉장하다.






나의 취미를 굳이 적어야 할 일이 있다면

'새로운 재미거리를 찾는 것’, ‘계속 도전하는 것’이라고 적을 것이다.


좋아하는 일에 집중하는 것도 좋지만 그게 쉽지 않다면, 여러 가지 경험을 통해 잡다한 능력을 쌓는 것을 추천한다. 지금은 별 게 아니라고 생각할 그 경험들이지만 나중엔 분명히 그 쓰임새를 찾게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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