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을 퇴사하고 선생님이 됐다고?
“이거 오늘까지 처리해야 하는 서류인데 좀 도와줄래요?”
“네 부장님”
10월 19일, 오늘은 회사 창립기념일이다.
업무 마감 시간이 다가오자, 객장 TV에는 창립 기념식 영상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이번 기념식에는 회사 직원 중 신청자들의 공연이 있을 예정인데, 동기 언니도 무대에 올라 춤을 춘다고 들었다. 지점에 있는 직원들은 생방송에 혹시 아는 사람이라도 나오나 보려고 들떠있다.
오늘따라 왜 이렇게 처리해야 할 일이 많은지 아직 창구에 앉아 서류만 쳐다보고 있다.
객장에 나오는 저 방송 말고,
대학교 1차 결과 발표가.
정 주임님과 퇴근 시간이 맞아 같은 버스를 탔다.
요금을 내려고 교통카드를 찍었다.
“띠딕!”
정 주임님은 귀엽다는 듯이 물었다.
“아니 아직도 청소년 요금이 나가?”
롯데월드가 가까이 보이는 증권회사 지점에서 텔러로 일했다. 우리나라 나이로 스무 살, 고등학교 졸업도 하기 전에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버스비가 청소년 요금에서 성인 요금으로 오르는 기준은 만 열아홉이다. 직장인이 되었어도 12월생, '만 열여덟'이라 거의 1년간은 청소년 요금을 냈다. 성인이 교통카드를 카드기에 대면 '띡'하고 한 음절의 소리가 나는데, 청소년의 경우 ‘띠딕’ 소리가 난다. 두 음절의 소리가 들릴 때마다 아직은 어리다는 걸 인정받는 것 같아 좋았다.
지점에서는 계좌 개설을 시작으로 입금, 출금, 주식 매매, 펀드 계약, 공모주 청약 등 고객들의 요청을 처리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금융시장은 이슈가 너무 많아서 공부할 내용이 끊임없이 등장했다. 업무 범위도 어찌나 넓은지, 몇 주간 연수를 받고 지점에 투입되었는데도 실수가 많았다. 내 자리 앞에는 신입사원이니 이해해 달라는 병아리 사진을 세워뒀는데, 이게 너무 부끄러웠다.
출근 시간은 7시였는데 정해진 퇴근 시간은 없었다. 적어도 나는 퇴근 시간 자체를 모르고 살았다. 업무 팀장님은 업무 마감이 끝나고도 남아서 공부를 하고 가라고 하셨다. 회사 다이어리에 어려운 업무 지식을 적고 프로그램을 몇 번 돌려보다 보면 저녁 8시가 되었고, 그때서야 퇴근했다.
드디어 병아리 명패를 치우던 날, 종이만 살짝 빼내어 다이어리에 붙여두며 마음을 다잡았다.
'이제 병아리가 아니니까 최대한 실수하지 말자'
일은 금방 익숙해졌고, 내 자리에 일부러 찾아오는 단골 고객도 생겼다. 빵을 잔뜩 사서 갖다 주는 고객이 있었는데 그분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점심 식사는 교대로 다녀오는 방식이었다. 팀장님까지 창구 직원은 4명이어서, 2명씩 식사를 하고 돌아왔다. 점심이면 두 명밖에 없지만 제일 사람이 많은 타임에 속했다. 일반 직장인들도 점심시간에 짬을 내서 본인의 증권 업무를 처리해야 하기 때문에 배려를 기대할 순 없는 노릇이다. 심지어 창구 직원 중 1명이 휴가를 낼 경우엔 창구에 홀로 남을 때가 있었다. 그럴 때면 혼자서 정신없이 업무 처리를 했다.
에어컨 바람이 추워서 반팔 유니폼에 카디건을 입는 계절이었다. 옆자리 언니가 휴가여서 점심시간에 창구에 혼자 남게 되었다. 웬일인지 찾아오는 사람도 없고 여유 있는 날이었다. 멍하니 출입문을 바라보다가 탁상 거울에 비친 내 얼굴과 마주쳤다.
거울에는 스무 살을 벌써 반이나 보낸 스무 살 직장인이 있었다.
정신없이 살다 보니 어느새 두 계절이 지나버렸다.
멍하니 주변을 돌아봤다. 다른 사람들도 계절이 바뀌는 줄 모를 정도로 정신없이 살아가고 있는 걸까.
퇴근길에 대학가를 지나갈 때마다 과잠(학과 점퍼)을 입고 돌아다니는 대학생들을 보면 너무 부러웠다.
고등학교 3년 내내 취업을 희망했고 나름의 포부가 있었다. 또래보다 먼저 사회생활을 해서 경력을 쌓고, 돈도 많이 벌 생각이었다. 같은 중학교에 다닌 친한 친구들은 거의 대부분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그들에게도 자랑스럽게 나의 계획을 말했다.
'난 스무 살에 대기업에 입사할 거야.'
고등학교 내내 열심히 공부했고 자격증도 많이 취득했다. 3학년이 되자마자 대기업에 지원했고, 서류 전형-인적성 검사-1차 면접-2차 면접을 치렀다. 최종 합격 발표를 들은 순간 세상을 다 가진 듯 기뻤고, 많은 축하와 응원도 받았다.
그렇게 가고 싶은 대기업에 입사했는데, 반년도 안돼서 ‘대학’, 그것도 ‘주간 대학’에 너무 가고 싶어 졌다.
대학교 졸업 후 다시 취업에 도전하고 싶었다. 스무 살에 결정한 직업을 평생 이어나가기엔 너무 경험치가 적었다. 대학교 4년 내내 하고 싶은 일을 더 찾아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만약 대학교 졸업을 할 때쯤 다시 증권회사에 입사하고 싶으면 그땐 고민 없이 다시 돌아올 것이다. (다시 들어오기엔 경쟁이 엄청 심하다는 것은 알고 있다.)
고등학교 때 남들 다 보는 수능 한 번 안 본 것도, 성인이 돼서 주간 대학에 못 가본 것도 후회로 남을 것 같았다. 원래 마음속 깊은 곳에선 대학생이 되고 싶다는 열망이 있었는데 꾹꾹 누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핸드폰을 꺼내 계산기를 두드렸다. 1년간 회사 월급을 모은다면 대학교 2년간은 등록금 정도는 낼 수 있을 것이다. 교통비도 청소년 요금이 나오는 지금, 내년에 입학해도 재수생 나이이다.
만약 도전한다면 지금 이 시기가 적기다.
언젠가는 대학에 진학할 걸 알고 있었다. 물론 회사를 관두지 않는다는 전제에서였다.
취업 준비에 한창이던 고등학교 3학년 때, 유명한 4년제 대학 3곳에서 재직자 특별전형을 신설한다고 발표했다. 전문계고 졸업자 중 3년 이상 회사에 재직하고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입학생을 선발한다는 것이다. 야간대학이나 사이버대학만을 고려했는데, 이젠 재직자 특별전형도 있다. 야간대학에 입학하려면 경쟁률이 상당하다고 들었는데 새로운 제도가 생겼으니, 시기에 맞춰 하늘이 돕는 기분이었다.
고민이 시작되었다.
퇴사 후 주간 대학 입학 vs 회사에 다니다가 3년 뒤 재직자 특별전형 입학
어렵게 입사한 회사이니까 더 이성적이어야 했다. 대학을 졸업한다 해도 다시 입사하기 힘들 것이다.
자리에서, 우편물을 부치러 갈 때, 거래처 은행을 갈 때, 점심식사를 할 때... 틈만 나면 고민했다.
무엇이 맞는 선택일까.
불확실한 미래를 택할 바에 현재 생활에 만족하자고 마음을 다잡아 보기도 했다. 그런데 대학을 머릿속에서 지우려고 시도할 때마다 마음속 어딘가 공허하고 답답해졌다. 어쩌면 마음속에 답을 정해놓고 고민하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열망하는 걸 도전하지 않는다면 훗날에 엄청 후회할 건 분명했다.
난생처음 보는 대학 입시 요강을 10번은 정독했다. 모교에 찾아가 담임선생님을 뵐 수 있는 시간조차 없어서 모든 걸 혼자 알아봐야 했다. 대학교 홈페이지에 접속할 때마다 간절함이 더 커져서 막막한 것도 모르고 준비에 열중했다. 대학 전형 중 입학사정관제 전형이 있었는데, 수능과 내신성적을 전혀 보지 않았다. 서류와 면접만으로 입학할 수 있기에 시도해보기로 했다. 내신 산출하는 방법도 몰라서 내 수준을 파악하지도 못했지만, 일단 지원할 대학교 3곳을 추리는 데 성공했다.
가장 가고 싶은 대학교의 서류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자기소개서 4문항과 포트폴리오 10장이었다. 내 속의 진정성을 모두 끌어모아 자기소개서를 작성했고, 고등학교 시절부터 회사생활까지를 총망라한 포트폴리오를 제작했다.
원서 접수 마감 기한은 빠르게 다가왔다. 처음 준비한 대학교에는 서류를 제출했지만 나머지 두 곳은 접수 기한을 놓쳐버렸다. 밤을 새워가며 서류를 준비했는데도 역부족이었다. 회사와 대학 준비를 병행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게 오산이었다. 결과가 나오는 날까지도 얼마나 스스로를 탓했는지 모른다.
다시 10월 19일,
대학교 1차 결과가 나오는 날이다.
불합격이어도 너무 좌절하지 말자고 몇 번을 되뇌며 결과 조회 버튼을 클릭했다.
합격이었다.
심장 두근대는 소리가 한참 동안 귀에 들리는데도 아무렇지 않은 척하느라 혼났다.
마음속으로 백만 번 환호성을 지르던 그때 그 스무 살 직원은 몰랐다.
5년 뒤에는 선생님이 되어 학생들에게 취업과 진학의 과정을 들려주게 될 거란 걸,
10년 뒤에는 유튜버가 되어 많은 사람에게 퇴사 이야기를 전하게 될 거란 걸.
그저, ‘나’를 위한 선택이었다.
그나마 후회가 적을 것 같은 길을 따라 걸어왔을 뿐이다.
과거의 선택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고, 많은 사람에게 그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2021년 1월, 교사 유튜버가 되어 글을 쓰고 있다.
이 글은 내 인생에, 그리고 다른 사람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5년 뒤, 10년 뒤에 지금 이 과정을 어떻게 나눌 수 있을까.
미래에 벌어질 일을 상상하며 오늘도 가슴 벅차게 걸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