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이 늘어나는 끔직하고도 찬란한 기적

쓸모를 다한 우리의 정착지_08

by 길건너목련

우리의 첫 집은 아파트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작은 나 홀로 아파트였다. 내 두 번째 집은 그 아파트의 조금 더 큰 평수였다. 물론 더 큰 평수라고 해봐야 방 두 개에 거실이 전부인 작은 집이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난 그 첫 번째 집과 두 번째 집을 동시에 날려먹었다.


꽤 오래전 일이지만 그때 생각을 하면 아직도 마음이 아프다. 자금을 융통해 줄 부모님도, 대출이 잘 나오는 좋은 직장도 가진 바가 없는 우리는 평수를 올려 이사하는 과정에서 절대 하지 말아야 할 짓을 저질렀고, 그 결과 모든 걸 잃게 되었다.

그랬다. 살던 집을 팔기도 전에 위층에 매물로 나온 집을 덜컥 계약해 버린 것이었다. 물론 결과는 엉망이었다. 대출이라는 대출을 모두 당겨서 간신히 이사를 하긴 했지만 첫 번째 집은 팔리지 않았다. 덕분에 은행 대출은 물론 비은행권에서 빌린 대출 이자까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말았다.


간신히 첫 번째 집을 팔긴 했지만 떠안은 빚은 이미 우리 부부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부부가 어린 아들까지 떼어놓고 열심히 일해도 빚이 늘어나는 기적, 나는 그때 그 끔찍하고도 찬란한 기적을 경험했다.


겨우 몇 년을 버티고 우린 두 번째 집을 팔고, 월세집으로 이사했다. 다시 무주택자로 돌아간 것이었다.


신기한 건 집을 팔고 보증금이 얼마 되지도 않은 작은 월세집으로 옮긴 후에도 우리에게 큰 빚이 여전히 남아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사실 아직까지 그 시절의 여파가 빚으로 남아있다. 아무래도 내가 죽을 때까지 우리 뒤를 따라다닐 모양이다.


물론 우리 부부의 잘못된 선택이었으니 원망은 없다. 하지만 그 시절 젊은 나를 생각하면 여전히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우리 곁에는 도움을 주는 진짜 어른이 존재하지 않았다.


"우리 딸 아파트 샀는데 우리가 돈을 얼마나 해 준 줄 알아? 아파트 한 채를 거의 사 주다시피 했다니까, 그래도 자식이라고 생각하면 그 돈이 아깝지는 않아."



아는 언니처럼 딸이 11억짜리 아파트를 사는데 큰 도움을 주고, 8천만 원이 넘는 인테리어 비를 딸에게 턱턱 내어줄 수 있는 능력 있는 부모가 없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 아니다. 물론 그런 부모님이 내게도 있었다면 더할 나위가 없었겠지만 말이다.


단지 난 그 시절 내 주변에는 조언해 줄 어른조차 없었다는 말을 하고 싶을 뿐이다.


그 시절을 돌이켜보면 세상에 우리 부부 단둘뿐이었던 것 같다.


유치원에 다니는 어린 아들을 제외하면 말이다. 우리 엄마도, 시부모님도 힘든 결정을 두고 상의할 대상은 아니었다. 헬이라고 불리는 이 대한민국에서 자금줄이 되어줄 비빌 언덕이 없는 것도 문제였지만 정말이지 힘든 결정을 앞에 두고 같이 고민해 줄 어른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왠지 더 마음 아프다.


이젠 의미 없는 일이 되어버렸지만 말이다.


"그래도 집은 있어야지. 너 나중에 후회한다. 땡빚을 내서라도 일단 다 쓰러져가는 초가집이라도 사. 둘이 벌면 어떻게든 갚아져. 대한민국에서 집 없으면 미래도 없는 거야. 사면 언젠가 오른다니까, 서울은."


"야, 남들이 가진 건 하나도 빠짐없이 다 가져야 하는 거야. 지금 당장 힘들어도 웃을 날 온다."


"지금 악착같이 벌어야 해. 애 조금 더 크면 돈 한 푼도 못 모아. 뭘 하려거든 지금 당장 해야 한다니까."


그 시절 내가 들었던 조언들은 거의 이런 종류였다.


사람들의 상황은 모두 제각각일 텐데, 마음이 없는 이 조언들은 참 한결같이 내 처지에 큰 관심이 없다. 집을 산다고 하면 돈을 보태줄 수 있는 부모님도 안 계시고, 안정적인 직장도 없고, 게다가 가진 것도 없었던 우리 부부의 상황은 그 누구에게도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사람들의 기준은 언제나 자기 자신인 탓이다.


그렇다고 그 조언이 잘못된 것이라는 말은 아니었다. 그들은 모두 진심으로 내가 잘 되길 바랐다. 내가 집이 있으니 너도 집을 가졌으면 좋겠고, 내가 돈이 있으니 너도 돈을 많이 가졌으면 좋겠다는 작은 바람에 어떤 사특한 마음이 끼어들 틈이 있겠는가.


그저 나도 자신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던 것뿐이었다.


그래서 그 시절의 난 맘껏 마음을 부풀릴 수 있었다. 저들이 가진 걸 어쩌면 나도 손에 넣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말이다.


그 시절의 난 젊고, 희망에 차 있었으니까.



하지만 아니었다. 남들이 모두 가졌다고 해서 나 역시 가질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당연히 아빠는 있겠지? 아니요, 사생아입니다만!


당연히 대학 정도는 나왔겠지? 아니요, 고졸입니다만!


당연히 여윳돈 정도는 가지고 있겠지? 아니요, 한 달 벌어서 근근이 먹고살고 있습니다만!


당연히 집은 가지고 있겠지? 아니요, 전세에 삽니다만! 그것도 오래된 빌라, 대출 풀로 꽉 끼어서!



남들이 가진 걸 난 여전히 가질 수 없었다.


어린 시절 아빠가 있는 아이들이 마냥 부러워했던 것처럼 나는 요즘 집을 가지고 있고, 여유가 있는 사람들을 마냥 부러워하며 살고 있다. 부러워하면 사는 게 내 존재의 이유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예전처럼 억울하지는 않다.


이젠 진실을 알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는 가진 사람만 존재하지는 않는다. 나만 가지지 못한 건 아니라는 사실 말이다. 나보다 많이 가진 사람들이 태반일 수는 있겠지만, 나 빼고 모두가 갖지는 못했다. 세상에는 분명 나보다 가지지 못한 사람들이 존재한다.


물론 이걸 '순리'라는 이름으로 기꺼이 받아들일 마음 따윈 없다.


그냥 난 이 세상을 어떻게든 살아내 볼 생각이다. 높은 곳에 사는 가진 사람들을 한없이 부러워하는 마음으로, 가끔은 욕도 하고, 화도 내겠지만 말이다. 물론 가끔은 이런 세상을 살아 무엇하나 싶어 회한이 들기도 할 것이다. 조금 더 심할 때에는 죽고 싶단 마음도 저 깊은 곳에서 웅얼거리며 피어오르겠지. 그래도 상관없다.


쉽게 포기할 생각은 처음부터 없으니까.


어차피 세상은 내게 단 한 번도 관대하지 않았다. 아비 없는 가난한 집 자식으로 태어난 것도 서러운데 특출 난 미모는커녕 돈이 될 재능 하나 타고나지 못했다. 내가 전생에 나라를 팔아먹었다고 해도 신도 양심이 있으면 이렇게까지 박복한 캐릭터로 세상에 내던지지는 못하겠다 싶을 정도다.


하지만 난 그렇게 태어났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받아들일 수밖에.


그리고 이제 어른이 된 난 과거의 젊은 나에게 조언을 남기고 싶다. 참된 어른의 도움이 필요했던 그 시절의 젊은 나에게 말이다. 하지만 아파트 계약을 무슨 수를 쓰든 막아야 한다는 둥, 영화에서처럼 애플을 사야 한다는 둥 그런 뻔한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니다.


난 그저 너무 애쓰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어쩌면 우린 원하는 걸 끝내 얻지 못할지도 모르겠다고, 하지만 그건 분명 너 혼자만의 불행은 아닐 거라고.


그러니 앞으로도 늘 그랬던 것처럼 주어진 삶을 살아가라고.


스스로를 원망할 필요도, 누군가를 미워할 이유도 전혀 없다고, 세상이 그냥 이렇게 생겨먹은 것뿐이라고, 살아보니 당근과 채찍이 하늘에서 뚝하고 떨어지는 건 아니었다고.


결국 인간은 오른손에 든 채찍으로 제 엉덩이를 채찍질하며, 왼손으로 당근이 달린 기다란 막대를 들고 자신이 선택한 길을 꾸역꾸역 걸어가는 하찮은 존재일 뿐이었다고, 과거의 젊은 나에게 꼭 말해주고 싶다. 그 시절 곁에 누가 있었든 달라질 건 없었을 거라는 말과 함께 말이다.


'수고했다'는 말을 다정하게 덧붙여서.





그런데 오늘도 급식실 언니들은 주식 이야기가 한창이다.


"이럴 때 사야 해. 우리나라 주식이 저평가된 거라잖아. 주식은 놔두면 어차피 오르게 되어 있어. 지금 당장 돈 필요한 거 아니잖아. 지금은 전쟁 때문에 그렇지. 분명 오를 거라니까."


"그래. 여윳돈 조금이라도 있으면 그냥 지금 사야 해. 우리 언니네도 이번에 재미 많이 봤대. 요즘에 주식 안 하면 바보라잖아? 진짜 이번에 주식으로 재미 본 사람들 엄청 많대."


여윳돈은 없지만 바보는 되기 싫었다. 나는 남편 몰래 모아둔 용돈 40만 원을 주식에 투자했다. 난생처음 해 보는 주식이다.


그런데 파랗다. 파랗다 못해 새파랗다. 가을 하늘을 닮은 청명한 파란색이다!



"요즘 주식 안 하면 바보라는 이야기를 못 들어서 그동안 주식 안 했던 거 아니에요! 안 하는 게 아니라 그냥 돈이 없어서 못한 거라고요! 그러니까 제발 나 좀 내버려 둬요. 지금은 혼자 있고 싶다고요, 진짜! 으흑, 내 40만 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