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K Mar 22. 2022

경쟁 프레젠테이션 PART 1.

사람들은 어느 영화와 같은 일을 기대한다. 작은 펜소리까지 들리는 프레젠테이션 회의실. 마지막 광고회사 드디어 입장. 아름다운 외모의 프레젠터가 준비한 내용 발표를 시작한다. 너무 긴장한 탓인지 쉽사리 말문을 트지 못한다. 다소 실망스러운 표정의 클라이언트. 이 때 꼭 회상씬이 나온다. 프레젠터가 과거에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지, 이번 프로젝트에 얼마나 열과 성을 다 했는지. 프레젠터는 간신히 멘탈을 부여잡고 또박또박 준비한 단어들을 내뱉는다. 감동적인 스토리까지 더해지며 클라이언트 몇몇의 눈가에 눈물이 맺힌다. 그렇게 마지막 회사의 프레젠테이션이 끝나고 준비한 엔딩이 기다리고 있다. 스몰 자이언트. 가장 작은 회사였던 마지막 업체가 이번 경쟁 프레젠테이션의 승자가 된다.


많은 사람들이 갖는 궁금증. 프레젠테이션 자체의 완성도와 유려함으로 경쟁 입찰의 결과가 달라지는 경우가 얼마나 될까. 개인적으로는 거의 없다고 본다. 광고에 트는 게 뭔지를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 광고회사가 가져온 아이디어, 그것을 형상화 한 이미지를 튼다. 프레젠터의 말발을 광고에 태우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클라이언트에겐 광고회사의 프레젠터를 머릿속에서 걷어 내고 전달된 내용을 냉철하게 볼 수 있는 시선이 필요하다. 대중적 요소는 충분한가. 신선한가. 현실 가능성은 얼마나 되는가. 궁극적으로 경쟁 오리엔테이션에서 제시한 목표 달성이 가능한가.


프레젠테이션 무용론에 대한 얘기는 아니다. 광고회사의 프레젠테이션은 수많은 단련 없이 하기 매우 어렵다. 철저하게 목적에 입각한 프레젠테이션이기 때문이다. 각 페이지 별로 어떤 핵심내용을 전달할지 결정한다. 이를 기준으로 쓸데없는 애드리브나 혼동을 초래할 수 있는 부분들은 처절하게 잘라낸다. 그렇게 더 이상 뺄 게 없는 상태가 되면 프레젠테이션 준비가 완료된다. 다만 준비할 시간이 항상 부족하다. 단련과 내공 없이는 쉽지 않은 이유다. 파워포인트 수백페이지의 기획서 분량이 프레젠테이션 불과 2,3일 전 그 윤곽이 잡힌다. 더 끔찍한 경우도 있다. 프레젠테이션 전날 밤 임원보고를 했는데, 내용을 완전히 뒤집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사디스트가 아닌 이상 그 임원도 치열한 고민에 따른 고통스러운 결정을 했다고 본다. 다만 D-DAY 반나절이 남은 자들에겐 생지옥이 펼쳐진다.


경쟁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하며 개인적으로 가장 고민하는 부분은 어디까지 외우느냐이다. 핵심 키워드만 기억하고 현장에서 나머지 부분에 살을 붙여 말 걸듯이 할 것인지. 아니면 문장 전반을 숙지하여 준비한 내용을 충실히 전달하되 다소 기계적인 느낌을 감수할 것인지. 개인적으로는 전자의 방법이 청중들을 설득하는 데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청중들이 자기한테 말을 건다는 느낌을 더 받을 수 있을테니까. 난 아직 내공 부족으로 후자의 방법을 택한다. 프레젠테이션 내용을 까먹을 것 같은 공포 때문이기도 하다. 과거 사내 직원 세미나에서 즉흥적으로 얘기하다 나도 내가 뭔 말을 하는지 모르는 망신을 당한 적 있다. 그 때부터 준비 없이 얘기하는 것에 대한 트라우마 생겼다.


경쟁 프레젠테이션은 광고인과 비광고인을 구분하는 명확한 경계선이기도 하다. 클라이언트의 오리엔테이션이 끝나면 프레젠테이션까지 보통 3~4주 정도의 준비시간을 부여 받는다. 우리와 경쟁할 광고회사는 적을 때는 3군데, 많을 때는 10군데가 넘는다. 약 한달이라는 시간 동안 각 회사가 가지고 있는 자원을 다 쏟아낸다. 혼신을 다한다. 투신의 과정이다. 클라이막스인 마지막 날 밤은 꼴딱 새우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런 노력을 보상받는 광고회사는 딱 한 곳밖에 없다. 나머지 선택되지 못한 광고회사들은 낮술을 하러 간다. 말없이 서로를 격려한다. 스스로를 위로한다.


가끔씩은 우리가 야구선수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잘 치면 살고 못 치면 죽는다. 우리의 경쟁 프레젠테이션 승률은 타자의 타율과 비슷한 측면이 있다. 오랜 시간 4할이 넘으면 정말 대단한 것이고, 3할을 넘는다면 그것도 괜찮다. 긴 레이스이기 때문에 일희일비 하면 안된다. 오늘이 3연타석 홈런을 친 날이든 반대로 연거푸 삼진을 당한 날이든 내일까지 그 기분을 가져가면 안 된다. 당장의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꾸준한 페이스로 나아가다 보면 좋은 날이 온다. 그런 희망을 안고 오늘도 경쟁 프레젠테이션 오리엔테이션을 받으러 간다. 야구선수가 홈런의 꿈을 안고 타석에 들어서는 것처럼. 

작가의 이전글 디지털 광고 포비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