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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K Mar 18. 2022

디지털 광고 포비아

39살이 되던 해, 어떤 심경의 변화가 있어 정보경영 대학원에 입학을 했다. 직장과 학업 병행이 가능하고, 최신의 디지털 비즈니스 방법론을 익힐 수 있는 과정이었다. 입학 이유는 순전히 딱 하나였다. 디지털 문맹. 이는 단지 기계를 잘 다루고 말고의 차원은 아니었다. 세상도 그렇고 광고도 디지털향으로 빠르게 변화 중인데 나는 그저 한 그루의 나무 마냥 우두커니 서 있는 게 불편했다. 미팅을 하다보면 클라이언트 쪽에서도 이러한 변화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며 이것저것 물어보는데, 그저 즉흥적이고 그럴싸한 말로 때우고 있는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AE가 되면 임기응변이 느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내가 광고계에 몸담은 최근의 15년은 1년이 10년 같은 변화였다. 회사에 입사한 해가 2009년인데 그 때 아이폰이 우리나라에 들어오네 마네 할 때 였을 것이다. 아이폰이 출시되면 잘 팔리겠네 하는 마음만 있었지 그게 우리의 생활 전반을 주물하게 될 줄은 몰랐다. 지하철 출퇴근길은 무가지의 펄럭이는 소리 대신 휴대폰 한 곳을 응시하는 사람들의 시선으로 메워지게 됐다. 과거의 광고회사 주니어들은 아침에 일찍와서 신문에 광고 잘 나갔는지 체크하는 게 주요 업무 중 하나였는데, 지금의 주니어들은 유튜브 보면서 어떤 콘텐츠가 유행하고 재미있는지를 꼼꼼히 살펴보는 게 중요한 업무다.


종합광고회사의 경쟁 구도 또한 더욱 입체적으로 변했다. 기존에는 TV, 신문, 잡지, 라디오 광고를 두고 종합광고회사 간에 점유율 경쟁을 벌이는 양상이었는데 디지털 광고를 등에 업은 플레이어들이 판을 흔들고 있다. 대표적으로는 구글, 페이스북(현 메타), 아마존 같은 플랫폼 업체들이며 이들은 각자의 광고 플랫폼을 통해 문턱이 낮고도 가성비가 좋은 광고 집행을 유도한다. 클라이언트가 플랫폼 하나만 택하지 않고 종합적인 견지에서 디지털 광고를 할 수 있도록 돕는 디지털 광고회사 또한 우리의 경쟁자다. 물론 종합광고회사 내부에도 유능한 디지털 팀들이 있지만, 디지털만을 위해 태어난 회사와는 태생에 따른 조직운영 방식이 다르다. 


바뀌는 세상의 페이스에 맞춰 내달리는 이들보다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글쓰는 것 밖에 없었다. 모바일 광고와 PC 광고 중 어떤 광고가 나을지, 모바일 광고의 어떤 스팟에 광고하는게 이번 캠페인에 맞을지 조언할 수 있는 역량은 디지털 회사들보다 잘 할 자신이 없다. 다만 인문학적 역량은 내가 꾸준히 우위를 보유할 수 있는 영역이자, 종합광고회사가 여전히 존재할 수 있는 이유라고 봤다. 이번 광고 캠페인의 청사진은 무엇인지, 어떤 아이디어가 깊이를 줄지, 브랜드의 모습은 장기적으로 어떻게 진화해야 하는지 등. 이러한 근본적인 고민들을 아이디어와 글과 말로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곳이 종합광고회사라고 생각한다.


질적인 사고의 역량에 디지털에 대한 이해도까지 갖추면 좌우의 날개가 될 거라고 봤다. 그래서 대학원까지 다니게 된 것인데, 아직도 클라이언트가 디지털에 대해 깊이 들어가기 시작하면 속이 울렁거린다. 가끔씩은 시대가 원망스럽다. 윗 세대 선배까지는 광고 산업이 기간 산업인 것 마냥, 정해진 4대 매체 안에서 제작물만 잘 굴러가면 됐을텐데. 말도 안 되는 남탓까지 하는 건 그만큼 이 시대를 견디기 위한 끊임없는 도전과 응전의 앞날이 두려워서가 아닐까.


결국은 광고에 대한 컨설팅 같은 개념으로 내 앞날을 준비해야 되는 건 아닌가 싶다. 언제 어떤 디지털의 파도가 다가올 지 모르는 상황이기에, 브랜드와 광고에 대한 근본적인 진단과 디지털향의 처방을 해 줄 수 있는 존재로의 포지셔닝이 그나마 정답에 가까울까. 아니면 메타버스 시대에 맞춰 가상공간에 광고회사 하나 만들고 수익모델을 구상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을까. 솔직히 손에 잡히는 비전이 아직까지는 없다. 안 그래도 귀가 얇은 편인데, 디지털의 시대가 나의 줏대를 철저하게 앗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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