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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K Mar 15. 2022

포장마차

한낮엔 직장인이 지나간 발자국 열기로 가득했던 도로. 밤이 되면 그 토대 위에 익숙한 패턴의 장막이 쳐지고 창백할만큼 환한 전구까지 켜지며 포장마차라는 공간이 완성된다. 낮에는 발자국으로 이 곳을 메웠던 직장인들이 밤에는 가슴 켜켜이 묻어둔 대화들로 이 곳을 채운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후배들과 포장마차를 갔던 경험은 거의 없다. 주로 선배들의 권유에 끌려가듯 포장마차를 갔었는데, 이 곳은 그 날 술자리의 끝이자 우리 마음 속의 끝을 끌어내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술이 잔뜩 취해 막차의 개념으로 간 포장마차는 기억에 남지 않는다. 고된 야근을 마치고 짐을 방금  싼 시점, 고생했는데 그냥 보내기 미안하다며 한 잔 하자는 선배의 멘트가 포장마차로 가는 길의 시작점이다. 두 가지 생각이 든다. 본인이 술이 땡겨서 가자고 하는 것일까. 아니면 최근의 나에 대해 뭔가 지적할 말이 있어서 가자는 것일까. 진심으로 나를 생각해 얘기를 했을 거란 믿음은 솔직히 말하면 없었다. 내가 안 가고 싶다면 안 갈 수 있는 분위기는 못 느꼈으니까.


파란 장막의 문을 젖히면 이 시간에도 그 많은 인파가 모여 있음에 놀라게 된다. 남자들끼리 온 그룹들이 대부분인데, 그 와중에 몇 없는 여성의 목소리는 음파가 다르기 때문인지 유독 귀에 잘 들어온다. 테이블들을 쭉 훑어보니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잘 들어주는 멤버가 꼭 한 명 씩은 있다. 나와 같은 상황에 처해있는 사람이겠지. 그들에게 유독 감정이입이 된다. 갑자기 치고 들어온, 잔 받으라는 선배의 말씀. 현실감각을 깨운다. 한 잔에 한 잔에 한 잔에 한 잔. 특별한 얘기는 없다. 다만 사소한 문장과 단어 한 마디에 따뜻함과 진심이 묻어있다. 포장마차가 이따금 그리운 건 그런 순간들이 좋은 추억들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앞에서 칭찬하고 뒤에서 욕하는 건 광고인의 문화와는 거리가 멀다. 적어도 내가 본 선배들은 그랬다. 앞에서 욕하고 뒤에서 칭찬했다. 업무든 태도든 잘못한 점에 대해서는 눈물 쏙 빠지도록 혼을 내되, 다른 사람이 나에 대해 물어보면 뒷담화는 피하고 좋은 점에 대해서만 얘기해 줬다고 들었다. 내가 광고를 떠나지 않는 이유도, 회사를 떠나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싶다. 모든 게 팀 단위로 돌아가는 광고업무 속에서 누군가의 개별적인 성향과 이기적인 욕망은 미꾸라지처럼 팀을 흐릴 수 있다. 신기하게도 내가 경험한 모든 팀은 언제나 화목했다. 선배는 후배의 결점을 보완해주고, 후배는 선배의 결정을 지지해주는 인간적인 유대가 자리잡혀 있기 때문인 것 같다.


포장마차는 이러한 광고인의 유대를 상징하는 공간처럼 느껴진다. 사수의 생일인데 업무 때문에 새벽을 넘겨버린 날, 술 한 잔 따라주며 위로와 축하를 함께 건네준 곳도. 토요일 아이디어 회의를 마치고 늦은 밤 너덜너덜해진 몸을 이끌며 걷다가, 누가 뭐라할 것도 없이 자연스럽게 들어간 곳도. 평소에 고맙다는 얘기를 쑥스러워 하는 무뚝뚝한 팀장님이 인사를 대신하기 위해 선택한 장소도. 모두 포장마차였다. 내일은 내일에게 맡기고 오늘은 팀 사람들에게 나를 보낸다. 포장마차는 그런 의미였다.


다만 어느 시점부터 회사 사람들과 포장마차에 가는 건 요원한 일이 되어 버렸는데, 꼰대는 가고 새로운 세대가 주역이 되는 신호탄이라고 봐도 무방할까. 젊은 광고 후배들의 마음 속에 포장마차의 역할을 해 줄 수 있는 공간을 찾아주는 것이 선배들의 숙제인 것 같다. 굳이 술이나 독한 방식이 아니어도진심어린 격려와 위로를 해 준다면 그것이 모여 공간이 되고 유대가 될 수 있다. 아니, 그런 것 조차도 그들에게는 부담이 될 수 있다. 그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지켜봐 주기를 바라는 세대일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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