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껄끄럽다. 이 바닥을 훤히 하는 자들이 내 카운터 파트가 되는 일은. 와이프가 나와 같은 회사에, 심지어 부서도 같다면 이런 기분일까. 나만의 룸이 없다. 그 룸이란 이런 것이다. 클라이언트로부터 제작안 수정을 요청 받았다. 어떤 수정은 겉으로는 복잡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오래 걸리지 않는다. 다만 고려해야 될 게 제작팀 별로 여러 광고주, 다양한 프로젝트의 스케줄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있다. 그렇기에 시간이 적게 소요되는 수정일지라도 클라이언트에게는 어느 정도의 룸을 두고 완료 시점을 얘기해 준다. 이러한 얘기가 쉽게 안 먹히는 이들이 그들이다. 광고회사에서 클라이언트 마케팅 부서로 이직한 사람들. 이직의 무리 중엔 광고 전반을 매니징 할 수 있는 AE들의 비중이 높은 편이다.
그들은 내 얘기만 들어도 어떤 상황인지 금방 감을 잡는다. 돌아오는 대답. “죄송한데, 저희 것부터 먼저 해 주시면 안 될까요?” 이 말까지 나올 시엔 답변을 꾸며내려고 하면 안 된다. 제작팀이 처한 작금의 상황을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인정에 호소하는 거다. 이 전법이 먹힐 때도 있고, 정말 급한 클라이언트 한테는 안 먹힐 때도 있다. 그렇게 룸 조절에 실패하면 제작팀한테 연락하여 수정을 서둘러 달라고 부탁해야 한다. 제작팀과 클라이언트 양 쪽 다 만족시킬 수는 없다. 한 쪽에게 안 미안하면 다른 한 쪽에겐 미안해져야 하는 총량불변의 법칙. AE의 처지가 마치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에 껴 있는 남자 같다.
솔직히 난 광고회사 출신 클라이언트들에 대해 색안경을 끼고 바라봤다. 광고에 대한 알량한 지식과 경험으로 광고인들 위에 군림하려 든다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이 드니 그들이 맞는 얘기를 하더라도 사춘기 청소년 마냥 이유없는 반항심이 생겼다. 내 인식의 합리성과 중립성에 대해 조금의 고민도 없이, 그들의 자리가 바뀌니 사람이 바뀐 것이라고 봤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같은 자리에서 동지애를 공유하던 사람들인데. 막연한 배신의 감정 같은 건가보다.
다만 시간이 지날수록 두 가지의 진전이 있었다. 첫째, 그들이 처한 상황에 대한 이해이다. 광고회사에서 AE는 영업부서이다. 돈 벌어다주는 첨병이기 때문에 조직에 미치는 영향력이 넘버원이다. 그런데 클라이언트의 마케팅 부서는 돈을 버는 게 아니라 쓰는 조직이다. 영업조직 대비 힘이 세기가 어렵다. 즉, AE를 하다가 클라이언트 마케팅 부서로 이직한다는 건 그만큼 내부에서 신경쓸 것도 많고 눈치볼 일도 급증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들은 이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곳으로 가게 된 것이다. 사회적 강자가 됐다고 생각했는데 거기서도 약자의 굴레에 있다고 생각하니 동정심 같은 게 생겼다. 광고 스페셜리스트로 간 거기 때문에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기 어려운 괴로움도 존재할 것이다.
둘째, 괜한 감정싸움 말고 그들을 영리하게 이용하자고 생각했다. 영화 <무간도>를 감상하다가 떠올린 발상의 전환이다. 그들을 반대쪽 진영에 위장으로 잠입한 우리 편이라고 상상했다. 클라이언트의 보스를 설득할 수 있는 채널로 그들을 활용해보자. 광고회사 다닐 때는 클라이언트 설득을 밥먹듯이 한 사람들이니 보스 설득도 잘 할 수 있겠지. 또한, 여러 제작안 중 우리가 특별히 만들고 싶은 제작안이 있다면 그에게만 슬쩍 먼저 보여주는 방법도 효과적이었다. 배경과 상황을 가장 먼저 공유해 줌으로써 그의 기분도 고려하고, 우리와 한 배에 타게 만드는 전략이다. 기분도 좋았고, 결과도 괜찮았다.
해가 거듭될 수록 광고회사 출신 클라이언트들을 더 자주 만나는 느낌이다. 스타트업이 산업의 조류가 되면서 광고회사의 주니어들이 클라이언트 쪽으로 급격히 유입되는 현상도 있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바라는 것이 있다면 서로에게 군더더기 없는, 솔직한 커뮤니케이션 문화의 조성이다. 모른다고 부끄러워할 필요도 없고 안다고 더 과장할 필요도 없다. 주니어 클라이언트가 가진 감각적인 안목에 시니어 AE가 가진 경험을 더한다면 더할나위 없는 걸작이 나올 수도 있다. 광고는 모두가 함께 만드는 것이며 그 룰 안에 누구도 미움 받거나 소외되는 사람이 없을 때 최선의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