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학교 박물관 : 기억의 바다로 - 도미야마다에코의세계] 관람기
열흘 전, 신문의 부고 소식에서 낯익은 이름을 발견했다. 일본의 화가 도미야마 다에코(富山妙子)씨였다.
언제나 민중들과 함께하며 이들의 삶을 화폭에 남긴 화가.
그림으로 일본의 전쟁 범죄 책임을 묻던 화가.
국가의 억압과 폭력을 고발한 화가.
투쟁하는 예술의 힘을 보여준 화가가 향년 100세를 일기로 도쿄에서 잠들었다.
지난 4월, 1년 만에 군에서 휴가를 나온 나는 광주비엔날레 관람을 마친 후 바로 서울 신촌으로 향했다. 도미야마 다에코의 회고전 '기억의 바다로-도미야마 다에코의 세계'를 관람하기 위해서였다. 한국과 특별한 인연이 있는 화가의 대규모 회고전인 만큼 혹시라도 예약이 어렵지 않을까 긴장했다. 그러나 네이버 예약은 간단했고, 잠긴 박물관의 문은 담당자를 전화로 불러서야 열렸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2시간이 넘는 꼼꼼한 관람 시간 속 유일한 방문객은 나였다. 혼자 전세를 낸 기분으로 관람하는 것은 쾌적한 일이지만,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이 와주었으면 한 아쉬움이 있었다.
결국 이번 서울 회고전이 도미야마가 살아 있는 동안의 마지막 전시가 되었다.
전시의 이름은 '기억의 바다로'다.
기억은 의식 속에 간직된 인상과 경험이다. 100년의 삶 동안 도미야마에게 형성된 '기억'은 무엇일까. 전시회는 도미야마 삶의 궤적을 따라간다. 그 순간, 장소마다 마다 그녀는 언제나 붓을 들고 시대를 기록했다. 태어난 일본, 유년기를 보낸 만주, 노동운동에 함께한 규슈/북해도/라틴 아메리카, 화가가 가장 사랑했던 한국까지. 화폭에는 언제나 제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사람들이 담겨있다. 탄광 노동자, 위안부 피해자, 억압된 민주화 운동가들, 도호쿠 지진 피해자들. 아담한 전시장은 소리 낼 수 없는 자들의 아우성으로 가득했다.
우리는 반동의 세상에 살고있다. 증언이 왜곡되고 기억이 무시된다. 역사가 수정되어가는 세상에서 도미야마의 그림은 조용히, 그러나 힘차게 반동에 맞서고 있다.
> 벽안의 원한, 캔버스에 유채, 1984
작가는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사한 시인 윤동주를 떠올리며 이 작품을 그렸다. 회색 빛의 시멘트 건물은 쓰려져가고 있다. 앞은 날카로운 철조망으로 가로막혀 있다. 아주 작은 크기의 창문이 드문드문 있다. 그 작은 창문 안 어딘가에서, 윤동주는 조선인으로 옥사했다. 어둡고 컴컴한 그림의 분위기에서 엄혹한 일본 제국의 잔인함과 폭력성이 느껴진다.
좌상단의 나비는 어디로 향해 날아가고 있는 것인가. 다시 고국 한국을, 고향 간도의 조선인 정착촌으로 떠나는 윤동주 시의 정신이 아닐까.
>국화 환영, 캔버스에 유채, 1998
일본을 상징하는 국화, 벚꽃, 여우가 캔버스의 중앙에 놓여있다. 풍요로운 오늘날의 일본 풍경이다. 배경에는 마루노우치를 연상케 하는 빌딩 숲. 벚꽃 밑은 도심의 불야성이다. 전후 일본의 화려함 밑에는 무엇이 있을까, 화려함을 즐기는 사람들이 잊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런 일본의 앞바다에 배들이 몰려오고 있다. '조선정신대'라는 깃발이, 한자로 '한'이라는 깃발이 걸려 있다. 책임을 묻는다. 그 책임에 대한 대답은 아직도 아시아 민중들에게 들려오지 않았다. 오히려 반동의 세상이 되었다.
"한국에서 알게 된 것은 일본의 존재가 남긴 어두운 그림자였다. 식민지 지배와 그 처참한 전후 처리가 남긴 슬픔과 상흔, 피해를 입은 측의 고통과 분노의 시를 읽을 때, 가해 측의 일본인인 나는 어떻게 답할 것인가, 나는 그 해답에 대해서 생각하기 시작했다."
- 도미야마 다에코, [아시아를 품다 - 화가 인생 기억과 꿈], 이와나미서점, 2009
>위, 양심수, 1981, 종이에 석판화
>아래, 광주의 피에타, 1980, 종이에 석판화
한국 군부정권의 가혹한 탄압이 이어지는 70-80년대, 도미야마 다에코는 그림으로 민중들의 투쟁과 민주화 운동을 기록했다. 양심수들을 면회하고, 민주화 운동가들과 교류했다. 광주 항쟁의 참사를 목도한 도미야마는 '광주 연작'을 통해 폭력의 잔인함과 이에 굴하지 않는 민중의 힘을 그림으로서 고발했다.
흑백의 석판화에는 고통의 묵직함이 담겨있다. 군상들의 표정은 고통과 비탄에 빠져있지만, 눈빛에서는 힘을 잃지 않는다. 서슬퍼런 국가권력의 총칼에 언제나 '자유'와 '독재 타도'를 외칠 준비가 되어있다. 그런 학생들의, 어머니들의, 시민들의 아우성 속에 천천히 한국은 민주화를 이루어냈고, 도미야마는 '이름없는' 수많은 민중들을 역사의 주인공으로 주목했다.
> 도미야마의 서울 시장 스케치, 종이에 연필과 수채
평범한 한국 민중에 대한 도미야마 작가의 애정은 위 스케치들에서 잘 드러난다. 시장의 인물들을 사랑스럽게, 생명력있게 그려냈다. '야채 파는 사람', '서울 동대문 시장' 등 작가의 한국어에서 한국과 인물들에 대한 애정이 느껴진다. 아기를 등에 업고 물건을 파는 어머니의 모습, 좌판을 벌이고 손님을 기다리는 시장 아주머니들의 모습이 아주 정겹다.
이런 전통시장의 풍경이 오늘날에는 사라져가고 있다. 특히 내가 사는 수도권의 도시에서, 나의 세대에서 전통시장은 낡은 것으로 치부된다. 아니면 '관광지', 혹은 '감성 포토샷의 뒷배경' 정도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시장들이 브랜드 대형마트에 경쟁력이 비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작가가 그린 시대에는 시장이 동네의 사랑방, 삶의 터전이었을 것이다.
가끔씩 부모님께 물어보면 시골 장의 그리운 정서가 있다고 한다. 내가 느낄 수 없는 마음이다. 그래서인지 이 그림들에 내가 제대로 공감을 한 것인지, 그저 어디서 본 표상으로만 감정 이입을 한 것인지 믿을 수 없다. 그림을 보다가 가끔씩 이렇게 씁쓸해질 때가 있다.
> 죽은 나비에게, 2015, 콜라주 혼합매체
동일본 대지진은 노 화가에게도 충격으로 다가왔다. 원자 폭탄을 맞은 나라인 일본은 원자력 기술을 발전시켜 도시의 풍요를 뒷받침했다. 도쿄의 화려한 불빛 뒤에는 도호쿠 지방의 원자력 발전소가 있었다. 중앙과 지방의 차별이라는 근원적인 모순에서 출발한 일본의 원자력 발전이라는 욕망은 지진과 쓰나미라는 자연의 경고를 마주했다. 자연을 이길 수 없었고, 재앙으로 돌아왔다.
작가의 말 그대로 "풍요로움과 편리함을 추구해온 근대문명의 종언"이 온 것이다.
예술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 것인가.
예술가는 무슨 말을 하는 사람인가.
만주, 규슈 지쿠호, 홋카이도, 서울, 광주, 도호쿠.
탄광 노동자, 위안부 피해자, 저항하는 민중, 동일본 대지진.
도미야마 다에코의 그림은 힘이 세다. 묵묵한 르포르타주 같은 그림들은 시대를 기록하고, 증언한다.
사람들의 삶과 이야기를 글로 기록하고 싶은 내게 큰 가르침을 주었다.
관람일 : 4월 28일
+ 신촌에는 맛있는 라멘 맛집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