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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텔라 Mar 25. 2020

나의 삶에 제목을 입력하세요!

나의 말과 글을 찾는 adagio

 코로나 19라는 이름으로 예기치 않게 매우 "한가한"시간이 "모두의 허용"이라는 전제를 깔고 내게 왔다.





맹렬히 "나를 덮쳐오던" 시간에서 "내가 밀어내 보기도 하는" 시간을 가져보는 중이다.

한낮의 고양이처럼 게으름을 배우게도 되었다.

잘게 썰어놓은 무채처럼 강박에 절어 쪼개고 또 쪼개던 시간들을 뭉개 버리고

매우 흡족하게 (시간을 허투루 보낸다는 죄의식 없이) 그 "게으름"을 잘 써먹고 있다.


차를 끓여 들고 내 서재방에 앉아 한껏 여유를 부리는 시간이 꽤 잦고 길어졌는데,

토론의 일정으로 줄 세워진 일명 쳐내야 하는 책들을 팔꿈치로 밀어내고

읽고 싶어 쳐다만 보던 책들을 책장으로부터 손가락 걸어 꺼드럭거리며 톡, 톡- 빼어내는 기쁨이란....

불교, 개신교에 관련된 책이나 은유나 피터슨이나 버지니아 울프의 책을 마음껏 풀어헤쳐 의식의 흐름대로 건너 다니는 중이다.


(adagio)




사건의 표면만 근근이 남기던, 그것도 쥐어짜 내 후려 썼던 글쓰기는 또 어떠냐면...

노트북 전원이 채 꺼지기도 전에 엉덩이가 먼저 그 자리를 떴던 그때와 사뭇 다르게

하루 종일 켜져 있는 노트북 앞에 무시로 뭐라도 쓰고 싶은 내가 등장한다.

그렇다고 글이 일필휘지 잘 써진다라는 건 아니고 "집 나갔던 쓰고 싶은" 마음이 자처럼 돌아온 느낌이라고 할까...  

반드시 쓰지 않더라도 글쓰기의 공통화제로 묶을 수 있는 이를테면 작가에 관한 책이라든지 글쓰기에 관한 책이라든지 좋아하는 작가의 칼럼 같은 것들을 나의 노트북으로 초대하고, 초대된 것들로 시간을 쓴다는 자체가 매우 흡족하다.


왜 있지 않은가, 쌀을 불리고 뜸을 들이는 시간처럼

글쓰기에도 글을 불리고 뜸을 들이는 시간이 앞 뒤로 붙는다는 뭐 그런....


뜨거운 보이차가 다 식도록

"제목을 입력하세요"란을 쳐다본다.  

멍하게 눈의 초점은 나가 있고

입은 최소한의 에너지로 홀짝홀짝 찻잔으로 가다 오다 한다.

 Like That 기타 선율만 도려내어 내 귀에 담는다.


한가한, 허용된 시간이 만든 변화.


(adagio)




낮에 전화로 정희에게 이야기했다.

하루하루 달리오는 심경의 변화라든가 지금 이 순간 어디에 머리를 쿡 박고 열중하고 있는지, 일상보다 사유를 가감 없이 생으로 나누는 유일한 친구.


"나는 요즘 매우 정돈된 나의 아웃풋(output)을 열망해!"


집안일을 하면서도 강의가 흘러나오는 블루투스 무선 이어폰이 귀에 들어앉아 있기 일쑤다. 어린아이들 둘을 키우면서 잠을 조각내어가며 한 달에 있는 열 번의 토론모임을 위한 책들을 읽어제꼈다.

배우고 또 배우고 읽고 쓰고 반성하고 토론하고 나누고 다시 생각하고...

지난 몇 년간 그야말로 작정하고 나를 단련해 본 시간들이 이 한가한 시간을 통해서 관통될 줄이야...


"읽고 배우고 생각하며 삶으로 도출시키기 위해 노력했던 것들, 이제는 산발적인 인용이 아닌 나의  말이나 글이나 삶으로 좀 또박또박하고 정갈하게 나와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라고 어디서도 해 본 적 없는 그러나 요즘 내가 아주 많이 하는 생각을 툭- 이야기해버렸다.


누구에게 보이기 위해서도 아니고 인정받기 위해서도 아니지만

내가 아직도 타인의 말과 타인의 글에 머물러 있다는 못마땅함이 될 수도 있겠고 이제는 그들이 그의 글과 말로 살았던 것처럼 나는 나의 말과 글로 살고픈 내 고유한 사유에의 갈망 같은 것이겠다.


제목이 들어갈 칸을

아주 오래

천천히

촘촘히

들여다보고서야 발생된 내 마음의 말.

시간을 들여야 내게 허용되는 것들.


다시 코로나 후 일상으로 걸어 들어가더라도

제목이 들어갈 칸을 한참 쳐다볼 수 있기를...


 내 고유의 말과 글이 거기 들어가 있기를...



(adag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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