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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텔라 Apr 26. 2020

나는 엄마 여자 사람입니다

 은아의 일기 #3

    

호영이는 고학년이라 온라인 개학이 많이 적응되었겠네. 너도 제법 여유가 생겼겠고. 유준이는 3학년이라 가장 늦게 온라인 개학을 했어. 사람들이 아이들 개학이 아니라 엄마 아빠 개학이라고 그러더라. 엄마가 투입되지 않으면 안 되는 시간이 산적한 하루하루. 너의 그림자 노동에 관한 일기는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졌어.     


늦잠 자던 아이들이 아침형 인간으로 탈바꿈하는 한 주였어. 온라인 개학!

당일 버벅거리지 않으려고 온라인 개학 전 몇 번이고 학교 홈피 알림장이며 e학습터, 위두랑을 오가며 안내문을 읽고 숙지했지. 사상 유례없는 원격 온라인 수업을 대비하는 엄마의 자세라고나 할까. 나름 긴장되더라.

유준에게 로그인, 진행률 확인, 알림장과 과제 체크, 배움 공책 쓰는 방법 등 일일이 설명해주었지. 세팅만 해주면 될 거라 생각했는데 온라인 특성상 쉽게 흐트러질 수 있는 태도를 바로 잡아준다든지 질문에 일일이 대답해주는 일, 과제 탑재를 도와주는 일까지 추가되는 일이 한 둘이 아닌 거야. 일주일 동안 점점 유준이가 알아서 하는 비율이 높아지긴 했지만 그래도 엄마의 손길 없이는 아직 온라인 수업 전체 과정을 매끈하게 소화하기는 힘든 것 같아. 얼른 등교 개학이 왔으면 좋겠다 ㅜㅜ     


코로나가 일상을 뒤덮은 시국에 어쩔 도리 없다지만, 각각의 사회적 역할이 고스란히 가정으로 들어와 버리니 하나부터 열까지 그 많은 일을 소화하고 종종걸음 치는 건 결국 엄마의 몫! 쉬이 지칠 수밖에.      


남편은 온라인 개학이 노트북 전원만 올리면 되는 줄 알아. 온라인 개학을 했는데 궁금하지 않냐며 저녁 시간에 한소리 했더니 그제야 “어 유준이 친구들이랑 선생님 만났어? 화상으로 하는 거야?” 영 맥을 못 잡는 다른 세계 이야기를 하더라고. “얘들은 일방 원격 수업이야, 친구들 얼굴 당연히 못 봤고..” 그제야 “아 그런 거야?” 하더라. 간단한 멘트로 아이의 온라인 개학에 대한 아빠 몫이 아주 쉽게 일단락되었지. 으흑!     


남자들도 물론 여자들이 알지 못하는 무게감이 있겠지? 남녀 가사분담도 꽤 일반화되었고 인식도 많이 바뀌었고. 그런데도 유교적 영향이 깊게 뿌리 박힌, 본인은 인식조차 하지 못하는, 그런 말과 생각들을 마주할 때면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항변의 의지를 주체할 수가 없어. 그때마다 입술을 깨문 적이 한두 번이 아니야.    


어젠 잠깐 외출할 일이 있어 운전하다가 여성시대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듣게 됐어. 울먹이는 할머니 목소리가 들리길래 소리를 키웠지. 전화 음성으로 자신의 사연을 남기는 코너였어. 맞벌이 딸 부부 대신, 쌍둥이 손자들을 돌보는 할머니였는데 코로나 때문에 아이들이 유치원에 가지 않으니 온종일 그 아이들 뒤치다꺼리를 하다 지친 마음을 하소연하는 울먹임이었던 거야. 딸한테는 속상할까 말도 못 하겠고 말 안 하자니 본인이 너무 힘들어서 쓰러질 것 같다고...

라디오 너머로 그 마음이  읽히는데 나도 울컥할 했어.  어쩔 수 없이 여자에게 편중된 몫들이 어디 육아뿐이겠니?


지난주였나?

친정에서 저녁을 먹는데 엄마가 남편 앞으로 자꾸 무침회를 당겨 놓으라는 거야. 음식을 식탁 양쪽에 하나씩 둬서 손이 안 닿는 위치도 아니었어.

“엄마 충분히 먹을 수 있는 거리야. 됐어요.”

친정 부모들이 딸 위해 사위 대접도 하는 거라고 그 마음을 내가 왜 모르겠어. 그런데 그때부터 “밖에서 일하고 들어온 남자를 그렇게 대접하면 쓰나”부터 점점 마음에 거슬리는 가부장제 권력형 말들이 식탁 위를 마구 날아다니기 시작하는 거지. 특히 부모님과는 ‘정치 이야기 안 하기’, ‘논쟁형 토론 안 하기’를 몇 번의 경험으로 깊이 터득한 나는 입 꾹 다물고 밥만 먹었어. 그런데 몇 날 며칠이 지나도록 마음에서 떠나지 않는 ‘아버지의 말 한마디’가 자꾸 맴돌아.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너희 엄마처럼만 해라”      

아버지의 의도는 그간 엄마의 삶에 대한 총체적 칭찬, 그것이었겠지. 엄마는 내심 모처럼만의 아버지 칭찬이 싫지 않은 모습이었어.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던 (숨기려고 애썼으나 채 흘러나오고만) 그 표정을 순간 포착해 냈거든. 그런데 왜 내게는 체한 음식처럼 내내 마음을 통과하지 못하는 말이었을까? 집에 와서 곰곰이 생각했어.     


우리 부모님은 (뭐 예전에 다 그랬다고는 하지만 내가 생각해도 눈물겹도록) 뼈저리게 가난을 겪은 분들이야. 여유 있는 지금의 생을 일군 것 하나만으로도 두 분 정말 존경해. 그래서 아버지를 탓하고 엄마를 두둔하는 마음 같은 건 아니고, 다만 엄마의 고생이 어떤 형태로 얼마만큼 처절했는지 너무 잘 아니까... 딸이기에 앞서 여자로서, 아버지의 말이 썩 아름답게만 들리지는 않더라구. 그 말에는 엄마의 욕망은 깡그리 죽이고 끝도 없이 남편과 가족을 위해 헌신하고 봉사했던 한 여자의 생이 가려져 있어.


엄마는 많이 배우지 못하셨지만 교회에서 어깨너머로 피아노를 배울 만큼 똑똑한 분이셔. 정말 제대로 된 음악 공부를 하셨다면 대단한 성악가가 되셨을 거야. 교회에서 찬송가를 부를 때면 내가 다 뿌듯했다니까. 분명히 당신이 좋아하는 일이며, 꿈도 있었을 거잖아. 그런 사람이 젊었을 적 아버지의 도시락을 싸고 나면 본인 점심은 당연히 굶는 걸로 여겼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왜 그 밥을 반씩 나눠 먹을 생각을 못 했나.’ ‘아버지는 엄마가 굶는 점심시간에 대해 알아차리지 못하셨을까’ 괜히 내가 다 서운하고 속상한 거야.   

   

매스컴에서 ‘희생의 아이콘’이나 ‘집밥’ 같은 상징적 이미지로 엄마들을 틀 지워놓는 것도 난 너무 불편해. 거기서 한치라도 벗어나면 꼭 이기적인 사람인 것처럼 치부하잖아. 엄마 맞냐는 둥, 엄마가 어떻게 그러냐는 둥... 그런데 거기서 벗어나고 싶은 나마저도 애가 감기라도 걸리면 꼭 습도 조절 못한 내 죄 같고, 반찬 골고루 건강식으로 못해줘서 그런 건 아닌가 의기소침할 때가 있지. 나도 알게 모르게 모성의 신화에 적잖이 발 담그고 있는 기분이 들 때는 참 씁쓸하더라.     


내 의무와 역할을 묵묵히 소화해 내면서도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산다는 것, 그 두 가지의 기울기를 잘 조절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 요즘 부쩍 느껴. 힘들지만 또 어느 한쪽으로 치우친 삶은 용납이 안 되니 백방으로 노력하고 몸부림치는 거고.     


때론 지치는 순간이 오더라도 나 자체의 회복력으로 얼른 딛고 일어설 내공이 있으면 좋겠다. 나도 사람이라 순간순간 감정이 바닥을 치고, 현실의 벽에 내 신념들이 산산조각 나겠지만 그래도 묵묵히 그 조각들을 주워 이으려면 일단, 내가 단단해져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     


나의 일상들, 내 엄마의 삶, 사회가 여자에게 주는 무거운 말들을 예민하게 들여다보는 요즘이야.    

 

갑자기 그때가 생각난다. 서사는 생략하고 유준이가 나한테 야단맞는 날이었어. 엄마 역할에 과부하 걸린 내가 나도 모르게 소리치고 있었지.

“나는 네 엄마이기 이전에 오은아야!!”

열 살 아이한테 할 소리는 아니었는데 ㅜㅜ      

    

내일부터는 발랄 모드를 좀 작동시킬까 봐...         


      

은아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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