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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텔라 Jan 21. 2020

꿈꾸는 엄마에서 꿈 짓는 엄마로

책방에서 나 찾기 프로젝트 Intro

   

엄마가 되었다.

이 전 삶과 완전히 다른 삶에 돌입하는 관문, 그 이름이 “엄마”였다. 모두들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엄마의 역할을 소화해내는 것처럼 보였다. 그들처럼 나도 자연스러우리라 의심이 없었다. 그러나 주인공이 나였던 세계에서 아이를 위한 삶으로 오롯 모성의 감정 하나로 건너가기란 그다지 자연스럽거나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이들이 태어나고 육아에 전념하면서 아이를 통해 얻는 “경이로운 경험”의 세계와 문득 “없어진 나”를 발견하는 세계가 공존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아이의 존재에 대한 감사함과 재롱에 행복한 웃음을 웃다가도 “나” 그대로의 “나”는 없어지는 것 같아 갑갑하고 서글펐다.


첫 아이가 제법 자기 걸음을 걸어낼 때 둘째 아이가 태어났고 두 아이의 엄마로서만 존재한 내 삶에서 “나”는 무언가 하는 끊임없는 물음이 되돌아왔다. 매 시간 맞춰 분유를 타고 이유식을 만들고 뒤집기에 재미 붙인 아이에게 시선을 고정하며 집안 살림을 하느라 눈 코 뜰 새가 없었다. 둘째가 태어나면서 남아용, 여아용 기저귀를 번갈아가며 갈고 있자니 나는 마치 기저귀 갈러 이 세상에 태어난 것 같았다. 어쩌다 생긴 외출, 불어난 몸에 결혼 전 입던 옷은 그림에 떡이고 매번 아이를 업거나 안아도 문제없는 면 티셔츠만 가득한 옷장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어느 날 문득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보니 거기엔 아이 침이 흠뻑 묻은 옷에 퀭한 눈을 한 자신감 없고 작아질 대로 작아진 내가 서 있었다.


 우울한 마음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마음의 환기를 이룰 수 있는 것들을 찾기 시작했다. 고단한 삶 가운데 수프를 끓이면서도 셰익스피어의 책을 읽었다는 타샤 튜더 할머니처럼 나도 육아와 살림으로 힘든 마음을 짬짬이 책으로 채웠다. 그러던 어느 날 책이 내게 꿈에 대해 묻기 시작한다.


엄마는 꿈을 꾸면 안 되나?


비록 육아와 살림에 시간과 몸이 묶여 지내지만 꿈은 꿀 수 있지 않나? 인터넷 사이트 여기저기 자격증 과정을 돌아보기도 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할 수 있는 공부를 시작해 볼까 생각도 들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겠지? 단념과 포기가 먼저 온다. 그러다가 답답한 마음을 풀어볼 요량으로 빈 노트를 한 권 펼쳤다. 먼저 내가 좋아하는 것을 쓰고 지금 현실에서 할 수 없는 것이지만 언제고 내가 꼭 하며 살고픈 이야기들을 쓰기 시작했다. 너무나도 신나게 써진다. 상상의 세계가 글로 쓰기만 해도 무언가 눈에 보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노트에 이름을 달고 부제를 쓴다.


Oh note. 꿈꾸는 엄마”    


아이가 새벽에 잠에서 깨면 아기 띠로 들쳐 없고 동이 트는 방향의 희미한 불빛에 의지해 책을 읽었다. 밥이 끓는 시간, 식탁에서 한 줄 글을 얻어 읽었다. 그 당시 내가 기댈 수 있는 책이 없었고 언제고 펼쳐 놓을 꿈 노트가 없었다면 어떻게 견뎠을까.


노트에 나는 또 이렇게 쓴다.

책을 통해 마음을 나눌 사람들을 찾고 싶다고.


남편에게 친정식구에게 엄마에게 하지 못하는 이야기를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아기 용품의 정보를 나눌 이가 아닌, 시어머니 남편 이야기에 영혼 없는 맞장구쳐 주는 이가 아닌, 시간 맞춰 밥을 먹고 쇼핑하다 헤어지는 동네 엄마들이 아닌, 보이는 것으로 재단하고 이기와 경쟁이 수다에 묻어 나오는 그런 이야기를 하는 이들이 아닌, 페르소나를 벗고 진실 되게 자신의 이야기를 펼치고 들어줄 수 있는 사람들이 어디 없을까 생각했다. 책으로 인연을 맺어 서로가 서로에게 마음의 빗장을 풀고 삶 깊숙이 만나지는 사람들을 찾아 공동체처럼 뭉쳐 지내고 싶다.


 어느 때고 부질없다는 생각에 마음이 쪼그라들까 봐 없는 자신감을 긁어모아 거창하게 비전과 목적의 글을 썼다. '여기저기 어디에도 다 있는 독서모임에 발만 담그면 취미지, 꿈이 아니다'라고  내 마음이 내 마음을 설득했다. 현실의 여건과 많은 제약으로 먼저는 온라인의 형태를 빌리긴 했지만 그 누가 뭐라든 내 마음에서의 타이틀은 “꿈”이지 “취미”가 아니다. 확실히 마음에 저장하고 이름을 정했다. 인문적 삶을 실천하는 문화공동체 “우주지감” 내 마음의 한 자락을 너무나도 크게 안아준 소중한 친구 정희와 함께 2013년 1월 7일 온라인 상 우주지감을 먼저 세상에 내었다.

둘째 아이를 임신해서 입덧에도 만삭에도 빼먹지 않고 꼼꼼히 책을 읽고 발제 지를 만들고 모임을 열었다. 한 사람 두 사람 만나지는 사람에게 진심을 다했다. 꿈 노트에만 써 놓았던 “나의 만나고 싶은 사람”들이 신기하게 모이기 시작했다.


첫째 아이가 유치원으로 둘째 아이가 어린이 집으로 가던 날 나는 또 하나의 꿈을 짓기로 했다. 공간을 마련하는 꿈은 사실 아이들이 많이 클 때까지 꿈 노트에 남겨놓을 생각이었지만 우리의 삶은 유한하기에 도전과 시도를 언제까지 미룰 일이 아니라는 말을 파머 j. 파커 <삶이 내게 말을 걸어오면>이라는 책이 해 주었다.

한창 손 많이 가는 아이들 둘 엄마이고 아이 아빠가 벌어오는 월급에 아파트 대출금까지 갚아야 하는 빠듯한 살림이지만 죽음 앞에 서는 날 지나온 나의 삶을 후회할 것인가 미련을 둘 것인가 잘 살아왔다고 이야기하며 눈을 감을 수 있을 것인가 생각하니 인생 수업료로 꿈을 장만해도 아깝지 않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나 자신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 힘들고 더디더라도 조금 더 성숙할 수 있는 가치를 져버리지 않겠다는 신념, 스스로의 힘을 길러내는 사람이 되겠다는 결심, 한 줄 시에 하늘을 올려다볼 줄 아는 마음이 말랑한 이로 남고 싶은 소망을 꿈이라는 단어에 담아 다시 현실로 꺼내기로 마음먹는다.


2016년 7월 1일 더 미룰 수 없는 두 번째 꿈 읽다 익다 책방을 열다.

 

꿈이라는 것을 기존의 것으로 틀 지우지 않고 새롭게 내 삶에 맞도록 편집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직장과 자격증과 아르바이트 기존의 체제에 꼭 내 몸을 맞추지 않아도 내 옷을 내가 지어 입는 심정으로 나의 길을 내가 열어볼 작심을 했다. 생각 속에 머물렀던 꿈을 현실로 끄집어내는 일은 다름 아닌 한 발작 한 걸음부터 시작되는 것이며 이는 무형의 꿈, 유형의 삶이라는 실로 뚜렷한 경계를 가진다는 것도 여실히 느끼고 있다. 아주 작은 시도들은 작은 성취가 되어 돌아왔고 그 성취들이 다시 쌓이자 나는 서서히 쪼그라들었던 자존감에 새 호흡을 불어넣으며 사는 중이다.  꺼지면 다시 불어넣을 나만의 힘도 조금씩 자라고 있다.

초라하게만 느껴졌던 예전 모습과 거창하지 않지만 소박하게 꿈을 현실로 살아내고 있는 지금의 나는 분명! 달라져 있다. 그리고 달라져 가고 있다.


나는 오늘 하루도 꿈 짓는 일이 하고 있다.

동시에 꿈 짓는 일이 삶 짓는 일이 되어가고 있다.    



상가임대, 전화번호를 눌렀다. 덜컥 꿈을 질러버렸지. 죽을때 후회할까봐.
이 텅빈 공간을 무엇으로, 어떤마음으로 채울까?
공간은 나의 마음의 책이다. 프롤로그부터 에필로그까지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다 있다.


앞으로의 이야기를 위해

출산-육아-우울-책방 오픈-3년 반 시간

 10여 년을 압축하여 인트로처럼 써봅니다.

*

마흔 즈음 책방에서 나를 발굴해가는 과정,

좌충우돌 맨땅 헤딩에 가까운 책방 운영기, 사람과의 소통을 이끌어내기 위한 커뮤니티 디자인, 책에 대한 작은 단상, 퇴근 후 책방지기의  엄마 델라 이야기 등 이곳에 차근 펼쳐갈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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