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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텔라 Jun 29. 2022

유이의 지옥 탐방

아홉 살 딸아이의 시간들


학교 앞에서 우리는 떡볶이를 먹고 있었다.

일하느라 바쁘지만 짬을 내서 아이들 옆에 있어주노라 조금은 뿌듯한 엄마, 첫째 유준이 그리고 귀여운 우리 막내 유이! 행복하지 아니한.....ㄱ...ㅏ...




"엄마 우리 이사 언제 가?"

이사 이야기는 꽤 자주 나왔던 이야기고 나도 이즈음 이사를 생각하고 있던 터라 별 이상한 낌새를 못 알아차렸지만 다음 말은 조~금 이상하다.

"엄마 나 홈스쿨링 하면 안 돼?"

이때부터 약간 당황스럽기 시작하면서 이 아이가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지 궁금하다.

"어...? 너 홈스쿨링이 뭔지는 알아? "


공부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굳이 한 방법으로 목매달 생각이 없다는 것이 아이들을 양육하는 내 지론이긴 하지만 초등 2학년 딸아이가 홈스쿨링을 원한다는 이야기 이면에는 액면의 의미가 아닌 어떤 다른 마음이 자리한 건 아닌지 내심 긴장되기 시작했다.


"홈스쿨링 하고 싶은 이유가 뭔지 먼저 좀 이야기해 주면 안 돼?"

아이가 명랑하지 않다.

퍽 망설이기까지 한다....

나도 긴장된다.


유이가 갑자기 잘 먹던 떡볶이를 양 볼로 넘기더니 울음이 터진다

아. 뿔. 사.

평온이 깨졌다.


"유이야 왜? 뭐 때문에 갑자기?"

이때부터 유이의 마음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눈치챈다.

"엄마 친구가 무서워!"

'이게 무슨 소린가. 친구가 무섭다? 그럼 누구한테 왕따나 해코지를 당한다는 소리야?'

내 머릿속에서는 이때부터 온갖 최악의 시나리오를 그리고 있다.


'나는 엄마니까 냉정하되 동요하지 않는다'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내 위에 또 다른 나는 당연히 이 지시를 보내오지만 심장이 벌렁거리기 시작한다.


"왜 친구가 무섭지? 괴롭히는 친구가 있어?"

"아니~"

"그럼 왜 친구가 무서워?"

일사천리 이야기가 진행되는 것 같지만 그때의 분위기는 유이의 말 한마디를 들을라치면 참을 인자 세 개씩 그리고 한 문장씩 얻어내어야 했다. 시간이 꽤 길어진다. 무언가 많이 망설인다는 뜻이다.


'아... 정말 이게 무슨 날벼락이니....' 속에서 외치는 말을 밀어 넣고 이내 냉정과 다정 사이를 오가는 엄마의 말로 전환한다.

"유이야 엄마한테는 무슨 말이든지 다 할 수 있어야 해. 엄마가 유이의 마음을 잘 알아야 유이의 힘든 상황 기쁜 상황 함께 할 수 있고 도울 일이 있으면 도울 수도 있는 거야. 엄마는 유이가 엄마한테만은 솔직해졌으면 좋겠어. 엄마한테 말 못 상황을 많이 만들면 만들수록 쉬운 일도 어려워지고 아무것도 아닌 일들이 유이 마음을 더 힘들게 만들지도 몰라?"


말이 자꾸 길어진다. 나도 당황하고 있다.

아! 무슨 상황인지 절반도 이해가 가지 않았는데 기운이 쭉 빠지기 시작한다.


유이는 같은 반 어떤 친구의 말이 명령처럼 들리기 시작했다. 자신은 태권도 품새 연습을 더 하고 싶은데 친구는 자꾸 떡볶이를 먹으러 가자고 한단다. 먹기 싫은 떡볶이를 먹어야 하는 상황이 싫고 친구가 자기가 다 먹을 때까지 한사코 기다리라고 하는 말에서 어느 정도의 강제성을 느끼는 모양이었다. 같이 좀 있어줄래? 하는 것과 나 먹을 때까지 여기 있어! 하는 말은 다른 거니까. 유이는 엄청 서러워하며 울었다. 우느라 말이 삼켜지고 삼켜지는 말을 꺼내느라 시간이 제법 흘렀다. 이때부터 슬슬 화가 좀 나기 시작한다.


목소리에도 실렸지 싶다...

"유이야 유이가 싫은 것은 네가 아무리 좋아하는 친구라도 싫다고 표현을 해! 네 마음의 주인이 누구야? 엄마랑 매번 말하는 게 뭐야? 네 마음의 주인은 너야! 네가 너를 보호할 수 있어야 하고 그러려면 확실히 네 생각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해. 친구가 싫어할까 봐 친구가 이제는 나랑 놀지 않을까 봐 염려돼서 원치도 않는 일들을 친구가 하자는 대로 들어주다 보면 네 마음의 주인이 그 친구가 되는 거잖아"

또 길어진다......


실지 속으로는 더듬더듬 유이 담임 선생님 전화번호를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나이 어린 아이들이라도 강요나 명령이 관계 속에 들어가면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싫다는 소리를 못하는 내 딸, 이렇게 자기 주관이 없었나... 그것도 화가 났다.

친구들한테 이렇게 휘둘리면서 초등 1, 2학년 소극적으로 학교 생활을 한 거였어? 서서히 걱정이 커지기 시작한다.

내가 책방 하느라 아이들한테 너무 소홀했나... 나는 무엇을 놓치고 사는 거야? 급기야 엄마의 자책으로 돌아온.... 다.....


사건이 깔끔하게 마무리된 건 아니지만 싫다고 생각하고 하고 싶지 않은 일에 대해선 네 마음을 솔직히 표현하라고, 그래도 괜찮다고,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그렇게 말해 주었다. 이사나 홈스쿨링은 이럴 때 회피하라고 쓰는 방법이 아니라고... 엄마의 식상한 용어를 총동원하기 시작했다.

이미 내 마음 아래서도 유이 친구라는 아이들이 괘씸해지기 시작했다.


"부딪쳐봐! 싸우듯 하지 말고 친절한 말투로 건네되 내 마음이 원하지 않는 일은 솔직하게 말해 , 괜찮아. 네 뒤에 너를 무척 아끼고 사랑하는 엄마 아빠가 있어. 겁낼 것이 없어. 당당해져 알았지?"


다음날 학교에서는 용기를 내어 보기로 하곤 유이의 울음은 미지 끈 뜨뜻하게 잦아들었다.





ㅡ다음날ㅡ


그 이후에 나는 나와의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담임 선생님께 이야기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내 마음의 두 결론의 싸움인데

일단 유이가 용기를 내어 보기로 했으니 일을 키우지 말고 아이를 믿어보는 것으로 그리고 며칠을 더 두고 본 후에 그래도 크게 달라지는 것 없이 "아직도 친구가 무서울 그때" 담임선생님께 전화하는 것으로 결론지었다. 말이야 쉽지만 나도 엄청난 갈등에 휘둘렸다.


저녁에 퇴근하고 가족들이 모두 모였다.

저녁 밥상을 앞에 두고 이제 먹으면 된다.

밥 먹으면서 유이의 마음이 어떤지 물어볼 참이었다.


유이가 말을 먼저 꺼낸다.

"엄마........ 나.... 할 말이 있어..... 아빠랑 오빠 없는데서 말하고 싶어....."

"어 그래 방으로 들어갈까?"

그렇게 우리 둘의 밥은 식어갔고 세 시간이 넘도록 아이의 울음이 계속되었다.


"엄마 나 엄마한테 말할 게 있는데... 너무 죄송해요..."

"유이가 엄마한테 이렇게까지 울면서 죄송할 일이 뭐가 있어?

"엄마 나..... 큰.... 잘못을... 했어..... 나 경찰서에 들어가요?"

"엄마 나 혼낼 거야?"

"엄마 우리 담임선생님이랑 교장선생님도 이 일을 다 알게 되면 어떡하지?

....

뒤에 말이 가관이다.

"엄마 나......................... 사형당해?"

"뭐?"


도대체 어느 정도의 잘못을 저질렀길래 아홉 살 아이에게 이러한 무게의 단어가 들어가 있을까? 덜컹 겁이 났다. 대수롭지 않은 범위의 잘못(?)을 벗어나면 어떡하지. 너무 안일하게 있던 나에게 벼락같은 일이 눈앞에 던져지면 나는 이 일상을 어떻게 수습해 나가야 하지? 잠깐이었지만 일상에서 딸과 엄마 사이 주고받을 일이 없을 그 단어가 귀에 들어오자 슬금슬금 겁이 나기 시작했다. 예상 밖의 일일 수도 있어. 청천벽력 같은 말이 있는 거 보면 누구한테라도 가능한 일이고 그게 오늘은 재수 없게 나일 수도 있다.



어절에 5분씩 걸린다. 엄마 불러놓고선 울고  경찰서.... 말 한마디 꺼내놓곤 오열을 한다.

이 시간들이 계속될수록 나는 애간장이 녹는다.


"나 나쁜 말을 했어요"

일단은 다행이다. 일단 말의 범주이니 사형까지는 아니다. 조금 냉정해질 수도 있는 범위다.

"어떤.... 말을 했는데 이렇게 까지 걱정을 하고 힘들어해?"

그다음부터는 말의 범주에서 있을 수 있는 최악의 말을 몇 가지 떠올린다. 예를 들어 성에 관계된 이야기라든가......

아! 어쨌든 나도 가해자의 엄마가 될 수 있는 상황이다.


"미....."

"미......"

"미............."

자신의 입에 올리기가 이다지도 힘든 말... 은 "미"자로 시작되나 보다.

나는 "미"자로 시작하는 모든 최악의 단어를 속으로 수집하기 시작한다.


또 또...

시간을 엄청 울음으로 잡아먹었다.


도저히 말을 못 하겠단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나도 지쳐간다.

"유이야 도저히 말을 못 하겠으면 네 방에 휴대폰 들고 들어가서 카톡으로 쓸래?

그러겠단다.

유이는 자기 방으로 휴대폰을 들고 들어갔다.

나는 안방에서 유이의 그 나쁜 말을 추리하며 기다린다.

단번에 말해주지 않았다.

이 이야기가 아홉 살 유이에게는 이렇게도 힘든 이야기인가 보다.



"미쳤어"

이거였다.

이 말이 카톡창에 깜박깜박한다.

너를 무겁게 짓눌렀던 그 말.

너를 엄청 울게 했던 네 입에서 나와버린 그 말.


친구 셋이랑 떡볶이를 먹다가 무심결에 나온 미쳤다는 말이 이 아이를 이렇게 괴롭힌 것이었다. 혹시 성관련 이야기나 내가 상상하던 수준 이상의 이야기이면 어떡하나 하는 우려는 풀썩 꺾였다. 심지어 속으로 피식 웃음이 났다. 그래 이거였어? 엄마의 안도.

그래 이 정도면 교양있고 부드러운 엄마로 사건을  마무리 지을 수 있겠다.


이야기 인즉은 이랬다.

유튜브 댓글로 본 미친, 미쳤어. 미쳤다... 그 언저리의 말들이 그 상황에서 자기도 모르게 나왔고 채 다 뱉지도 못한 그 말이 "나오지 말아야 되는 말이라는 것"을 유이도 알아차렸다고 했다. 떡볶이 먹던 두 친구는 일제히 유이를 쳐다봤고. 반쯤 나간 말을 급하게 주워 담으며 친구들한테 나쁜 말 써서 미안하다고 나도 모르게 이 말이 나왔다고 사과를 했단다.

몹시 걱정이 되어 집에 와서 카톡으로 다시 한번 사과를 했고 다행히 두 친구도 흔쾌히 사과를 받아주었단다.






어제 떡볶이 집에서 친구가 무섭다는 이야기는

오늘 저녁밥 먹기 전 나쁜 말 이야기와 연결되어 있었다.


다음날부터 친구 하나가 자기가 하자는 대로 하지 않으면 유이의 나쁜 말을 선생님한테 이른다고 했단다. 유이는 자신의 나쁜 말 때문에 친구가 하자는 대로 해야 했고 이 전에 같이 잘 먹던 떡볶이도 그때부터 싫어졌다고 했다. 예전에 품새 연습이 있어 먼저 가겠다고 했던 자연스러운 말이 그때부터는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자신의 의견에 따라주지 않거나 유이가 따로 시간을 보낼 거라 이야기하면 어김없이 나쁜 말 쓴 걸 이르겠다고 했단다. 그때부터 선생님한테 불려 가고 엄마한테 혼나고 경찰서에 가고 사형(^^)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유이를 내리눌렀다.  유이의 지옥이 시작되었다.


그 일이 있은 후부터 얼마나 시간이 지났냐고 했더니 한 2주쯤 되었다고 했다.

엄마 아빠의 안전한 그늘막에서 세상 속으로 한 발씩 뗀 유이는 일생일대의 난코스를 경험한 것이다.

가시밭에서 넘어지고 진흙탕에도 빠졌던 것이다. 아홉 살 인생 최대의 지옥을 맛본 것이다.

유이의 자기 고백이 내게 오기까지 꽤 긴 시간이 걸렸고 유이 나름의 진통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나는 사십몇년을 살았다.

어느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닳아빠진 구석이 있을 나이. 그래서 그런지 피식 웃음이 나오고 귀엽다는 생각이 들지만 세상의 쓴맛을 보지 못한 아홉 살 유이의 세계에서는 엄청난 거대 사건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힘들었겠구나. 그러면서 크는 거겠지만 너의 세상 전부가 그 사건으로 뒤덮일 적에 너는 참 많이 두려웠기도 했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더욱이 엄마 마음이 몰입되어 들어간다. 백배 천배 엄청나게 아플 일들이 기다릴지도 모르는데...

앞으로 부딪혀야 할 많고 많은 비상식적인 일들, 억울한 일들, 관계에서 오는 뼈아픈 갈등, 그때마다 허우적거릴 많고 많은 시간들이 눈에 빤하게 보인다.

그때마다 너를 얼래고 달랠 내가 없을 때도 있을 텐데...

그때 너는 어떻게 너의 지옥을 스스로 걸어 나올까...

갑자기 위장까지 휘도는 찌르는 아픔 같은 것이 느껴진다.

인생의 시시포스의 바위는 누구나 들어 올려야 하는 것이니까.

어느 누구도 그 바위를 던지고 가뿐하게 두 발로 인생을 걷는 이는 없는 걸 아니까.


더더군다나 나는 너의 엄마니까...


꽃길만 걸으라.... 하고 싶은 게 모든 부모의 마음이지만

그 말만큼 현실에 어긋나는 말도 없다.


여하튼 그 첫걸음 내디딘 유이가 대견하기도 하고 짠하기도 하다.

오열을 하던 유이, 겁에 질린 눈, 엄마를 의지하는 일말의 희망 그 모든 것이 이틀 동안 엄마의 몸속 마음속으로 들어왔다. 나는 내 마음을 추스르느라 읽어낸 많은 책과 마음 다스림의 순간을 아홉 살 아이의 말로 번역해 내기 시작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말과 마음으로 딸을 기다렸고 다독였다. 그리고 앞으로도 힘든 일은 더 늘어날 테지만 그때마다 지금처럼 겁을 먹지 않아도 될 거라는 이야기도 해 주었다.

네 뒤에는 그 어떤 이유를 막론하고 너를 묵묵히 지지할, 지켜낼 엄마 아빠가 있다는 확신을 주기 위해 최선을 다 했다.


유이는 꽤 안정을 찾았고

다음날도 또 그다음 날도 그 친구와 별 탈 없이 잘 지냈다고 했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홈스쿨링 이야기가 나오지 않고 있는걸 보면...


나도 크고 너도 크고 있구나.

이 모든 상황이 오열할 만큼의 수위가 아닌 걸 알아버린 내 그 많던 경험이 나를 키웠고

너의 아홉 살 세상을 향하는 불편하고 어색했던 이번 사건이 너를 키웠을 거다.

그렇게 우리는 딸과 엄마로 또 크고 있고...






그날 저녁 딸아이가 자는 방으로 건너갔다.

유이는 안 골던 코까지 골며 최고로 편안한 얼굴을 하고 잠으로 잠으로 빠졌다.


잘 자! 유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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