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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텔라 Aug 16. 2023

오늘은 돌생각이 났다

일간 오은아

아침, 밤으로 선선한 바람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도드라지는 뱃살을 한참 쥐고 내려다보며 어제저녁 얕은 결심을 했지.

오늘 아침엔 좀 일찍 일어나 달이 데리고 산책 겸 조깅을 다시 시작해 볼까... 하구.

어김없이 잠에 지고 말았지만 이제 강박적으로 자책하지 않고 내일 하자 다독이며 기다려 줘보려고도 한다.

(너무 다그쳤더니 죄책감이 한 보따리다. 이런 식으로는 나를 사랑할 수 없어! )


아이들 깨워 밥 먹이고 작은 일과라도 부여하고 오는 바람직한( 뭐가 바람직한 거지? 쓰면서도 반발이 들지만) 엄마는 아닌지라 두 녀석 자는 걸 두고 일단 내 몸채비를 하고 수요일 독서모임으로 향한다. 모임 하나 있는 날은 그래도 아침에 발걸음이 가볍다. 오후 책방을 지키면서는 내 자유시간이니까.

자유시간을 맞기 코앞까지는 고꾸라질 듯 고개를 넘어야 하지만!

(마치고 가면 슬슬~ 일어나 휴대폰을 하고 있는 아이들 동작을 2배속으로 만든다. 갈비탕 깍두기에 아점을 먹이고 집 정리 겸 애들 학원을 보내놓고 오후 책방에 나와 아르바이트생이랑 교대를 하면 숨을 좀 쉴 수 있다.

빨리 방학이여 끝나다오~)

애가 아프건 내가 아프건 집에 목숨 걸고 해결해야 할 일이 아닌 이상 7년간 일 삼고 공부 삼고 수련으로 여기고 해 오는 일이다.




오늘은 파우스트 2권 3막 끝~ 4막 초반부를 읽고 만난다.

파우스트는 그토록 원하던 열망에의 그녀, 헬레나를 만났고 둘은 사랑했고 자식이 태어났고 지지리도 말 안 듣던 에우리포리온은 죽었다. 헬레나와도 이별이고 말이다. 비극의 연속이다.

그건 그렇고.



매 모임에 갈 때 내 마음은 어떤가?

루틴으로 정착하여 몸이 알아 가는가?

절대 그렇지 않다.


매 모임을 시작하기에 앞서 아직도 나는 상당한 부담감을 갖고 있다.

두 시간 안에 가능한 쓸모 있는 이야기들이 주고받아지면 좋겠다. 혼자서는 못 찾던걸 찾는 일이 일어나면 좋겠다. 생각 못해 보던 걸 생각하는(?) 생각되는(?) 지점들이 생기면 좋겠고 모임 중 의미있는 내용이 한 두 대목에라도 발견되어지면 좋겠다. 뭐 이 언저리의 생각이 부담이라는 주머니에 들어앉아 있다고 하면 얼추 설명이 되려나...


아침에 샘들 마다 소중한 오전 시간을 들이고 에너지 들여 오시는 걸 텐데 아침에 나올까 말까 망설였다 치더라도 '여기 앉아있길 잘했네' 하는 생각이 아주 조금이라도 들면 좋겠다. 하는 것이 책방지기, 모임 운영자, 나아가 자영업자인 나의 욕심이자  바람이자 희망이겠다.


늘 그렇게 시작된다. 부담을 한가득 안고!

말을 매끄럽게 이어내지 못하면 자책도 하고

발제 전체의 내용이 가벼우면 깊은 한 대목을 던질 수 있는 능력이 내게 있으면 좋겠고

드러나지 않지만 끊임없 움직임으로(백조 물갈퀴 짓) 적절 포지션에서 역할을 잘 해야 한다는 강박!


마치고는?

마치고도 그런 뉘앙스의 패턴이 있지!

의도하지 않았지만 마음에서부터 훅~ 올라오는 질문이 항상 있다. 항상!


"오늘 어땠어?"


내 배경자아가 내 경험자아에게 내 기억자아를 불러일으키는 순간!

의도하지 않았지만 저절로 불러내어지는 질문이자 응답이 제단에 올려지는 의식 같은 그것!


오늘은 좋았어! 오늘은 나빴어! 오늘은 별로였어! 오늘 모임 너무 재미있었는데?! 대답이 아니다.


중간에 끊기거나 자발적 토론이 자유롭게 오가지 못한 날에도 나는 느끼는 것과 배우는 것이 있다. 

누가 봐도 화기 애애하고 웃음소리가 넘쳤지만 옆구리 한쪽이 허한 채 모임을 마칠 때도 있고 말이다.


오늘은 그랬다.

허무 속에서 헤엄치다 결국 물속에서 발 한짝도 나오지 못한 채 모임이 끝나버린 느낌이랄까...

내내 읽어제낀(?) 숱한 책들은 어디로 사라졌나?가볍게 두 발을 냉큼 꺼내지 못한 채 털석 그곳에 앉아버렸다. 그간의 노력을 허무의 물거품에 빼앗기고 물끄러미 속수무책 그걸 바라보고만 있었달까...


쉽사리 찾아지지 않는 답 앞에서도 여유롭게 견딜 것!  

조바심 나서 못 견디겠으면 여유로운 척이라도 할 것!


불안의 안개에서도 저너머의 해를 상상할 것!

이데아 같은 건 안 믿지만 내 속에 긍정을 심자는 말임!


아니면 내 속에서 아예 태양을 만들어 버릴 것! 

꼴에 또 누가 만들어준 태양은 싫은 거지! 청소년기에 20대에 자립심이 이 정도 있었으면 뭐라도 됐을 텐데...!


태양이 버거우면 촛불 하나를 켜둘 것!

 합리화가 될 수도 있겠으나 포기는 말자는 뭐 그런 말임!


고통을 꺼버린 채 자유를 갈망하지 않을 것!

세상엔 공짜가 없음. 자유의지를 주신 하나님의 계획을 이해하고자 노력하는 일환임!


나의 지향을 쉽게 뭉개버릴 사건에 매몰되지 않을 것!

그릇을 키워보고 싶다는 말이 되겠지. 매 사건에 걸려 넘어지는 사람 아닌, 그 상황을 묵묵히 시간과 공간으로 공존시키고 기어코 다음 세계로 건너가는 이 되고자 하는 것이 나의 지향



평소 이런 류의 마음을 장착하는 편인데 (다시 말하지만 장착된 채 사는 게 아니라 잃어버리면 주워오고 허리춤에서 풀려나간 장착물들을 다시 매듭짓는 행위의 연속을 지향 안에 방황처럼 넣고 산다는 말이다)


오늘 왜인지 모임 2시간 내내 나는 모든 장착물들이 풀어지고 해체되어 날아가버린 느낌이 들었다. 벽에다 소리치듯 하다! 소리는 부서져 소리 없게 된다. 없는 소리가 내게 다시 소리가 되어 돌아오는 허함 같은 것!

그런 것들이 몸을 떨게 했다.


(살면서 마음에의 적확한 설명이 제대로 표현된 채 살기는 할까 의심이 들 정도로 설명이 엉성하기는 하다만) 굳이 나열하자면 이런 느낌?


다양성을 어디까지 인정해야 할지 혼란스러울 때가 많다. 내 생각은 다르다! 고 하면 혹여나 상처받을까 배려차원에서 소리를 삼키는 것이 잘하는 건가 혼란스러울 때도 있고. 매번 만족감이 들 수 없지만 그래도 평타를 많이 치는 모임시간인데 오늘은 2시간의 무게를 달면 꽤 나가지 않을까? 누구 때문도 아니고 파우스트가 그렇게 만든 것도 아니고 사람 사는 것에 대한, 인간 군상의 큰 굴레 앞에서 나는 오늘, 머리를 돌리고 말을 돌려봐도 딱 근사치에 가 있는 단어가 하나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시지프의 바위.






오늘이 이렇게 간다.



펜터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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