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경상도 여자다. 크면서 멸치국물에 낸 떡국은 설마다 먹고 컸어도 고기 국물에 어른 주먹만 한 김치만두가 큼지막하게 내려앉은 떡국은 시집가서 처음 접해 보았다. 서울남자한테 시집간다고 좋아라 하고 처음 맞은 설은 춥고 또 춥고 추웠다. 엄니는 하루 종일 안팎으로 종종 거리며 끝도 없는 일을 하고 있었다. 아직 한참 멀은 갓 신참이 된 새댁은 엄니 뒤만 쫓아다니며 쩔쩔매고 있었다. 집안에 냄새 밴다고 엄동설한 추운 밖에서 온종일 김치를 잘게 다지시는데 나는 영문도 모르고 그 옆에서 덜덜 떨면서 속으로 울고 있었다. 산더미처럼 쌓아 올린 김치만큼이나 시뻘겋게 얼어 터진 엄니 손을 뒤로 하고도 아직도 끝나지 않은 일들이 꾸역꾸역 나오는 데 나는 그저 도망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며칠에 걸쳐 돼지고기, 소고기, 김치, 두부, 숙주나물 등 온갖 양념으로 고운 자태 빛내는 속을 가지고 장정 팔뚝처럼 평생에 일로 다져진 엄니의 손놀림에 뚝딱뚝딱 만두피가 만들어져 나오면 밤을 새워가며 만두를 빚고 또 빚었다. 도대체 누가 먹는다고 이리도 많이 만두를 만드시는지......
그 해 나는 무슨 맛으로 그 만두를 먹었는지 기억도 잘 안 난다. 그만큼 나에게는 정말 곤혹스러운 경험이었다.
그 후로도 엄니께서 돌아가시기 전까지 정말 많이도 만두를 만들었다. 엄니께서 안 계신 설에 난 귀찮은 만두 해마다 쉬고 지나갔다. 올해 설이 지나고 바로 다가온 큰 딸아이 생일날 나는 뭐가 먹고 싶냐고 큰 애에게 물었다. 선물 대신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어 줄 요량이었는데 아이의 입에서 뜻밖에도 김치만두라는 단어가 나왔다. 외국에서 거의 다 큰 아이라 한국 음식을 그리 좋아하지 않을 것으로 알았는데 어미가 되어 자식 속도 모르는 것이다. 아이는 자신의 최애 음식이 김치만두란다. 가끔 한국 방문 시 할머니께서 해 주시던 그 만두가 너무 먹고 싶다 한다. 참 기가 막힌 순간이었다. 그러고 보니 우리 가족 모두 만두에 대한 추억이 하나씩 있었다. 이야기보따리 속 추억이 하나씩 나오고 네 명이 머리 맞대고 만두를 빚어 나누어 먹었다. 남편에게는 어린 시절 장독 대위에 밤새 살얼음이 내려앉은 추억의 음식이요 두 아이에게는 할머니께서 해 주시던 명절 축제의 성찬이며 나에겐 엄니 긴 인고의 세월이 담긴 선물로 짧았던 시집살이 눈물로 담아낸 사랑의 결과물이다. 나는 아마도 먼 이국에서 떠나온 고국과 이미 인연이 끊어져 먼저 가신 이를 기억하며 죽는 날까지 김치만두를 만들어 먹을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만나게 될 후손들에게도 옛이야기 정겹게 전해주리라 믿는다. 오늘도 난 쫀득쫀득한 껍질 체 입안 한가득 밀려들어오는 엄니 김치만두의 향연을 그리워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