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밀한 폭력

by 유진

3월, 한 명씩 만나 기초 상담을 하던 중이었다. 서로를 잘 모르는 선생과 학생 둘이 마주 보고 앉아있자니 영 어색하고 뻘쭘해서 일단 뭐라도 말을 꺼내고 보자 싶은 심산이었다. 사실 눈에도 잘 띄지 않는 작은 상처 딱지였다.


“으이그, 팔은 또 어디서 이랬대?”

“아 이거요. 지난주에 엄마가 화나서 물건을 좀 던지셔서. 피하다가 긁혔어요.”

별 거 아니라는 듯, ‘어제 방과 후에 애들이랑 피시방 가서 라면 먹었어요, 그 담엔 코노갔구요.’하듯, 너무 일상적인 말투로 툭.


“엥? 무슨 일이었길래? 이번이 처음이야?”

준비할 새도 없이 훅 들어와 버린 고백에 짐짓 안 놀란 척, 별 일 아닌 척, 되게 특별한 얘긴 아니라는 척, 나도 똑같이 일상적으로 물었다.


“음.. 잠시만요.”

휴대폰을 꺼내 하나하나 설명하는 아이의 모습에서 나의 ‘척’은 금방 실패했다. 멍든 광대, 손톱자국이 난 팔뚝, ‘엄마 지금 또 빡치심’으로 시작하는 친구들과의 카톡 캡처, 담임 선생님께 병원 들렸다 학교 간다고 했던 날의 문자 기록.


“이거는 중2 체육대회 전 날인데, 다음 날 보니까 광대가 초록색이라서 블러셔 엄청 진하게 했잖아요. 반 애들끼리 이렇게 분장 맞췄던 날이라 다행이죠. 티 별로 안나죠?”

진짜 괜찮은 건지 괜찮은 척을 하는 건지, 이게 문제가 되는 일일 줄 전혀 모르는 건지 모른 척을 하는 건지, 나로선 알아차리기 힘든 표정과 말투였다.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로 이어지는 근 5년간의 일을 차분하게 이야기하는 아이와 마주 보고 앉아 있다가, 그럼 안 되는데 울컥 눈물이 났다.


“힘들었겠다. 맘고생 많았겠네.”

“아.. 근데 이거 가끔이고, 이럴 때 아니면 엄마 되게 좋아요. 저 머리도 엄마가 밤마다 말려줘요. 진짜예요.”



그날 밤은 잠이 안 왔다. 휴대폰 사진첩에 따로 폴더를 만들어 엄마의 분노를, 그 기록을 차곡차곡 저장해두는 마음은 어떤 걸까. 만난 지 겨우 2주 된 담임한테 사진까지 시간 순으로 보여주며 이야기를 하는 마음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아이는 알리고 싶었던 것 같았다. 나와 무릎을 대고 앉을 때부터 이 이야기를 하고 가겠다고 작정한 게 아닐까 싶었다. 엄마가 자길 사랑한다는 증거를 이것저것 들었지만, 귀엽고 감동적인 에피소드도 더러 있었지만, 그 사이에 한 번도 괜찮다고는 안 했으니까.



“나 아무래도 신고해야 할 것 같아. 내가 법적으로 신고 의무자 라서가 아니라, 네가 그걸 원하는 것 같아서. 맞아?”

잠시 머뭇거렸지만 아니라고는 하지 않는 아이에게 다시 확인했다.

“나도 어제 고민 많이 했는데, 조금 멍든 거, 가끔 맞는 거. 그게 정말 아무렇지 않았음 너 나한테 말 안 했을 거 같아. 사진까지 모아뒀을 땐 이 상황 해결하고픈 마음이 너한테 있는 거라고 판단했어. 그런데 어떤 이유에서든 그거 너 혼자선 못하고 있었던 걸 테니까. 이 때야, 어른 손 한 번 빌려봐.”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나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처럼 드라마틱한 변화는 당연히 없었다. 그래도 아이가 멍들어 학교에 오는 일도 없었다. 신고하면서 강조했던 보호자의 심리상담은 역시 진행이 순탄치 않았지만, 그래도 엄마가 상담을 받고 온 날이면 집안의 공기가 조금 달랐다고 했다. 미안하다고 엄마가 다 잘못했다고 엉엉 울며 반성하지는 않았지만, 그런 날이면 엄마는 자는 아이의 머리를 조금 더 깊이 쓸어주었다고 했다.



친밀한 사이의 폭력이란 그런 것이다. 하루는 물건을 던지다가 그다음 날은 무릎을 꿇고 우는 것. 하루는 네가 다 문제라고 저주의 말을 퍼붓다가 그다음 날에는 꽃을 들고 와 네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말하는 것. 당하는 여린 몸과 마음은 여전히 쓰리지만, 그 다음날 보여준 눈빛과 칭찬이 너무 달아서 전날의 쓴 상처쯤은 금세 잊게 되는 것. 마음의 멍이 빠지는 시간보다 더 빨리 돌아오는 상대방의 분노를, 언제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를 그 상황을 알아채기 위해 촉수를 늘 곤두세워야 하는 삶을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지 고민으로 머리가 터질 것 같은 시간들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고작, 아이가 스스로를 보호할 힘을 기를 때까지 최소한의 보호막을 쳐주는 것뿐인데, 아이 스스로의 성장에 기댈 수밖에 없는 어른이란 얼마나 무용한가, 얼마나 힘이 없나, 자책하게 되는 나날들이었다.



그 날 이후 그 해에 한 번을 더, 나는 아이와 첩보 작전 같은 신고를 해야 했다. 그러는 사이 아이는 무럭무럭 열여덟을 향해 자라 갔고, 점점 엄마와 자신을 분리하는 방법도 배워 갔다. 엄마가 절대 안 된다던 앞머리를 훅 잘라보기도 하고, 통금시간을 늦추는 협상을 벌벌 떨면서도 노련히 성공시켜 돌아오기도 했다. 내가 보탠 건 무용한 안부와 응원뿐이었다.



코로나가 학교마저도 잠식해버린 올 해에는, 문득 그 아이가 떠오르는 시간이 잦아진다. 둘만 있는 10개월을 아이는 잘 버텼을까. 자신을 잘 지키며 지내왔을까.


할 수 있는 게 없을 땐 뜬금없이 카톡을 보내 안부라도 물어본다. “00아~~~ 요즘 사는 건 좀 어때~~?"

괜찮아요, 라는 모호한 긍정보다 조잘조잘 삶의 재미난 순간들을 풀어놔주길 바라면서. 진짜 괜찮음은 그렇게 늘어놓는 일상들 속에 있을 것이므로.


(2020.10.07.)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성적 통지표에 응답하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