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아줘요

by 유진


뜬금없이 고백하자면, 나는 포옹을 좋아한다. 언제부터였나 잘 모르겠지만 여하튼 나는 꼭 안고 가만 서있는 게 늘 따뜻하고 좋았다. 좋아하는 건 많이 많이 해야 더 좋은 건데, 그러기엔 나에게는 치명적인 함정이 있다.


나는 쑥스러움이 많다.


처음 보는 사람과 일대일로 만나면 쑥스러움에 몸을 가눌 줄 모르다가, 조용한 그 순간을 또 참지 못하고 아무말대잔치를 벌이고서는 후회를 왕창 하면서 헤어지는 사람이 바로 나다. 그래, 그건 뭐 다들 그런 거니까. 소개팅에서 날씨 얘기, 그 전 날 뉴스 얘기만 왕창 하다 기가 있는 대로 빠져서 헤어져 본 경험은 다들 한 번씩은 있는 거니까 그럴 수 있다 치고. 문제는 나는 무지 좋아하는 사람에게도 쑥스러움을 탄다는 거다. 내가 좋아하고 그래서 더 가까워지고픈 사람들일수록 먼저 살갑게 다가가 팔짱을 끼고 손을 붙들고 하는 애정표현이 쉽지가 않은 게 나의 오랜 고민이었다. 좋아하는 사람들 앞에서 일수록 듬직하고 어른스러워야 할 것 같은, 섣부르기보단 진중한 사람으로 보이고픈 나 홀로의 부담감이 나를 중력처럼 끌어당겨 자꾸 가라앉게 만든다. 아니, 나는 나의 발랄함과 귀여움을 왜 발산하지 못하는 것이지?!라고 스스로 자괴감을 느낄 때면, 무뚝뚝한 한국 사회에서 장녀로 살아온 사람의 숙명 같은 건가 봐- 생각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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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내가 그나마 부끄럼 없이 포옹의 욕구를 발산하게 되는 곳이 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교실이다. 가장 어른스럽게 서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곳에서 나는 가장 가벼워진다. 사실 나의 안기가 자연스러워진 것은 연습의 덕이 크다.


담임이 된 첫 해, 우리 반에는 포옹 귀신이 있었다. 학교 밖에서도 나만 보이면 50미터 밖에서도 유~~~진~~~쌤~~~ 하고 소리치며 달려와 폭 안기던 아이가. 그 아이가 유독 포옹을 좋아하는 것일까, 아니면 내가 포옹을 유발하는 재주를 가진 것일까 잠시 고민하게 만들 만큼 그 아이의 포옹은 잦고 찐-했다. 내심 (엄청) 기쁘면서도 정작 다가오면 어쩔 줄을 몰랐던 나는 한껏 얼굴을 뒤로 빼고 손가락 끝으로 톡톡 포옹을 받아들이곤 했다. 안 어색한 척 하기엔 나의 낯섦이 그대로 드러났는지 아이들은 내 반응을 무지 재밌어했고, 자꾸 배틀처럼 우다다다 나만 보면 달려와 안겨댔다. 결국 서로 찐빵이 된 얼굴로 부둥부둥 안고 있는 사진만 한아름이 될 만큼 우리 반 모두는 서로에게 몸을 내던지는 포옹에 익숙해지게 됐다. 폭 안기기엔 조금 징그러워진 남학생들은 달려와 내 옆에 착 붙어 어깨를 맞대고 걷는 것으로 진한 포옹을 대체했다. 우리는 그렇게 자꾸 서로에게 안기고 어디에든 엉겨 붙어가면서 참 행복한 한 해를 보냈다.


스킨십이 참 신기한 것이, 그냥 그렇게 장난처럼 나눈 온기가 어느새 정말 정이 된다. 그리고 이게 뭐라고 또 하다 보니 익숙해져, 나처럼 부끄럼이 한가득인 사람도 필요한 때 와락 안아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기도 한다는 것 또한 참 신기한 일이다. 올 초 벼락같았던 제자의 장례식에서 나는 하나도 친하지 않은 그 애의 형을 보자마자 그냥 안았다. 한쪽 팔에 흰 띠를 두르고 세상 다 큰 어른처럼 가만히 서 있던 스물둘의 그 애와 부둥켜안으며 그 어떤 말로도 절대 할 수 없을 위로를 주고받았다. 재수를 한다고 반년 간 연락이 없던 아이는 6월 모의고사 날 아침에 조용히 찾아와 가만 안겨 펑펑 울다 시험을 치러 갔다. 그리고 성적표를 받으러 다시 학교에 온 날은 해사하게 웃으며 한 바탕 안겨있다 갔다. 별 거 아닌데 또 사건이기도 한 것. 아무 이유 없이 시작했는데 또 모든 의미를 담을 수 있는 그런 것. 말없이 주고받는 포옹이란 것이 얼마나 따수운 것인지 새삼 깨닫고 있다.


그러니까 이제 학교 밖에서도 연습을 해봐야지 다짐한다. 사실 엄청 좋아하지만 괜히 애교를 부리긴 쑥스러웠던 엄마와 아빠에게도, 만나기만 하면 투닥대고 말다툼을 하지만 10년째 참 소중한 친구에게도, 앞에서 티 내고 좋다고 말한 적은 없지만 사실 무지무지 의지하고 있는 든든한 동료에게도, 가만 다가가 팔을 걸고 살을 대고 포옹을 하고 이런 용기를 내 보아야겠다. 실은 내가 엄청 좋아하고 있다고, 의지하고 있다고, 앞으로도 함께 있어달라고 그런 이야기들을 부끄러워 말고 전하는 내가 되어야겠다. 쑥스럼 많은 포옹 애호가가 내미는 손에 다들 곁 한 켠만 내어주시기를 바라본다. 안아줘요!


(2019.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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