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차 직장인

이제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는가.

by 세지

입사 한지 어느덧 8년에 접어들었다. 그 사이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그중 변하지 않은 것은 아직도 난 매일 아침 같은 시각 어제 지났던 그 골목을 또 한 번 지나 출근이란 걸 한다는 것이다. 특별한 문제없이 무난하게 회사 생활을 했는데, 꾹꾹 눌러왔던 게 7년이 지나 이제야 터지는 듯하다. 오춘기인가?


KBS 라디오 조우종의 FM 대행진 매주 금요일 코너의 시작은 이렇다.


"세상에서 제일 듣기 싫은 말?"

"헤어져!" "아니죠~"

"먹지 마!" "아니죠~"

"울지 마!""아니죠~"


"일어나! 회사 가야지!"


정말 100% 공감 가는 말. 나야 뭐 혼자 알람으로 일어나지만 알람이나 엄마의 외침이나 뭐가 다른 게 있을까? 그냥 빨리 회사라는 전장으로 나가라는 뜻인걸.


이 스트레스가 작년 말부터 스멀스멀 올라오더니 어느덧 5개월이 지나 이제는 그냥 같은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 괴롭게 되어 버렸다. 동시에 나는 뭘 해야 할까, 뭐 먹고살지? 돈은 어떻게 벌지? 이러한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몰아치면서 생각지 않았던 퇴사를 결심해 버렸다. 사실 모든 직장인들의 마음속에는 '퇴사 통보' 시뮬레이션 하나 정도는 갖고 살지 않는가? 예전에는 그냥 무작정, 나 그만둘 거야!라고 술 먹으며 친구 앞에서 소리쳤다지만, 이번엔 달랐다. 치밀한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몸 담았던 업계의 다른 직장을 찾아 계속해서 다닐 것인가? 다른 일을 시작할 것인가?


남들과는 조금 다르게 나에게는 그래도 몇 가지의 초이스가 있었다. 가족 사업이 있으니 그 일을 함께 해도 되었지만 우선 그건 제외! 가족과 일을 한다는 건 쉬운 것이 아니란 걸 이미 너무 느끼고 있으니 pass. 그럼 친구와 동업해서 평소에 즐기던 와인바를 차려 보는 건 어떨까? 네이버 부동산에 들어가 슬쩍 옆 동네 상가 자리의 월세와 권리금을 보고는 깔끔하게 pass. 그럼 난 어디로 가야 하지?


무턱대고 직장을 그만 두면 안 되었다. 집값, 관리비도 내야 하고, 매달 붓고 있는 예금, 적금도 있고, 여기가 평생직장이라고 생각할 때 들었던 IRP 퇴직연금도 꾸준히 납입해야 하고, 차 기름값도 필요한데.. 내 밥값은 누가 줘?

업종을 바꾸고 싶었다. 직종에는 변함없이 마케팅을 하더라도 지금의 안정적인 직장을 버리면서까지 최우선으로 생각한 조건은 이 industry를 나가는 것. 그렇게 결심하고 알아보고 서류 넣고 헤드헌터를 통해 발버둥을 쳤지만 단 한 건의 면접을 득할 수 있었다. 이쯤 되면 내가 문제인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 처음으로 해본 비대면 면접은 폭망 했다. 인터뷰 자체가 굉장히 인텐스 한 분위기에서 진행되었고 질문도 챌린징 했다. 1시간 동안 진땀을 흘리며 겨우겨우 답변을 해냈으니 결과야 뻔했다. 그 후 몇 주간 꾸준히 헤드헌터를 통해 연락을 받았지만, 모두가 다 업계 내에서의 이동이었고 같은 일을 반복하기에는 이직할 명목이 충분치 않았다. 벌써 이런 상태로 회사를 다닌지도 몇 달이 지나고 그 사이 한 해의 가장 바쁜 시기를 해치우고 나니 약간 해이해지는 것 같았다.


'이직 열정에 불이 붙었을 때 타이밍이 맞아야 하겠지만 이러다가는 정말 또 여기 눌러앉게 되는 건 아닐까?'


고민하던 때 결국 업계의 한 곳을 지원했고 서류는 통과가 되었다. 8년을 안주하며 살다 본 첫 번의 면접을 망치고 나니 자존감이 한창 바닥을 치던 때라 면접을 보게 된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그렇지, 경험이지 모.'


면접 날을 기다리는 사이 또 한건의 이직 제안을 받았다. 지인이 다니는 회사에 자리가 났다는 것이다. 업계에서 조금 벗어난 곳이면서 규모가 나쁘지 않았고 우선 서류라도 넣어보자 라는 마음이었다.


그렇게 두 건의 면접이 잡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