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 일기

꼭 하세요, 혼자 살기

by 세지

독립은 참 어려운 일이다.

특히나 본가가 서울인 미혼의 30대 여성이 별 다른 명분 없이 부모에게 독립을 말한다면, 결단코 쉽지 않을 것이다. 결혼한 친구들은 하나같이 부러워하는 그 '독립'이라는 것을 내가 해내고야 말았다!


때는 지금으로부터 약 2년 전,




2020년 6월 22일 월요일


둥근 해가 떴고 D-day다. 날이 참 더웠다. 동생을 미리 섭외해서 차에 짐을 싣고 엄마 집에서 이제 내 집으로 움직였다. 차로 20분 정도 거리라 그리 멀지도 않고 이미 신나서 아침 일찍부터 사부작사부작 준비를 마치고 이제 출발!


동생을 섭외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입주 청소를 직접 하고자 하니까
2. 짐이 몇 개 안되지만 그래도 같이 들 사람은 필요하니까

3. 그가 독립했던 당시 내가 선 도움을 주었으니까


전 세입자가 살 당시 짐이 있는 상태에서 집을 한 번 보고 계약을 바로 한 거라 빈 집을 처음 보았는데, 너무 좁을까 걱정했던 것 과는 달리 나쁘지 않았다. 지은 지 2년이 안된 시점이라 전체적으로 상태도 깨끗했다. 일단 엄마 집에서 챙겨간 온갖 청소 도구를 꺼내고 엄마라도 바닥에 앉을 수 있게 거실을 한 번 쓸고 닦고, 그 후 나는 싱크대를, 동생은 화장실을 청소하기 시작했다. 시작한 지 채 30분도 되지 않아 완전 후회를 하고 있는데 동생이 이건 안 되겠다며 포기했다. 화장실 샤워실에 전 세입자가 남기고 간 머리카락이 잔뜩- 나 같으면 두고 가고 싶지 않을 흔적을 보고는 안 되겠다 싶어 급히 부동산에 연락을 하고 당일 예약이 가능한 입주 청소 분들이 부랴부랴 도착했다. 지금 생각해도 부르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전 세입자가 나가고 바로 다음 날 들어오는 일정이라 미리 택배나 짐을 보낼 수 없었고, 부모님 집이 가까우니 하나하나 채워 나가기로 계획했다. 우선 며칠 전 주문한 매트리스가 입주 다음 날 일정에 맞게 도착했다. 처음 주문해본 롤팩 매트리스는 받고 며칠 안에 펴 놓아야 하고 또 부피가 다 원상복구 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길래, 먼저 "내 집"으로 퇴근 후 도착한 매트리스를 깨끗한 빈집에 하나 펴 놓고 "엄마 집"으로 다시 퇴근! 소소한 세간살이는 이케아에서 한 번에 쓸어오고 나니 일단 사람이 살 수 있을 정도의 최소 세팅이 되어서 들어가 살기 시작했다. 그 어느 때보다 택배를 많이 받아본 두 달이 시작되었다.


침대만 있으면 우선 살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침대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있었다. 커튼. 몇 개의 동으로 이루어진 단지는 창문의 40% 정도가 건너편 집과 맞물려 있는 구조였고 정말이지 커튼이 없이는 내가 보고 있는 TV 프로그램이 무엇인지도 보일 것 같았다. 특히나 밤에는 더욱 투명하게 잘 보이니 최우선으로 커튼이 급했다. 오늘의 집을 통해 꿈꾸던 '나비 주름 쉬폰 커튼'을 주문하기로 했다.


오늘의 집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집을 구하기 6개월 전부터, 정확하게는 독립을 결심한 순간부터 오늘의 집을 달고 살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집 인테리어가 완성될 즈음에는 VIP 등급이었으니)

온라인 집들이를 매일 같이 들여다보면서 메인에 뜨는 집들이는 안 본 게 없을 정도였고, 집을 계약한 후에는 비슷한 구조에 다른 사람들은 어떤 물건을 놓고 사나, 사이즈에 맞게 혼자 시뮬레이션도 그려보고 도면도 그려보고 침대/소파/커튼/카펫/TV장/수납장/테이블/의자/이불/수건/옷걸이/도마/젓가락 등등등 가구부터 밥숟가락까지 안 찾아본 게 없었다.

매일매일 입주 전까지 이 가구가 여기에 들어갈까, 동선을 나올까, 길이가 너무 길지는 않을까 몇 개가 필요할까 수도 없이 고민했다. 쇼핑 스타일 자체가 하나에 꽂히면 그 분야를 공부하고 최고의 선택지가 무엇일지 여러 번 생각해 선택하는, 스스로를 좀 괴롭히는 타입이라, 시간은 걸리지만 선택 후에는 후회가 잘 없는 편이다.


다시 내 나비 주름 커튼 이야기로 돌아가서, 리뷰도 좋고 가격도 reasonable 한 업체를 선정해서 주문을 넣었다. 물론 실제 오더를 넣기까지 시일이 많이 걸렸는데, 커튼을 주문하려니 가로&세로 길이를 알려줘야 하고 커튼을 닫았을 때 아무런 주름이 없길 바라지 않는 이상 자연스럽게 주름이 생기도록 벽 폭에서 길이를 더 더해줘야 하고 여러 가지로 고려할게 많았다.

사실, 길이를 스스로 재서 알려주고 오더를 넣는다는 게 부담스럽고 잘못될까 봐 동대문 커튼 업체 몇 곳에 톡을 보내봤지만 실측을 요청하기에는 집으로 누가 와야 하고 시간을 맞춰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어 나 자신을 믿어 보기로 했다. 이사 한 번 하면 그 후 웬만한 인테리어 관련은 전문가가 된다더니 정말이었다. 30년 넘게 살면서 커튼이 이렇게 힘들게 하는 것인 줄 차마 몰랐다. 방과 거실 모두 동일한 두께로 진행했고 며칠 만에 택배로 바로 도착했다. 가격이 좋은 이유 중 하나는 셀프 설치였기 때문인데, 커튼 다는 게 이렇게 어려운 일었던가.

일단 주문한 레일을 천정에 드릴로 달아야 했고 커튼 박스 한쪽에 너무 치우쳐 커튼 여닫는 게 빡빡할 수 있다는 리뷰를 봤었기에 최대한 중앙에 일자로 박아야 했다. 집에 있던 1단짜리 사다리로는 택도 없어 그 위에 책을 쌓아 올리고 그래도 안 돼서 굽이 제일 두꺼운 힐을 신고 올라선 후에야 손이 닿을 수 있었다. 여기서 내가 간과한 것이 있었다. 레일은 벽 폭만큼 길기 때문에 저 끝에서 누가 잡아줘야 일자가 되고 이쪽을 고정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맥없이 바닥을 향해 휘어 있을 뿐이었다. 내 사랑 마스킹 테이프를 사용해 반대쪽 끝을 천정에 붙이고 나서야 드릴링이 가능했다는 슬픈 1인 가구여.. 아무튼 레일을 박아 놓고 나니 옷을 땀으로 흠뻑 젖었지만 뿌듯했다. 레일에 바퀴 끼우고 커튼에 꽂혀 있는 커튼 핀을 걸어주니 드디어 프라이버시가 보장되는 집이 되었다.


그러고 보니 이제야 커튼 이야기를 마쳤네? 이후에는 소파 셀프 조립, TV 장 하자 판정, TV 반품 그리고 인터넷 설치 두 번이라는 우여곡절까지 독립으로 겪은 새로운 일들이 많이 있지만, 앞으로 틈틈이 소개해 보겠다. 그럼 독립 일기 10편 정도는 나오겠는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