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연

by 다다

“여기서 일어나는 일들은 왠지 모두 소설 같아요.”

며칠 전 공간에 함께 있던 현 님이 통창이 있는 앞문으로 와 자신이 왔음을 알리고 뒷문으로 돌아와 사료를 먹는 고양이 그루를 보고 하신 말이다. 실은 얼마 전 그루가 다리를 다쳤다. 사료를 먹기 위해 아침마다 찾아오던 그루가 어쩐지 오지 않아 걱정한 적이 있는데, 이튿날 찾아온 그루에게 사료를 주면서 보니 한쪽 앞발이 퉁퉁 부어 있었다. 자세히 보니 다리 안쪽에 선홍빛 살이 동그랗게 드러나 있었다. 골목의 터줏대감인 검은고양이가 공격하려는 것을 보고 놀라 소리친 적이 있는데 아마도 그 고양이에게서 입은 상처 같다. 한쪽 앞발을 절뚝이며 걸어 걱정을 샀던 그루는 며칠이 지나고 나니 걸음걸이도 예전과 같아지고 상처도 조금씩 작아졌다.

처음 사료를 주기 시작했던 때만 해도 허겁지겁 먹거나 사료를 입에 문 채 자동차 밑으로 숨어서 먹다가 이제는 물그릇에 물을 채워 주느라 가까이 가도 놀라거나 도망가지 않고 천천히 사료를 먹곤 했는데, 다리를 다친 뒤로는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자꾸만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피는 것이 안쓰러워 사료 그릇 위치도 옮겨 주었다. 통창으로 오게 된 일도 다치고 나서 생긴 변화다. 그동안은 내가 출근하는 시간 즈음 찾아와 뒷문에 서서 ‘야옹’ 하며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는데, 요즘에는 오는 시간이 들쑥날쑥하다. 다른 고양이를 피해 오는 게 아닐까 짐작할 뿐이다. 무언가 일이 생겨 아침에 오지 못했거나, 아침에 오고 나서 오후에 다시 올 때면 내가 앉아 작업하는 테이블 맞은편 통창으로 와 자신이 왔음을 알린 후 ‘그루야, 뒤로 와’하며 뒷문을 가리키는 내 목소리와 손짓을 보고 뒷문으로 온다.

현 님이 온 날은 아침에 사료를 먹고 나서 오후에 한 번 더 찾은 날이었다. 통창이 있는 앞쪽에서 나와 눈을 맞추고 뒷문으로 돌아오는 모습을 보고 강아지만 교감할 수 있는 줄 알았는데, 고양이도 교감이 가능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며 처음 사료를 주게 된 일도, 오늘 보게 된 상황도 꼭 소설 같다고 하셨다.

사료를 챙겨준 지 어느새 반년이 되어가고 있지만, 아직 한 번도 쓰다듬거나 만져 본 일이 없다. 길에서 살아가야 하는 고양이가 사람 손을 타 경계심이 낮아지면 생존에 어려움이 생길까 염려돼서다. 다친 뒤로 더 경계심이 많아졌음에도 내가 곁에 다가가거나 뒷문에 둔 박스를 정리하기 위해 움직여도 도망가지 않는 것을 보고 있으면 신뢰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다치기 한 달 전에는 맞은편 창고에 숨어 쳐다보는 검은고양이에게서 나를 지켜주려는 듯 내 앞을 막아서고 앉아 한참을 있기도 했다. 고양이가 자신의 약한 부분인 엉덩이를 보여주는 일은 신뢰가 없으면 어렵다고 하는데, 내가 등 뒤에 서 있어도 안심한 듯 밥을 먹고, 나를 막아서고 식빵 자세로 늠름하게 앉아 있던 그루를 생각하면 고양이와 나 사이에 쌓인 시간이 체감된다.

사료를 먹는 그루의 등을 볼 때마다 쓰다듬어 보고 싶은 마음이 불쑥불쑥 들지만, 손바닥으로 온기를 느끼고 나면 나조차 어쩌지 못하는 마음이 될까 봐 시선을 거두게 된다. 고양이를 키워 본 일이 없어서 더욱 조심스러운 부분도 있다. 앞으로 우리는 어떤 관계가 되어 갈까. 고양이보다는 강아지였던 내가 핸드폰 사진첩에 그루라는 폴더를 만들고 고양이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을 보면 무엇도 장담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나 왔어요’하고 말하는 것처럼 나를 보고 ‘야오옹’하고 우는 그루와 ‘그루, 나 내일 휴무야’하고 스케줄을 알리는 사이. 고양이와 사람의 인연을 묘연이라고 한다는데 우리는 묘연일까. 인간과 비인간 사이의 우정을 느끼고 있는 요즘이다.


(2025. 3)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글로 만난 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