헉 선생님, 스승의 날 축하 편지 취소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스승의 날 선물은 드리면 안 되는 거 알고 계시죠?^^ 선생님의 새로운 실험은 멋집니다. 수포자의 영웅이 되시는 건가요?ㅎㅎ
그런데 음... 제가 학생 1호 되는 건 좀 아닌 거 같아요. 아무리 생각해도 저는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특이한 케이스가 되기 힘든 상황이거든요. 이런 말씀 드리기 좀 부끄럽지만, 우리 엄마, 아빠도 다른 과목은 다 잘했는데 수학은 아무리 해도 안 됐다고 하셨어요. 수학 점수 때문에 원하는 대학도 못 가셨구요. 저희 형은 중학교 때까지는 수학을 잘했는데 고등학교 입학해서는 너무 어렵다고 결국 포기했어요. 수학 점수를 반영하지 않는 대학교가 많다고 하니 잘한 선택인 거 같아요. 우리 집안의 숨겨진 내력 아시겠죠?^^ 이런 상황이니 가족들이 아니다 싶으면 빨리 접고 차라리 다른 과목에 집중하라고 해요.ㅎㅎ
사실 수학 못 해도 사는 데에 지장 없고, 사회 나와서 수학 쓸 일도 전혀 없으니 수학 못해도 상관이 없지 않나요? 수학 공부하느라 스트레스받고, 수학 점수로 인해 좌절하고 자존감 구겨지고, 수학 잘하려고 돈 쓰고, 시간 쓰고... 저에게는 시간도 돈도 모든 게 다 아까워요. 제가 좋아하지도 않는, 왜 배워야 하는지 이유도 모르는 체로 학교에서 수업받는 시간도 아깝고요. 그냥 제가 좋아하는 것만, 잘 할 수 있는 것만 하며 살고 싶어요. 즐겁고 행복한 인생이요. 제가 원하는 것은 이런 삶인데...
죄송해요 선생님. 저 중2병 맞나봐요. 제가 좀 흥분했네요. 저를 생각해주셔서 학생 1호를 제안해주신 건데 저는 좀 아닌거 같아요. 죄송합니다.
중일 올림
안녕 중일아.
뭐라고 답장해야 할지 한참을 고민하다 이제야 글을 써. 선생님 제안이 부담이 된 것 같아 미안하구나. 한편으로는 수학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과 감정을 잘 표현해줘서 고마워. 중일이 말처럼 수학 못해도 충분히 잘 살 수 있고, 원하는 삶을 살 수 있어. 오히려 수학을 못하면 큰일 날 것처럼 여기는 것, 수학 점수가 낮다고 자기 삶은 가치 없다고 생각하는 것, 자신을 무능하다고 여기는 것, 이런 것들이 정말 큰 문제이지.
선생님은 수학 때문에 스스로 무능하다고 생각할 때가 몇 번 있었어. 특히 수학을 잘하는 아이들과 함께 배울 때. 혼자서 수학할 때는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만큼 시간을 충분히 들이고, 앞서 배운 내용을 다시 훑어볼 수도 있어서 그런 느낌이 없었어. 오히려 힘들어했던 내용이 이해되고, 어려운 문제가 해결되면 기뻐했던 적도 있었고. 하지만 선생님보다 수학을 잘하는 아이들과 함께 수업을 들을 때는 엄청나게 위축되었어. 특히 나는 이해를 못하고 있는데, 다른 애들은 즐거워하며 수업을 따라가고 있을 때. 선생님의 질문에 나는 도저히 모르겠는데 곧장 대답하는 학생들이 있을 때. 나는 도저히 수업을 못 따라가고 있는데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선생님의 말씀 한마디 한마디를 흡수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아이들을 보면서 좌절했었지. 나만 바보 같고, 나만 쭈구리 같고. 다른 아이들은 특별해 보이고. 다른 학생들은 다 이해하고 있는데 나만 모른다는 느낌, 나만 못 따라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수록 내가 못나게 느껴지고, 나만 바보 같아 보이고 그랬지.
지금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좌절하지 않고, 나를 좀 다독이고 위로해줄 거 같아. 지금 배우는 게 이해 안 돼도 괜찮아, 수학 점수 낮다고 너의 가치가 낮아지는 건 아니야. 여러 번 보고, 여러 번 시도하는 모습이 멋지고, 이렇게 한 걸음씩 나아가는 모습이 충분히 아름다워 이렇게^^
사실 내용을 못 따라가는 이유는 존재해. 현재 배우는 내용이 원래 어려운 내용일 수도 있어. 처음 배워서 적응이 안 될 수도 있지. 그리고 예습이나 복습하지 않아서, 연습을 충분히 하지 않아서 어렵게 느껴지는 게 당연할 수도 있어.
그 당시에 같이 공부했던 다른 아이들은 대부분 선행 학습과 심화 학습해온 아이들이었고, 깊고 오랫동안 생각하는데 훈련이 된 학생들이 많았어. 나는 처음 보는 내용이었고, 쉬운 문제에 익숙해 있었고. 그런 상황을 인식하지 못한 체 결과만 가지고 나와 그 애들은 다른 아이, 나는 못하는 아이, 수학에 소질이 없는 아이로 자신을 평가했었지. 심지어는 대학교에서 수학을 전공할 때도 비슷한 생각을 한 적이 있단다. 하지만 운이 좋게도 수학을 포기하지는 않았어. 잘하지 못했지만 따라가려고 노력했지. 다 따라갈 수는 없었지만, 많이 뒤처지지 않으려고 시도했고.
중일이도 수학을 포기하지는 않았으면 해. 수업 시간에 수학을 포기한 학생들을 보면 참 안쓰럽거든. 일주일에 4시간씩, 1년에 약 38주 동안 수학 수업을 하니 1년 중 152시간의 수학 시간은 끔찍한 시간이 될 수도 있어. 이게 1년이 아니라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계속된다면... 생각해봐. 나는 아무것도 모르겠는데 진도는 계속 나가고, 다른 친구들은 다 아는 내용인 거 같은데 나는 모르겠어. 친구들에게 잘 보이고 싶은데, 나는 수학 못하는 아이, 모르는 게 이상한 것이 없는 아이 취급받아. 그러면 어떤 심정이 들까? 시간이 지나면 안타깝게 아이의 자존감까지 낮아지는 경우도 많이 보게 돼. 이런 경우도 있어. 내용을 전혀 이해 못하니 심심하고, 가만히 있자니 힘들어서 결국 주위 친구에게 장난을 쳐. 그러다가 선생님께 혼나고, 선생님과의 관계가 틀어져서 더욱 수학을 싫어하게 되고. 음... 사실 이건 선생님의 경험담이기도 해^^
아무튼 선생님은 중일이가 수학을 못해도 좋으니 포기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선생님의 마음이 잘 전해졌길 바랄게.
동현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