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주인을 없애러 온 자객의 마음으로

히로쓰 가옥

by 배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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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것은 없다’는 진리. 외면하는 사람들도 있다. 일제 강점기 때, 조선에 와서 살던 ‘왜놈들’은 영원히 부귀영화를 누릴 거라고 믿었다. 그러니까 자기 나라에 있는 집과 똑같은 집을, 풍토가 다른 조선 땅에 지어서 살았다. 일본 제국주의 패망! 가져갈 게 너무 많은 일본인들은 집을 떠메고 갈 수 없었다. 이 땅에 적산가옥이 존재하는 이유다.



“저런 디서 똥오줌을 누는디, 얼마나 지독한 놈들이겄냐?”



어른들은 말했다. 적산가옥의 변소는 본채와 떨어져 있지 않았다. 집안에 있었다. 변소 문을 열고 들어가면, 마룻바닥에 네모난 뚜껑이 있었다. 볼 일을 보기 위해서는 그걸 들어 올려야 했다. 천 길 낭떠러지처럼 깊어보이던 변소, 오줌 떨어지는 소리는 아득하게 들렸다. 원한을 품은 처녀귀신이라 할지라도, 적산가옥 화장실에는 안 나타나리라.



히로쓰 가옥의 주인은 히로쓰, ‘착한 놈’이 아니었다. 군산 돈을 싹싹 긁어모았다. 포목상을 하고, 미두장(쌀 현물 투기장)이사를 했다. 군산을 배경으로 삼은 채만식의 소설 <탁류>에는 미두장이 나온다. 주인공 초봉이의 아버지 정주사는 충청도에서 논밭을 팔고 군산으로 왔다. 미두장에서 가산을 탕진한 뒤에는 딸 초봉이까지 팔아먹는다.



히로쓰가 ‘나쁜 놈’이라는 증거는 집안에도 있다. 일본식 정원을 지나 오른 편으로 돌아가면, 집 한 채랑 맞먹는 금고가 있다. 사람들을 착취하고 속여서, 군산과 인근의 온갖 귀한 것들을 빼앗아서 금고 속에 두었을 테지. 히로쓰에게 조선 땅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 아들딸까지 대대손손 살 집으로 설계했다. 일본에서 나무를 가져다가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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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 습한 일본의 여름. 여름만을 겨냥해서 집을 짓는다. 바닥에는 난방 시설을 하지 않고 다다미만 깐다. 아기들이 다다미에 똥오줌을 누면, 방바닥은 두엄처럼 썩어간다. 말귀 못 알아듣는 아기에게도 냉혹하게 배변훈련을 시킨다. 그러나 군산의 히로쓰 가옥에는 온돌방도 있다. 히로쓰는 뜨뜻한 방바닥에 등을 지지는 ‘조선의 온돌 맛’을 알았을 거다.



집안의 마루는 들기름 칠을 해서 반들반들하다. 걸으면 삐걱삐걱 소리가 난다. 일본에는 성주를 해치러 온 자객이 많아서 일부러 복도를 소리 나게 설계했다는데, 히로쓰도 그런 계산을 하고 지었을까. 그런 것도 같다. 우리나라와는 반대로 문살 바깥쪽으로 창호지를 붙여서 자객의 그림자를 보려고 했다. 히로쓰의 조바심이 읽힌다.


이 적산가옥은 영화 <타짜>나 <장군의 아들>에도 나왔다. 하루에도 수천 명의 여행자들이 히로쓰 가옥 안을 걸어 다녔다. 붕괴를 걱정해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지금은 정원을 거닐면서 바깥에서만 집안을 구경해야 한다. 먼 데서 왔는데 아쉬워서 어떡하지? 바로 옆집인 게스트 하우스 ‘이웃’ 테라스에 가보시라. 히로쓰 가옥을 고즈넉하게 감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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