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사진을 찍으러 군산에 온 거예요

우리나라 유일 일본식 사찰 동국사

by 배지영
1. 남상천 제공.jpg

“야, 일본 왔다고 그러자.”



동국사를 배경으로 셀카를 찍는 젊은이들은 말한다. 그럴 만하다. 동국사는 우리나라에 남은 유일한 일본식 사찰이다. 우리 문화와는 외양부터 다르다. 단청(기둥이나 서까래, 천장 등에 다섯 가지 색깔로 그림이나 무늬를 칠하는 장식. 목재가 썩는 것도 막아주므로 건축물의 수명을 늘릴 수 있음)이 없다. 흰색과 검은색만 있어서 담백해 보인다.



동국사의 지붕은 75도 급경사를 이루고 있다. 폭우가 쏟아지는 일본의 해양성 기후를 고려한 설계를 그대로 가져다 썼다. 용마루(지붕 가운데 부분의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수평 마루)도 우리나라는 곡선을 이루는데 동국사는 직선이다. 불상을 모신 대웅전과 스님의 살림집 격인 요사채도 붙어있다. 일본의 스님은 결혼을 하는 대처승이라서 그런다.



“대일본 조선 전라북도 군산부 월명산 금강선사.”



일제 강제기 때, 동국사의 이름과 주소다. 일본은 조선을 정신적으로 침략하기 위해서 약 500여 개의 사찰을 세웠다. 일본에서처럼, 대웅전 뒤에는 납골당을 만들었다. 동국사 뒤란에도 일본장병 유골 안치실이 있었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몇 년 뒤, 유골들은 화장해서 금강에 뿌려졌다. 나중에 그 사실을 안 일본인 후손들이 동국사에 찾아와서 통곡했다.



핏줄을 잃고 터진 울음은 애통하다. 절집을 지을 때, 일본에서 가져다 심은 대나무들은 그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기적도 보았다. 일제 강점기, 조선의 인구는 2,400여만 명. 약 800만 명의 조선인들이 일본의 전쟁에 동원되었다. 일본 정부는 끝내 그들이 한 ‘짓’을 참회하지 않지만 일본 불교계인 조동종은 공식으로 사죄했다. 동국사에 참사문을 보냈다.



“무엇보다 종루에서 멀지 않은 형무소 죄수들이 이 종소리로 위안을 삼는다는 얘기를 듣고 난 뒤부터는 보람이 되었다.”



시인 고은이 자서전에 쓴 글이다. 고은은 참사문비 옆에 있는 일본식 동종을 새벽마다 쳤다. 한국전쟁 때, 사촌끼리도 빨갱이나 국군으로 몰아서 죽이는 참상을 겪고 출가한 절이 동국사였다. 청소 하고, 종 치고, 밥 짓는 공양주 노릇을 열아홉 살부터 했다. 2년이나 하고서 떠났다. 그 뒤에 여러 일을 보고 겪으면서 거리의 시인, 저항 시인 고은이 되었다.



“왜정 때 일은 생각만 해도 징글징글하고 치가 떨려.”



강점기를 겪은 어르신들은 말한다. 매년 250만 섬의 쌀이 군산항에서 빠져나갔다. 동국사에는 그때의 문화유산이 3천여 점쯤 모여 있다. 전시된 군산항 3차 축항기념 쌀탑 사진 앞에서는 발걸음이 무겁다. 쌀탑은 누구의 피눈물이었겠는가. 맛있는 음식도 많고, 이국적인 풍경 앞에서 사진도 찍을 수 있는 군산. 동국사에 오거들랑 지나간 우리 역사도 담아가시라.

군산시청 제공.jpg

첫 번째 사진은 남상천 작가, 두 번째 사진은 군산시청에서 제공해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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