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 마산방죽(옥구저수지)
산 그림자 하나 없는 넓은 들에는 무명옷을 입은 장정들이 가득했다. 그들은 맨손으로 일 하거나 곡괭이 같은 농기구를 쥐고 있었다. 소년으로 보이는, 키가 작은 남자들도 보였다. 그들 사이에는 제복을 입고 부츠를 신은 일본인도 있었다. 그곳은 군산 옥구, 때는 1920년이다. 그러니까 이 이야기는 10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한일병합 후, ‘왜놈들’은 동양척식주식회사를 내세워 조선인들 땅을 빼앗았다. 조선 사람들은 죽기 살기로 싸우며 땅을 지키려고 했다. ‘불이흥업 주식회사’의 후지이 겐타로는 군산 서쪽 지역에 있는 갯벌과 섬들에 주목했다. 오늘날 새만금 간척사업의 절반가량 되는 땅을 농지로 일구는 공사와 100만 평 규모의 옥구저수지(마산방죽) 공사를 지시했다.
“영구 소작권 보장, 소작료 3년 면제, 간척 공사 임금 지급.”
‘숭악한 왜놈들’은 대대적인 선전을 했다. 일제에게 땅을 빼앗긴 수많은 사람들이 군산으로 몰려들었다. 변변한 장비도 없던 시절, 무명옷 입은 우리 조상들은 기적을 만들었다. 땅을 간척하고, 쌀농사 지을 저수지를 팠다. 3년 만에 끝냈다. 그 긴 시간 동안 기막힌 일을 수도 없이 당했다. 그러나 땅을 얻기 위해서 견디고 또 견뎌냈다.
마침내, 바다와 갯벌은 농토와 저수지가 되었다. 후지이 겐타로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일본에서 농업이민을 받아 333가구를 이주시켰다. 그들만을 위해서 기와집, 공동 목욕탕, 신사를 지었다. 일본 아이들만 다니는 학교까지 있었다. 그게 불이농촌이었다. 옥구저수지 남쪽에 사는 조선 농민들은 손바닥 만한 땅을 소작으로 얻고서 높은 이율을 냈다. 불이농촌에 가서 일을 해주며 머슴처럼 지내야 했다.
“그때는 전부 천수답 농사여. 가물믄 하늘만 쳐다보고 있어야 혀. 비가 오기만 기다리는 거제. 뭐를 해보들 못 혀.”
가뭄에 논바닥이 쩍쩍 갈라졌다. 조선 농민들 가슴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타들어갔다. 그들이 죽을힘을 다해서 판 옥구저수지에는 물이 가득했다. 그러나 물 감시소에서는 조선인이 얼씬도 못 하게 막고 있었다. 한 방울의 물도 허용하지 않았다. 새벽에 몰래 물을 빼내 쓰다 걸리면, 그 자리에서 조선인의 수차는 박살났다. 강제로 쫓겨났다.
옥구저수지, 동네 사람들은 마산방죽이라고 부른다. 배스 낚시를 하러 처음 온 외지 사람들은 하도 넓어서 바다라고 착각한다. 거대한 방죽에는 목이 긴 새들이 날아다니고, 기차가 안 다니는 철로에서는 아이들이 네 발 자전거를 타며 논다. 그러나 한 발만 더 들어가서 불이농촌과 옥구저수지의 ‘기적’을 알게 된다면, 울컥하고 만다. 한·일전 축구 경기를 볼 때 처럼, 가슴에서 짐승 한 마리씩 튀어나와 포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