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인증사진을 찍는 사이에 100년이 훌쩍 지났어요

군산세관

by 배지영
정창훤   군산세관.JPG

“다수에 따라서 시행하라.”



1898년, 대한제국의 황제 고종은 말했다. 의정부 회의 결과 군산 개항은 찬성 7표, 반대 3표가 나왔다. 항구의 문을 연 건 그 다음해 5월 1일이었다. 대한제국은 군산항으로 들고나는 외국 선박에게 관세를 부과해서 수입을 늘리려고 했다. 팍 쪼그라든 나라 재정에 도움이 될 줄 알았다. 오히려 ‘왜놈들’에게 다리를 놓아준 꼴이 되고 말았다.



개항 이후, 군산의 목 좋은 땅은 전부 일본인이 차지했다. 아늑한데다가 평지인 곳은 일본인이 살기 좋게 상하수도 시설 공사부터 했다. 조선 사람들은 산비탈인 월명동, 개복동, 창성동 등으로 밀려나서 살았다. 몇 천 년 전, 청동기 시대 거주지였던 움막과 비슷한 토막집에서 어떻게든 살아갔다. 땅을 파고서 가마니로 지붕을 만든 집이었다.



“대한제국 정부는 군산에 세관을 지어주시오!”



일본에서 물건을 실은 화물선들이 몰려들자, ‘각국 거류지회’의 일본인들이 건의했다. 대한제국은 건물을 지을 돈이 없었다. 부두 공사도 다 못한 참이었다. 군산에 와서 한 몫 단단히 챙기고는 떵떵거리던 일본 상인들은 라포트라는 프랑스 세관 책임자를 매수했다고 한다. 결국 대한제국은 엄청난 거금을 쏟아 붓는 세관 공사를 떠안았다.



“그려, 쥐도 군산쥐넌 배가 터지게 불르고 지름기도 자르르 흘른다고 허드라. 농새 못 지묵게 된 사람덜이 다급허니 찾어가는 디가 군산이고. 거그서덜 어찌어찌 묵고 살아지는갑드라.”



조정래 소설 <아리랑>에는 그 당시 사람들이 군산으로 모여드는 이유가 나온다. 군산 이주는 살기 위한 마지막 몸부림이었다. 남편들은 부두에서 등짐을 져 날랐다. 아내들은 일본인 집에서 식모살이를 했다. 그들은 고단한 하루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면서, ‘구라파’의 벽돌로 짓는 세관 벽체와 지붕끼리 맞닿는 곳에 세워진 첨탑을 보았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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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년, 군산세관은 완공되었다. 그로부터 2년 뒤에 순종은 ‘대한제국의 모든 통치권을 완전히 그리고 영원히 일본에게 넘겨준다는’ 한일병합 조약을 맺었다. 나라는 사라졌다. ‘왜놈들 세상’이 된 군산, 최적의 수탈기지로 완전하게 탈바꿈했다. 그 고통 속에서도 사람들은 삶의 희망을 놓지 않았다. 아이들을 낳고 길렀다.


세월은 흘렀다. 일제가 지배했던 흔적은 없애버려야 하는 시대가 왔다. ‘살생부’에 오른 건물은 끝장났다. 1995년 광복절, 조선총독부 건물이 철거되었다. 군산에서도 강점기에 지어졌던 옛 군산시청 건물이 사라졌다. 그러나 군산세관만은 남았다. 우리 정부의 돈으로 지어서 괜찮았을까. 건물 양식이 ‘혼합식 유럽 스타일’이라서 봐 주자고 한 걸까.



안으로 들어가면, 군산세관이 해온 일을 볼 수 있다. 시대별로 어떤 옷을 입고서, 어떤 일을 해왔는지를. ‘짝퉁’ 구별법까지 나온다. 여행자들은 군산세관이 ‘우리나라에 남은 서양고전주의 3대 건축물’이라는 것에 주목한다. 옛 서울역, 한국은행 본점과 같은 양식의 건물. 그 앞에서 인증사진을 찍는다. 그러는 사이에 100년이 훌쩍 지나간다. 당신은 대한제국, 일제 강점기, 대한민국, 이렇게 세 시대를 통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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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와 세 번째 사진은 군산시청, 두 번째 사진은 남상천 작가가 제공해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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