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봉이네 동네 (선양동)
소설 <탁류>의 주인공 초봉이는 원래 충청도 서천에서 살았다. 그녀의 아버지 정주사는 고향 땅을 팔았다. 처자식과 함께 똑딱선을 타고 군산 째보선창으로 들어왔다. 미두를 해서 가진 돈을 다 잃은 정주사. 그가 죽으려고 했던 곳도 째보선창이다. 배를 대기 좋게 갈라져 있어서 째보라고 이름 붙었다는 선창. 배와 막일꾼들이 바글바글했다.
“째보선창 간다고? 타요. 복개 돼갖고 쉽게 찾들 못 혀.”
배를 고친다는 아저씨는 오타바이 뒤에 타라고 했다. 옛날부터 대학 다니는 학생들이 째보 선창이 어디냐고 물었다면서. 이제는 째보선창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도보여행자의 천국’인 군산, ‘탁류길’이 있다. 소설가 채만식을 들어봤다면 호기심이 생길 거다. 초봉이와 그 이웃들이 살아간 말랭이(오르막길)를 걸어볼 수 있다.
출발은 근대역사박물관에서! 해망굴, 히로쓰가옥, 동국사를 거쳐서 길을 건너면 초봉이네 동네가 나온다. 다른 길도 있다. 일제 때의 조선은행을 거쳐 ‘개복동 예술인 거리’ 쪽으로 가보자. 적산가옥은 없다. 예술인들은 쇠락해가는 거리 곳곳에 벽화를 그려서 생기를 불어넣었다. 넓은 길이 없는 동네는 점점 가팔라지고, 연탄을 실은 트럭도 보인다.
“둔뱀이는 개복동보다도 더하게 언덕비탈로 제비집 같은 오막살이집들이 달라붙었고, 올라가는 좁다란 골목길은 코를 다치게 경사가 급하다.”
<탁류>에서는 둔뱀이를 이렇게 설명한다. 일제는 군산역에서 신흥동까지 쉽게 가기 위해서 길을 냈다. 산줄기를 끊었다. 사람들은 ‘산 끊어진 데’라고 불렀다. 정주사는 ‘둔뱀이 밑구멍에 굴을 뚫는다’고 생각했다. 길이 나자 창성동에서 선양동 가려면 말랭이를 내려와서 다시 올라가야 했다. 지금, 두 동네 사이에는 선양고가교가 있다.
‘채만식 <탁류> 소설비 정주사 집.’
선양고가교 중간에는 정주사가 살았다는 표지가 있다. 딸을 팔아먹은 정주사를 모르더라도 멈추게 된다. 일제 강점기 시절의 부자 동네 신흥동이 눈에 들어온다. 방향을 바꾸면 저 멀리로 수송동의 아파트 단지들이 보인다. 360도 회전되는 카메라처럼 뱅뱅 돌면, 사람들이 먹고 자고 생활하면서 꿈을 키운, 100년간의 주거형태가 다 보인다.
선양동의 뜻은 ‘먼저 해를 맞이하는 동네’. 1월 1일이면 ‘탁류길 해돋이 문화제’를 한다. 새만금에서도, 월명공원에서도 하는 해돋이. 이 산동네에도 수백 명이 찾아온다. 초봉이처럼 젊고 예쁜 청년들은 주로 밤에 온다. 쌈지공원에서 데이트를 한다. 불빛을 뿜어내는 아파트 단지든, 동네의 낮은 집이든, 그들만의 집을 갖게 되기를 바라면서.
“사람들이 묻잖아요. 군산은 어디가 좋냐고요. 저는 선양동 쌈지공원 추천해요. 거기 가면 군산이 다 보인다고 꼭 가보라고 해요.”
철길마을에서 ‘우리문방구’를 하는 청년 지웅씨는 말했다. 초봉이네가 살았던 동네, 콩나물처럼 다닥다닥 붙은 집들은 헐렸다. 그렇게 해서 생긴 빈 땅에 도로가 나고, 꽃이 피고, 공원이 생겼다. 좁고 경사진 계단은 더러 있다. 짚신이나 고무신을 신은 사람들은 눈비 올 때, 어떻게 걸어 다녔을까. 존재했다가 사라진 사람과 풍경들, 선양동에 가면 생각난다.
세 번째 군산 전경 사진은 군산시청에서 제공해 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