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룻밤 묵어가도 ‘친일파’는 아니에요

일본식 숙소 고우당과 군산 항쟁관

by 배지영
이미애   신흥동 일본식 가옥.jpg

“야, 친일파!”



학창시절, 친구들은 J를 ‘친일파’라고 불렀다. 대학 입시에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일본어를 열공하던 J. 일본 만화영화를 즐겨봤다. 좋아하는 일본 오빠(멋있으면 다 오빠임)가 나오는 드라마는 한국어 자막이 안 입혀진 상태로도 내려 받아서 봤다. “오빠가 사는 데 가봐야지”하고는 일본에도 갔다. J는 일본문화 ‘덕후’였다.



몇 년 전, 군산 월명동에 고우당(옛 친구의 집)이라는 일본식 숙소가 생겼다. 방에는 다다미가 깔려 있다. 일본 드라마 <노다메 칸타빌레>의 노다메처럼 코타츠 속에서 친구들이랑 뒹굴 거릴 수도 있으려나. J는 고우당에 숙박 예약을 했다. “군산에 놀러 와”라고 말하면, “가도 잘 데 없잖아” 라고 말하던 ‘서울 사람’ 친구도 불러들였다.


일본식 집 열 채가 있는 고우당은 따로 출입구가 없다. 구경꾼도 쭈뼛거릴 필요가 없다. 동네 아이들은 벌써부터 눈치를 챘다. 학교 끝나고는 고우당 연못에 와서 돌을 던지며 놀았다. 물고기가 죽고 물이 탁해지면서, 연못은 '둠벙'이 되었다. 어떻게 알았지? 다른 도시에서 여행 온 아이들도 연못의 징검다리를 건너가서는 꼭 돌을 던졌다.



“일본사람들이 자꾸 밀려들면서 군산은 더 분주해지고 활기에 넘치고 있었다. 인력거를 부르는 일본말이 이쪽저쪽에서 울려대고, 큰길이며 골목마다 게다짝 끌리는 소리들이 무슨 장단을 맞추듯이 이어지고, 크고 작은 집들을 지어대느라고 사방이 떠들썩한 공사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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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아리랑>에 나오는 일제 강점기 때의 군산 모습이다. 일본인들은 활기를 유지하기 위해서 조선 사람들을 짓뭉개서 깔고 앉아 있었다. 어떻게든 견디며 살아내야 했던 그 당시 사람들의 삶을 조금이라도 볼 수 있는 공간이 고우당 건너편에 있다. 백여 년 된 일본식 집을 고쳐서 만든 군산 항쟁관. 꼭 가 봐야 한다.



"우리의 영웅은 아직 죽지 않았다."



군산 항쟁관의 한 쪽 벽에는 우리가 아는 독립 운동가들의 흑백사진이 붙어있다. 평범한 미선공, 학생, 부두노동자, 소작농들의 항쟁도 보인다. 강점기 때, 군산 사람 수는 6,581명. 한 사람 당 4-5회씩 “대한독립만세” 운동에 참여했다. 항쟁관 2층에는 굳게 닫힌 철창이 있다. 열 수 없는 철창으로 고문 당하는 사람들을 본다. 모형일 뿐인데도 고통이 전해진다.



슬픔과 아픔 뒤에는 배고픔이 밀려온다. 고우당 주변에는 걸어갈 수 있는 식당이 아주 많다. 해마다 ‘군산 시간여행축제’ 기간에는 ‘왜놈 순사’ 옷을 입은 청년들이 사람들을 잡으러 다니는 장면도 볼 수 있다. 100년이 뒤섞인 월명동 거리, 고우당에서 묵어가는 밤에 생각한다. 어려울 때 나라를 지킨 사람은 누구였는지를. 백성, 바로 우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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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군산시청에서 제공해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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