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 시간여행축제
“라면 먹을래요?”
영화 <봄날은 간다>에서 은수(이영애)는 상우(유지태)에게 말했다. 그 전에 두 사람은 오래된 절의 처마 끝에서 울리는 풍경 소리를 녹음하러 갔다. 조용히 소리를 채집하는 상우의 모습이 좋았던 은수는 풋풋하면서도 근사한 이 청년과 헤어지기 싫었다. 이끌리듯 은수의 집으로 오게 된 상우. 은수는 라면 봉지를 뜯다가 상우에게 다시 물었다.
“자고 갈래요?”
군산 사람들도 은수처럼 여행자들에게 묻고 싶을 때가 있었다. 물어도 봤다. 놀러 온 여행자들은 심드렁하게 말했다. “군산은 당일치기면 볼 거 다 봐요”, “잘 데도 별로 없잖아요”라고 했다. 팥빵, 쇠고기 무국, 입이 떡 벌어지게 푸짐한 밥상, 히로쓰 가옥, 동국사, 은파, 월명공원으로는 그들을 자고 가게 할 수 없었다. 군산은 스쳐가는 여행지였다.
극적인 태세전환은 4년 전 가을부터 일어났다. 지나간 역사를 만나는 ‘군산 시간여행축제’가 열리고 부터다. 청춘남녀들과 어린 아이가 있는 가족 단위 여행자들이 찾아왔다. 숙소를 미리 예약하지 못 한 사람들은 발을 동동 굴렀다. 가게마다, 거리마다, 사람이 넘쳤다. 그들이 만든 각각의 추억은 인터넷 세상으로 옮겨갔다.
축제에서는 호남 최초로 만세운동을 했던 군산을 기억하기 위해서 ‘3·5만세 퍼레이드’를 했다. 사람이 올 수도, 안 올 수도 있는 현장접수. 700여 명의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길거리에서 웃으면서 “만세!”를 불렀다. 그때처럼 비장하게 목숨을 내걸지는 않았지만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마음은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외침, “대한독립만세!”
“‘쫓고 쫓기는 각시탈’ 체험 모집합니다.”
시간여행 축제에서 가장 ‘핫’한 프로그램이다. 숨죽인 채 했던 독립운동. 항일의 정신을 가져왔다. 구도심 곳곳마다 버티고 있는 ‘왜놈 순사’들을 무찌르고서 정해진 미션을 수행해야 한다. 그래야 태극기를 완성할 수 있다. 순사 옷을 입은 사람들은 도시 곳곳에 있는 독립군들을 찾아다닌다. 길 가던 여행자들도 순사들에 맞서서 “대한독립만세”를 막 외친다.
‘어린이 독립군 체험’도 인기가 많다. 이 나라의 미래인 어린이들은 소중하다. 일본 순사들이 해치게 할 수는 없다. 어린이 독립군들은 노란 티셔츠를 입는다. 순사들 눈을 피해서 해야 할 것은 한 가지. 정해진 장소에 몰래 잠입해서 즐겁게 놀면 된다. 일제 강점기 때나 지금이나 어린이들은 놀면서 크는 게 당연지사. 끝나면 장하다고 메달도 받는다.
축제는 사람 보는 맛도 있다. 사람 많은 곳으로 가게 마련이다. 2년 전에는 동춘 서커스 공연장에 군중들이 운집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서커스 공연단인 동춘 서커스. 사람들은 하늘에 줄 하나로 매달려 있는 서커스 단원들을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봤다. 같이 늙어가는 아내와 막내아들, 손자, 며느리와 함께 온 할아버지는 말했다.
“좋다. 친구한티 전화해서 같이 봐야 쓰겄다. 올해만 해도 ‘국민학교’ 동창 다섯이 세상을 떠났느니라. (사람은) 다 가는 것이여. 긍게 좋은 건 같이 봐야제.”
근대문화를 내세우는 군산. 애정을 가진 사람들은 말한다. 강점기 시절, 그것을 누리고 산 일본인들의 흔적만 복원하는 것을 경계하자고. 수탈 당하면서도 저항했던 백성의 삶이 없는 게 안타깝다고. 그래서 ‘군산 시간여행축제’가 있다. 우리는 함께 놀면서, 우리 역사를 되새긴다. 분노는 오래 못 가는 법, 함께 웃으면서 지난 역사를 기억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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