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을 살았는데 길을 잃었어요 ㅠㅠ

월명동의 격자형 거리와 골목길

by 배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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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는 열일곱 살 소년. 중3 겨울방학을 계획적으로 보냈다. 하루도 빼놓지 않고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잠을 잤다. 일어나서는 밥 먹고, 웹툰 보고, 온라인 게임하고. 밤중에는 부모님 심기를 고려해서 짧은 독서를 했다. 주말에는 친구들이랑 피시방에 가고 자전거를 탔다. 고등학교 입학을 열흘쯤 앞두었나. J의 ‘비정한 아버지’는 아들을 ‘생활전선’에 내보냈다.



일주일간 월명동의 한 카페에서 알바를 하게 된 J. 아파트 단지만 있는 동네에서 자란 탓에 카페가 있는 월명동은 낯설었다. 하루 전에 사전 답사를 했다. 카페까지 쉽게 출근했다. 퇴근한 J는 집 방향으로 걸어갔다. 분명히 그랬는데 해망굴 앞이었다. 생전 처음 본 곳에 온 J는 ‘멘붕’ 상태. 계속 걸었더니 군산공항 간다는 버스 표지판 앞이었다.



“엄마! 1시간 반째 이러고 있어요. 어딘지를 모르겠다고요. 완전 짜증나 죽겠어.”



J는 전화를 했다. 그럴 만도 하다. 월명동은 100년도 더 전에 일제가 철저하게 목적을 갖고 만든 동네다. 수탈하기 좋게 격자형 도로부터 만들었다. 그런 다음에야 관공서를 짓고, 일본인이 살 집들을 지었다. 군산에 와서 한몫 단단히 챙긴 일본 상인들은 고급스런 일본식 주택을 지었다. 도시의 가장 아늑한 동네에는 ‘왜놈들 집’ 뿐이었다.



일제가 패망하고 그들이 살다 떠난 집은 적산가옥이라고 불리었다. 수십 년이 흐른 1990년대, 군산의 중심 상권이던 월명동은 거짓말처럼 주저앉았다. 동네는 빠르게 슬럼화 되었다. 가난한 사람들만 동네에 남았다. 벌이가 변변치 않은 사람들만 동네로 들어왔다. 집과 사람이 동시에 늙어갔다. 동네 할머니들은 말했다.



“이 동네는 인자 도둑도 안 들어. 쓸 만한 사람들은 없고 건달이 하도 많이 살응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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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가 줄어들어서 지역 국회의원도 두 명에서 한 명만 뽑는 군산. 일제 강점기의 근대문화에 주목했다. 되살리는 것에 힘을 쏟았다. 월명동은 활기차졌다. <1박 2일> 군산 편이 나가고는 여행자들이 엄청나게 늘었다. 시민들도 “군산에 저런 데가 있었어?” 하며 찾아 다녔다. 사람이 늘고, 가게가 잘 되면서, 월명동 골목골목은 ‘일본 어디’처럼 변해갔다.



월명동은 걷기에도 좋은 동네다. 히로쓰 가옥처럼 가꾸지 않은, 여기저기 덧대고 고친 일본식 가옥을 수십 채나 볼 수 있다. 욕조에다가 채소를 기르는 골목도 만난다. 골목은 또 다른 골목길로 이어진다. 당신이 무작정 월명동을 걷는 여행자라면, 그때가 3월 말이나 4월 초라면, 반짝반짝 빛나는 골목길을 발견할 수도 있다. 소년소녀 감성이 폭발할 거다.



“꺄아!”



골목길 담장으로 꽃이 핀 커다란 벚꽃 나무 한 그루가 보인다. 어떤 이는 “대박! 이탈리아 피렌체 골목길을 걷다가 두오모 성당을 본 기분이야”라고 했다. 벚나무 옆에는 500년 된 은행나무도 있다. 가을이라면, 은행잎이 떨어진 골목길을 걷겠지. 그러니 월명동을 걷는다면, 무작정 걸어보는 것도 좋다. 근사한 풍경은 당신이 길 잃고 헤매기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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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사진은 군산시청에서 제공해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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