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아빠도 좀 살자”고 매달리고 싶을 때 추천!

군산 근대역사박물관

by 배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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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에서 자란 J는 크고 아름다운 정원을 본 적 없다. 동화책 <거인의 정원>으로만 봤다. 아이들은 거인의 정원에서 놀았다. 나무는 푸르고, 만발한 꽃 사이로 나비가 날아다녔다. 어느 날, 집에 온 거인은 아이들을 쫓아냈다. 그 뒤로 정원은 항상 겨울. 사무치게 외롭고 추웠던 거인은 틈을 허락했다. 아이들이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오자 정원에는 다시 봄이 왔다.



J는 어느새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 2012년 여름은 잊을 수 없다. 잊고 지냈던 ‘거인의 정원’을 만났다. ‘리얼’이었다. 셀 수 없이 많은 아이들이 군산 근대역사박물관 앞 바닥분수에서 뛰놀았다. J의 아이처럼, 캐릭터 수영복을 입은 배 볼록한 유아들만 있는 게 아니었다. 체면을 생각해서 옷 입은 채로 물에 뛰어드는 초등 고학년들도 많았다.



“엄마 아빠도 좀 살자!”



밥벌이와 육아, 살림에 허덕이는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호소한다. 그러나 아이들은 ‘실컷 논 지난 주말’을 저축해놓지 않는다. 아무리 신나게 놀았어도, 다음 날에는 순수한 ‘0’의 상태로 돌아가 있다. 아이들은 처져 있는 부모들에게 “미워! 주말에 놀러간다고 약속 했잖아!”라고 따진다. 그때 무작정 찾아가도 좋은 곳이 근대역사박물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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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내내 박물관 마당에서 뛰어놀던 아이들은 찬바람이 불자 안으로 들어갔다. 박물관 1층의 해양물류역사관은 군산의 먼 옛날부터 볼 수 있다. 그때 사람들이 죽어서 묻힌 항아리 무덤까지 있다. 세금을 실어 나른 조운선 위에도 올라가볼 수 있다. 조운선에 실렸다가 침몰해서 수백 년 동안 바닷물 속에 있었던 그릇들도 볼 수 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가장 좋아하는 곳은 박물관 3층의 근대생활관이다. 1930년대의 군산이 거기에 있다. 사람들은 까만 치마와 흰 저고리를 입고서 인력거에 올라 사진을 찍는다. 그들 뒤로는 잡화점, 고무신 가게, 술 가게 등이 보인다. 아이들은 그때 지어진 세관이나 조선은행 건물을 살살 두드려서 탁본한다. 쌀 탑을 보고는 이게 뭐냐고 묻기도 한다.



“여그 학생들이 전부 독립군들이었느니라.”



군산 영명학교 건물에서 한 어르신이 말했다. 그분은 강점기 때, ‘왜놈들’이 공출해갈 쌀을 군산항까지 나르는 일을 했다. 동네에는 공출해갈 쌀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열다섯 살 소년이었던 어르신도 하루 종일 쌀을 져 날랐다. 뜬 다리 부두에서 지게를 져 보며 회한에 잠겼다. 그러니까 역사는 옛날 일이 아니라 바로 오늘이기도 하다.



“독립운동가 분들 덕분에 저희가 지금의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항상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뜻있고 용감하게 살아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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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명학교 교실 곳곳에는 일제 강점기 사람들에게 쓴 쪽지 편지가 가득 붙어있다. 한쪽에는 교실 풍경을 그대로 만들어 놨다. 강점기 때 아이들은 모진 환경에서도 까불고, 지각하고, 도시락을 먹었다. 누군가를 보며 설레기도 했다. 부모들은 고생하면서도 힘껏 아이들을 키웠다. 영명학교 창으로 고개를 내밀면, 뜬 다리 부두, 임피역, 토막집이 보인다.



아이들은 한 곳에 오래 머무는 것을 싫어한다. 근대생활관 문을 나와서 오른쪽으로 가면 테라스가 있다. 망원경 세 대가 있다. 아이들은 그저 먼 곳을 가까이 볼 수 있다는 것에 기분이 좋아진다. 바다 건너로 보이는 동네는 충청도. 소설 <탁류>의 주인공 초봉이네가 군산의 콩나물고개로 이사 오기 전에 살았던 땅이다.



일요일 오후에는 박물관 2층에서 인형극 공연도 한다. 누구나 볼 수 있다. 어린이들만 따로 놀 수 있는 작은 놀이터와 군산의 건축물을 색칠놀이 할 수 있는 장소도 있다. 여행자들이라면 쉬기에 딱 알맞다. 그 옆에서 부모들은 쉬거나 책 읽을 수 있는 공간이 있다. 때마다 그에 맞는 기획 전시도 열리고 있다. 몇 번씩 와도 새로운 이유다.



어린 아이들에게 박물관은 부모 손을 잡고 와서 재밌게 노는 곳이다. 하나라도 더 배우기 위해서 눈에 불을 켜야 하는 곳이 아니다. 아이들은 자라면서 부모님 어릴 때, 할아버지 어릴 때를 궁금해 하면서 역사를 알아간다. 그러고 나서야 박물관 로비에 걸린,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를 읽으면, 가슴이 뜨거워진다. 그런 날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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