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치욕과 징그러움을 잊지 않기 위한 외침

군산, 호남 최초의 만세운동

by 배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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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선소란 것언 정미소에 따라붙어 있는 것인디. 정미소서 나락얼 찧으면 그 쌀얼 미선소로 옮겨다가 또록또록헌 알쌀만 골라낸답디다. 좁쌀이고 돌이고 하나또 안 든 그 알짜배기 쌀이 일등미로 쳐져 싹 일본으로 실려가는디, 그 쌀 골라내는 일얼 여자덜헌티 맽낀다드랑게요.”



조정래의 소설 <아리랑>에 나오는 미선공 이야기다. 일제 강점기 때, 군산에는 일본 사람들 뿐만 아니라 각지에서 조선 사람들도 모여들었다. 땅을 잃은 사람들은 부두에서 일 하거나 철도를 놓았다. ‘동학꾼’이었던 남편이 세상을 떠나자 먹고 살기 위해 새끼들을 데리고 온 감골댁도 있었다. 미선공은 감골댁 딸 수국이처럼 젊은 여자들에게 주어지는 일이었다.



미선공들은 하루 내내 쪼그리고 앉아서 쌀을 골랐다. 하루에 한 끼도 제대로 먹지 못 하는 사람들. 굶주림은 이성을 잃게 했다. 어느새 쌀알 몇 개를 입 안에 넣고 만다. 귀신같은 감독관은 무자비하게 짓이겨서 미선공을 쫓아냈다. 그보다 더 고통스러운 일은 따로 있었다. 퇴근하는 그녀들은 모두 몸 검사를 당해야 했다.



“감독은 제 마음대로 온몸을 더듬어냈다. 젖가슴, 아랫배, 치마 속으로 불쑥 들어왔다. 속곳의 앞뒤를 더듬어대고 있었다. 온 몸이 뱀에게 친친 감기는 것 같았고, 지네가 스물스물 기어 다니는 것 같았다.”



군산항을 통해서 한해 250만 섬의 쌀이 일본으로 실려 나가면서 정미소 사업은 금 캐는 일이나 마찬가지였다. 돈 버는 일은 모두 일본인 차지였다. 또는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일본 사람이 되고 싶은 친일파들이나 돈을 긁어모았다. 군산은, 속도 겉도 조선 사람이라고 새기고 다니는 이들에게는, 이국이나 다름없었다. 일본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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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의 부둣가도 일본 배들이 차지했다. 호남 들녘에서 수확한 쌀은 철길을 통해 군산항으로 옮겨졌다. 부잔교를 통해서 몽땅 일본으로 실려 나갔다. 끊임없이 빼앗기고 밟히고 목숨을 잃었지만 포기할 줄 모르던 군산 사람들. 호남 최초로 3.1운동이 일어났다. 다시는 식구들 얼굴을 못 보거나 고문을 당할 지라도, 만세 운동을 몇 달간 이어갔다.



“학상덜이 앞장 스고 부두 지꾼덜이 따라나섰는디, 그 기세가 아조 무섭드만이라. 왜놈덜이 살짝만 건디려도 확 불이 붙을 기세든디요.”



시위 대열 속에는 영명학교 선생들과 학생들, 부두 노동자, 소작농들이 있었다. ‘대일본 조선 전라북도 군산부’ 한복판에서 만세를 외치는 사람들. 그들에게는 나라를 되찾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로부터 100여 년이 지났다. 군산 사람들은 기억한다. 군산에 온 여행자들도 동참한다. 그래서 ‘시간 여행축제’ 때는 ‘왜놈’ 치하에 살던 사람들처럼 절박하게 외친다.



“대한독립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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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사진은 남상천 작가, 나머지 사진은 군산시청에서 제공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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