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1월의 읽을 만한 책’으로 선정
그때 나는 중학생이었다. 예쁜 필기구와 예쁜 옷을 좋아했다. 친구들도 딱 나와 같은 취향. 우리는 새하얀 운동화를 신고서 추수가 끝난 들판으로 갔다. 검불을 모아서 불을 피웠다. 집에서 가져온 냄비에 물을 붓고 끓였다. 젓가락을 챙길 만큼 섬세한 사람은 없었다. 나뭇가지를 끊어서 설익은 라면을 먹었다. 고구마도 잔불 속에 넣고 익기를 기다렸다.
따스하던 햇볕이 금방 식어버리는 2월 중순이었다. 불어오는 바람에 얼굴이 얼얼했다. 콧물이 나와서 다들 훌쩍였다. 몸을 움직여야 했다. 또랑에 안 빠지기 위해서 균형을 잡고 논두렁 위를 달렸다. 조그만 일에도 흥이 나던 우리들은 갑자기 냄비 뚜껑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목청껏 노래를 부르다가 무리지어 날아가는 새떼를 보았다.
목이 길고 다리가 짧은 기러기였다. 무리를 지어 V자 형으로 날았다. 곧 중학교 2학년이 되는 우리들은 멈추어 섰다. 고개를 뒤로 젖히고 새떼를 구경했다. 우리나라에서는 가을과 겨울만 지낸다는 철새. 봄이 오면 시베리아나 사할린, 알래스카로 가버린다. 그러나 새 학년이 시작된 교실에서, 선생님들은 북방으로 날아가고 없는 새들을 소환했다.
“너희는 글씨를 똑바로 못 쓰겠냐? 왜 기러기 떼가 공책에서 날라 댕긴다냐?”
물론, 나는 글씨 모범생. 선생님의 호통이 내게 꽂힌 적은 없다.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는. 내 글씨는 스무 살이 넘어서 각을 놓았다. 흐물거리기만 했는데도 공중부양을 했다. 어느새 ‘기러기체’가 되었다. “이게 뭔 글자냐? 똑바로 좀 써”라는 말을 듣기 시작했다. 그래도 뭐, 사는 데는 지장 없었다. <우리, 독립청춘>을 출간하기 전까지는.
‘엄청나게 근사하고 멋진 애독자들’ 중 몇몇 분은 <우리, 독립청춘>에 사인을 해주라고 했다. 아오, 긴장이 됐다. 정신을 바짝 차려도, 사인을 세 권 이상 하면 글씨에는 날개가 돋았다. 겨울인데도 햇볕이 따사롭게 스며들던 날, ‘카페 이매진’에서 다섯 권째 사인을 하고 있었다. 앞에 앉은 송영숙 언니가 한 마디를 했다.
“지영아! 책 많이 팔고 싶으면, 글씨 연습 좀 해라.”
예쁜 글씨를 위해서는 무얼 해야 할까. 연습을 해야겠지. 서점에서는 여러 가지 펜글씨 교본 책을 팔고 있다. 그러나 무턱대고 사다보면 가난을 면치 못 하리. 나는 필기구 점검부터 했다. 연필로 쓰면, 글씨가 한심해 보이지는 않았다. 볼펜으로 쓰면, 확실히 글씨가 더 못나 보였다. 볼펜 색깔로 변화를 줘 볼까? 큰 차이는 없었다.
음하하핫! 죽으란 법은 없다. 명필이 쓴 글씨는 모두 붓글씨. 베이징에 갔을 때, 공원 바닥에 물로 글씨를 쓰던 할아버지도 커다란 붓을 썼다. 나는 꽃차남 학교 준비물 중에서 ‘굵은 글씨용’ 네임펜으로 써 봤다. 괜찮았다. 지난 해 11월에 한 달 짜리 일을 같이 한 광주의 ‘상상오디자인’에서 <우리, 독립청춘> 30권을 샀다. 사인 요청했을 때, 나는 쫄지 않았다.
“인자는 완전히 늙었는 가비야. 작은 글씨를 읽들 못 하겄씨야.”
아빠는 내가 보낸 <우리, 독립청춘>을 받은 날 밤에 말했다. 애써서 읽을 필요 없다고, 그냥 구경만 해도 된다고 말해주었다. 그걸로 끝인 줄 알았다. 어느 날에 아빠는 광주 터미널에 있는 큰 서점에 가서 딸내미 책을 찾아보았다. 다섯 권을 사려고 했는데 한 권밖에 없다면서 내게 전화를 했다. 아빠는 상심한 목소리로 말했다.
“영광 도서관에다가 우리 딸 책을 기증했씨야. 젊은 사람들이 꼭 읽어야 할 책이라고 신신당부를 했다이. 직원도 좋아하드라. 아빠가 아는 딴 디도 기증하고 싶은디, 광주에서 제일 큰 서점에 왜 책이 한 권밖에 없을끄나?”
아빠는 <우리, 독립청춘>의 독자층을 20-30대로 여기는 모양이었다. 책 속에 나오는 인터뷰이들 연령대가 그렇기도 하다. 그러나 내가 직접 만난 독자들은, 학교에서 책을 구입해줘서 읽은, 전주 우림중과 군산 남고 학생들이었다. 동네 서점 ‘한길문고’에서 100권을 단체 주문해서 학생들에게 읽힌 곳도 군산 회현중이었다.
맨 처음에 글을 쓸 때, 나는 독자를 상상해 봤다. 군산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3천 여 명의 아이들. 그 중 10%도 안 되는 아이들만 서울로 대학을 간다. 남은 아이들은 고향에서 스무 살 봄을 맞는다. 풀이 죽는다. 200여 년 전에도 그랬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유배 가서도 아들들에게 ‘한양 사대문 안’에서 살라고 당부했다. 기회가 많으니까.
우리 큰애는 올해 고3이 되었다. 나는 공부 잘 해서 서울 가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좋은 대학 못 가도, 좋은 직장 못 들어가도, 돈 많이 못 벌어도, 인생실패 아니라고 <우리, 독립청춘>을 쓴 사람이니까. 소도시에서 열심히 사는 젊은이들을 만나서 인터뷰 하고 글을 쓰면서 희망을 보았으니까. 공부 말고도 할 일이 있다고 믿고 있으니까.
우리 집안의 필독서는 지난 해 11월부터 <우리, 독립청춘>이었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도, 그이들의 친구나 후배들도 <우리, 독립청춘>을 사서 읽었다고 했다. 우물 안 개구리처럼, 소도시 사람들끼리만 고개를 끄덕이며 읽는 줄 알았다. 그게 아니었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은 <우리, 독립청춘>을 ‘1월의 읽을 만한 책’으로 선정했다.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둘러본들 답답할 따름이다. 갈등은 넘치고 해법은 마뜩찮다. 울분을 넘어 포기상태다. 상황이 이러니 위기감조차 별로다. 눈앞의 호구지책에 다가올 시대변화를 넘어서려는 고민은 사치일 수밖에 없다. 기성세대는 그나마 비켜섰다. 문제는 청춘세대다. 이들에게 한국사회는 청춘 특유의 본능조차 거세시킨다. 보다 나은 내일은 희망사항일 따름이다. 그럼에도 부모는 청춘세대에게 조언한다. 당신들의 뒤를 따르라 재촉하고 위협한다. 고도성장기 때 기획된 욕망 논리에 올라타라 강권한다. 청춘은 헷갈리고 좌절한다. 욕망과 소유를 결코 일치시킬 수 없어서다.
책은 청춘들에게 달라진 패러다임에 어울림직한 새로운 인생경로를 제안한다. 지금까지의 고정관념과 다른 길을 걸어가라는, 기존상식을 뒤집는 생애모델이다. 지향은 행복이다. 자본주의의 양적 소유 대신 개개인의 생활행복을 추구한다. 요컨대 독립청춘의 선언이다. 무대는 지방도시다. 서울이 아닌 지방도시에서 스스로의 인생을 개척하는 43명 청춘들의 도전을 옴니버스로 소개한다. 대기업이, 고임금이 아니라도 인생실패일 이유는 없다는 문제제기다.
크게 키워드를 나누면, 예술, 고졸, 농사, 요리, 동업, 창업, 가업 등이다. 기성세대 입장에선 표준편차를 벗어난, 하면 안 될 일을 고집하는 청춘들이다. 프리랜서 기자이자 동년배인 저자의 차분하되 생생한 글쓰기도 장점이다. 1,300명이 경합한 제2회 브런치북 프로젝트(카카오)의 대상작답게 청춘들의 열렬한 응원·공감도 확인했다. 저자는 이렇게 열심인 젊은이들이 많아질수록 균열은 커지고, 이게 또 청춘들의 용기가 될 걸로 믿는다. 작지만 큰 포부다. 줄지어 앞 사람 뒤통수만 보고 가면 주위풍경은 놓치는 법이다. 청춘, 용기를 가질 때다.
- 추천자: 전영수(한양대 국제학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