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트 인간’의 질문, “뭐가 제일 좋았어?”

서천 국립생태원

by 배지영

꽃차남은 그 흔한 태권도나 피아노 학원에도 다니지 않는다. 딸랑 학교만 다니면서도 고된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처럼 군다. 아침마다 초지일관, 대여섯 살 때부터 똑같은 말을 해왔다.


“아, 짜징나. 언제 주말 되냐고?”


어린이다운 표정은 금요일 아침에야 겨우 볼 수 있다. 덜 불퉁거리고 행동도 날렵하다. 학교에 다녀온 꽃차남은 집에 오자마자 불금 모드. 꽃차남의 하인 노릇을 마다하지 않는 강동지는 라텍스를 깔아놓아서 무거운 텐트를 안방에서 거실로 옮긴다.


꽃차남은 일찍 자야한다는 굴레를 던져버린다. 시후네 집에서 실컷 놀고 와서는 텐트에 배를 깔고 엎드린다. 테블릿 피시로 게임을 한다. 안 그러면 텐트에 누워서 명탐정 코난 만화를 본다. 꽃차남이 지쳐서 잠드는 때는 대개 토요일 자정 무렵. 일요일 밤 9시까지 ‘텐트 인간’으로 산다.


내가 눈에서 광선을 쏜다한들, 텐트 인간은 끄덕하지 않는다. 주말에는 잠깐이라도 나가야 한다. 그래서 서천 국립생태원. 꽃차남은 이미 시후네 식구들이랑 여러 번 가본 곳이다. 현장학습 가서는 옥상정원에서 밥을 먹는데 비가 내려서 후다닥 도시락 뚜껑을 덮고 돗자리를 접은 곳이다.

하지만 엄마 아빠랑 셋이 오는 건 처음. 포켓몬 게임한다고 스마트폰을 달라고도 하지 않았다. 매표소에서 에코리움까지 걸어간 적도 있고, 전기차를 탄 적도 있는 꽃차남은 우리를 이끌었다. 다람쥐 전기차를 타기로 했다.


뭐든 기다리면 잘 안 오는 게 인생이다. 전화도 안 오고, 버스도 안 온다. 물론 다람쥐 전기차도 안 왔다. 평범한 방한 비닐이 씌워진 전기차를 탈 수밖에 없었다. 우리 뒷자리에 앉은 젊은 엄마는 실망한 아기를 달랬다.


“오늘 다람쥐 버스 아야, 했대.”

“어디가 아야,해떠?”


에코리움 안에는 열대관, 사막관, 지중해관, 온대관, 극지관이 있다. 꽃차남이 좋아하는 데는 열대관인 줄 알았다. 판단의 기준은 전에 시후 엄마가 보내준 사진이었다. 열대관 다리를 건너던 시후, 지후, 꽃차남 표정은 너무나 신나 보였다.


엄마 아빠랑만 온 꽃차남은 극지관을 좋아했다. 그 중에서도 특히 펭귄 보는 걸 좋아했다. 펭귄 눈이 다칠 수 있으니까 아빠 스마트폰에 후레쉬가 안 켜졌는지 꼼꼼하게 확인하고는 물속에서 헤엄치는 펭귄들의 동영상을 찍었다. 그리고는 가만히 앉아서 눈으로만 펭귄들을 좇고 있었다.


강동지와 나는 오래 여행 다닌 사람처럼 피곤했다. 식당에 앉았을 때부터 퍼졌다. 밥 먹고 집에 가면 되겠구나 싶은데 웬걸! 꽃차남은 생태원 문을 닫는 5시까지 있자고 했다. 강동지는 지도를 폈다.
우리가 안 간 곳은 어디인가. 사슴도 봐야 하고, 둠벙에 돌이라도 한 번 던져야 하고, 놀이터에도 가야 하네. 당 멀었구나.

에코리움 밖에서 에둘러 다녔다. 우리는 사슴과 고라니와 산양을 보면서 걸어 나왔다. 아야, 했다는 다람쥐 전기차가 몇 대나 우리를 지나쳐 갔다. 주차장에 닿기 전에 관람 끝났다는 방송이 나왔다. 꽃차남은 물었다.

“엄마, 오늘 뭐가 제일 좋았어?”

“프레리독 본 거.”


나는 사막관이 좋았다. 거기서 프레리독을 봤다. 개처럼 짖는다는 다람쥐과의 작은 동물. 만화 <보노보노>에 나온다. 보노보노랑 친구들은 프레리독을 “프레리야!” “독이야!”로 부른다. 프레리독은 현재도 행복하고, 과거에도 행복했고, 미래에도 행복할 동물이다.

프레리독은 끈적끈적하지 않은, 기분 좋게 느껴지는 날씨 속에서 살고 있었다. 인간 세계(특히 우리 집)에서 굉장히 유명한 종족이라는 걸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저 친구들이랑 놀다가 무심하게 우리 식구들을 봤다. 그렇게라도 마주쳐서 영광이었다.


프레리야! 독이야! 당신은 잠자코 서 있기만 해도 멋집디다.


매거진의 이전글함박눈